후배들이 존경하고 선배들이 인정하는 '행복 전도사' 감초 인생
[더팩트|강일홍 기자] 엄용수(66)는 코미디계의 신사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폭발하는 인기를 누린 적이 없어도 그의 존재감은 방송 선후배들이 먼저 인정할 만큼 독보적이다. 이런 평가는 인기경쟁에서 밀려나면 곧바로 도태되는 연예계 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엄용수는 전국의 크고 작은 행사 이벤트 MC로 늘 섭외 1순위다. 특급 가수를 포함해 초대받는 연예인 중에서도 유독 신뢰도가 높다. 왜 그럴까. 비결은 40년간 초심을 잃지 않는 성실함과 몸에 밴 근면함에 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금전적 손해를 보더라도 그에겐 인간적 의리가 먼저다.
그는 또 유랑극단 원로 코미디 세대의 바통을 이어받은 '원조 개그맨'으로 7080개그맨과 개콘세대의 젊은 개그맨들을 두루 아우르는 유일한 소통의 끈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코미디협회를 수년간 자비로 이끌면서 이해관계를 떠난 화합형 단체로 만든 공로가 이를 입증한다.
매사 앞에 나서는 법이 없는 숨은 조력자이면서도 후배들이 먼저 존경하고 선배들이 그 역량을 인정을 해주는 예능인이다. 즐거움과 행복의 전도사로 살아온 그의 감초 인생을 들여다봤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내에 있는 한국코미디협회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얼마 전 코미디 대선배인 고 남보원의 장례식을 코미디협회장으로 치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들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낍니다. 일세를 풍미했던 원로 희극인 선배님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니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설 연휴 직전 작고하신 남보원 선배님은 연초까지도 건강하셨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감기를 앓고 계시긴 했지만 팔순의 나이에도 마이크 앞에만 서면 열정이 넘치셨으니까요. 고 배삼룡 남철 남성남 백남봉 구봉서 선생님들은 제가 갓 데뷔했던 시절엔 말 그대로 하늘처럼 보이던 대선배님들이셨어요. 한국 코미디계를 이끌어오신 거장들이 모두 우리 곁을 떠난다 싶으니 슬픔이 북받쳤습니다.
엄용수는 설연 휴 직전인 지난달 23일 고(故) 코미디언 남보원(김덕용)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며 오열했다. 그는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생전 선배님은 행복하셨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 '넘버 원'이다. 선배님은 천 가지, 만 가지의 소리를 내셨다. 각종 악기, 교통수단, 동물, 자연의 소리 등 소리의 백과사전이었다. 선배님, 기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고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장례식 기간 내내 조문객들을 일일이 맞이해 안내하는 등 코미디협회 상주 역할을 도맡았다.
-희극인 선후배들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방송가에서는 '코미디언 집사'라 불릴 정도다.
저는 나이에 비해 개그계에는 좀 늦게 데뷔했는데 그때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마도 평생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아요. 전후(戰後) 힘들고 고단했던 시기에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신 가설극단 시절 선배님들을 보며 저도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뒤늦게 코미디계로 뛰어든 것도 사실은 한 시대를 풍미하셨던 이런 선배님들 덕분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선배님들이 나이 들고 활동이 끊기고 나면 경제난에 허덕이고 생활이 초라해집니다. 아주 작은 도움만 드려도 커다란 위로와 고마움으로 받아들이시죠. 누군가는 그일을 해야하고,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갔으면 해요. 초심을 잊지 않는다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엄용수의 개그 데뷔는 동기들에 비해 10년 가까이 늦었다. 1981년 MBC 문화방송 라디오 제1기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지금도 왕성하게 방송활동 중인 최양락이 그의 데뷔 동기다. 엄용수는 앞서 홍익대학교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희극인들 사이에 '집사'의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은 20여년째 선후배들이 모두 인정할 '봉사의 길'을 걸어온 덕분이다.
-크고 작은 희극인 행사에 사비를 들여서까지 진행한 일이 많다. 다른 대중문화 단체들은 회비를 걷거나 외부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지 않나.
희극인(코미디언+개그맨)으로 등록된 회원수가 대략 850명 정도 됩니다. 이론상으로는 회비를 갹출해 운영하면 될 것 같은데 현실이 녹록치 않아요. 조금이라도 방송활동을 하는 회원은 겨우 150명 정도이고, 이 중에서도 좀 여유가 있는 회원은 극소수에 불과한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소속사를 중심으로 각자 활동을 합니다. 나머지 700명의 회원들이 대부분 실업자인데 이 분들한테 회비를 걷는다는 건 협회 취지에도 어긋납니다. 형편이 열악한 만큼 애경사나 법률자문 등 도움의 손길이 더 절실한 경우가 많아요. 코미디를 사랑하는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기도 하지만 항상 재정난에 허덕이는 건 피할 수 없죠.
그는 ㈔대한민국코미디협회를 10년째 이끌고 있다. 협회가 사단법인으로 정식 인가되기 이전까지는 개그맨 친목단체인 코미디연합회를 10년간 운영했다. 엄용수는 협회 첫 출발 당시부터 '딱 한 번만'을 공약했지만 누구도 후임자로 나서지 않아 차마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했다. 경제적 이득이나 이해관계와 거리가 먼 직함이다 보니 지원자가 없어서다. 그가 지금껏 주로 해온 일도 희극인 권익보호와 화합단결은 기본이고, 방송활동을 위한 재교육과 고민 해결, 심지어 생계를 위한 일반 취업 안내까지 다양하다.
-얼마 전 개그계 후배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뒤늦게 알려진 뒤 연말연시 방송가에 잔잔한 울림을 줬다.
아, 답변할 수도 안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하네요. 차라리 이 얘기는 건너 뛰고 다른 질문을 해주시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몇 억씩 기부하는 분들이 많은데 되레 부끄럽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조용히 덮여지기를 바랐는데 강 기자님이 자꾸 말을 키우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사실 저도 신인 때 차비가 없어 걸어다닐 만큼 힘든 적이 있어요. 혼자 끙끙 앓으며 견디면서도 동료들한테는 차마 말할 수도 없더라고요.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도 아니고 몸이 아픈데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옛날 생각이 나 마음이 더 아팠어요.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었던 것인데 괜히 부풀려지는 게 아닌가 걱정 됩니다.
엄용수는 지난해 말 후배 개그우먼 조성미가 돈이 없어 병원 치료를 못한 채 수개월째 고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선뜻 수술비를 지원했다. 그는 조성미의 딱한 처지를 전해듣고 "당장 치료부터 받으라"며 수술 치료비 1000만원 중 700만원을 즉석에서 송금했다. 이같은 사실은 개그맨 박준형이 필자한테 제보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박준형은 "용수 형이 함구하라고 신신 당부했지만 후배사랑의 표본을 보여준 선배님의 말없는 선행을 일부러라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힘들고 어려운 동료들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쓰시는 평소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잘나가는 후배들도 못 하는 일에 선뜻 나서는 걸 보고 좀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설연휴 기간 중엔 폐암을 앓고 있는 후배 김철민한테 다녀왔다고 들었다. 김철민의 형인 고 너훈아와도 생전 각별하게 지낸 사이로 알고 있다.
연예계에서 이렇게 기구한 형제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둘 다 너무 선하고 착한 사람들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안타까워요. 고 너훈아 씨는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저랑은 각별하게 지냈어요. 무명 설움을 토로할 때마다 얼굴이 좀 알려진 제가 많이 위로했는데 그러다가 친 형제처럼 친해졌지요. 밤무대나 지방행사 때면 MC인 제가 인기가수들 틈바구니에 슬쩍 끼워넣기도 했고, 당장 경제적으로 궁할 때는 무안하지 않게 종종 돈을 빌려줬죠. 평생 무명으로 살다 사망소식을 알리면서야 처음으로 포털검색 순위 정상에 이름이 오른 서글픈 주인공입니다. 철민이는 고 너훈아와 그런 관계 때문에라도 저한테는 더 애틋할 수밖에 없죠.
김철민은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한 뒤 뒤늦게 국민적 관심을 끈 개그맨이다. 그의 부모와 두 형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데다 그 역시 폐암 투병 중 현재 경기 양평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바쁜 스케줄 속에도 틈날 때마다 그를 찾아 발걸음을 해온 엄용수는 "병을 이겨내는 데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를 얼마나 최소화 하느냐에 달려있다"면서 "철민이는 처음부터 먼저 가신 부모님과 형님을 뒤따라간다는 마음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철민이가 반드시 회복해 형인 너훈아의 몫까지 활짝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2년 전 자동차 운전 중 발생한 급발진 사고로 인해 여러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안다. 개인적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좀 극복이 됐는지 궁금하다.
지방 행사를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난 돌발사고였어요. 주차돼 있던 승용차 2대를 들이받고, 경비원까지 다치는 등 대형 사고였는데 다행히도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어요. 운전석 에어백이 터져 타박상만 입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더라고요. 귀에 이명이 생겨 수시로 '매미 소리'가 웽웽 울립니다. 평소엔 괜찮다가도 몸이 피곤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는 날엔 좀 불편할 때가 있죠. 그 때의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두 차례 척추 수술도 했고, 덕분에 방송 공백을 가졌는데 쉬면서 깨달은 건 많아요. 음악에 쉼표가 있는 것은 숨을 쉬라는 의미고, 도돌이표는 되돌아가 다시 한번 더 하라는 겁니다. 잠시 재충전하고 다시 뛰라는 긍정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엄용수는 2018년 9월 자택인 서울 대방동 D아파트 단지 내에서 SUV 차량을 직접 운전하다 급발진 사고를 냈다. 그는 "아파트 차단기를 통과하자마자 굉음을 내며 앞으로 돌진해 도저히 제어를 할 수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 직후 서울 동작경찰서 교통과에 자진 출두해 사고 경위를 신고했고, 경찰이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 등 목격자들을 통해 급발진 의심 정황을 두고 면밀히 조사했지만 끝내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했다. 그는 "사고 규모만 생각하면 무사히 수습을 마무리 한 것만으로 다행"이라면서 "신체기능이 떨어진 부분은 요즘도 열심히 운동을 하며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계에서는 배우 이덕화 박영규, 가수 설운도 등과 함께 대표적인 '가발 쓴 연예인'으로 꼽힌다. 미용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탈모는 정도의 차이일 뿐 나이들면 누구도 피할 수 없어요. 머잖아 암도 극복된다고 하는데 건강한 머리가 다시 나는 약이 개발된다면 더 말할 게 없겠죠. 요즘엔 뒷머리를 솎아 심는 의학적 시술이 유행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발이 가장 대중화된 미용법입니다. 저는 하도 오래 써와서 이젠 불편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즐깁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도 들어요. 탈모 덕분에 가발 모델로 돈을 벌잖아요. 키도 작고 시력도 나쁘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외모에 모델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가발을 애용하다 보니 전속모델도 하고, 저는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1석2조 행운아인 셈입니다.
엄용수는 10년 넘게 소리소문 없는 가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의 조용한 입소문 홍보활동 효과를 높이 사고 있다. 각종 크고 작은 행사장 MC를 맡으며 가발 레퍼토리로 전국민을 웃겨주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층 업그레이드 된 가발업체(Dream)와 새롭게 계약을 했다. 엄용수는 "세상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보이 게 마련"이라며 "머리가 없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조금만 부지런하면 더 멋진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가발이) 국가적으로는 60~70년대 우리의 중요한 수출 품목으로 국가경제를 떠받친 효자였다"면서 "갈수록 기술과 재질이 좋아져 벗기 전까지는 절대 모를 정도"라고 가발 애찬론을 폈다.
엄용수는 선후배들한테 두루 신망이 두텁다. 이는 그가 평소 코미디 가족들한테 보여준 헌신과 봉사의 행적이 켜켜이 쌓인 덕분이다. 필자가 지난해 상반기 스페셜 인터뷰로 만난 현존 최고령 현역 MC 송해 역시 "내가 진짜 사랑하고 아끼는 코미디 후배는 엄용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평가는 무엇보다 개그계의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생활화 된 봉사와 희생 마인드 덕분이다. 엄용수는 몸에 밴 겸손과 성실함으로 선배들한테는 무한 신뢰를, 후배들한테 존경을 받는 방송인이다. '희극인 집사'라는 별칭은 개그계 동료들이 붙여준 영예로운 꼬리표다.
엄용수는 방송보다도 밤무대나 행사 무대에서 진가를 더 발휘하는 '장외 무대 1인자'로 통한다. 전현직 대통령들과 유명스타들의 성대 모사는 물론 속사포로 읊어대는 빠른 말재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명석한 두뇌'의 상징으로 아마 5단의 연예계 바둑 고수로도 정평이 나 있다.
무엇보다 그는 가정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선배나 후배들한테는 내 일처럼 뛰어다니며 살뜰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코미디계의 애경사는 물론 사소한 불편사항도 그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애우 및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연예인 자원봉사 모임에는 늘 발벗고 나서는 선행 실천파이기도 하다. 작심하고 스페셜 인터뷰이로 만난 그는 필자에게 새삼 '작은 거인'의 포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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