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근의 Biz이코노미] 삼성·현대차·SK 다 변해도 결론은 '사농공상'

최근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 272곳의 올해 1~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50.5% 줄어든 49조2642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팩트 DB

경제 위기 해소 '골든 타임',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허비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문재인 정부의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재계 '맏형'이자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대표 경제단체 수장이 후보군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경제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실제 인사로 이어지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정부 여당에서 비상등이 켜진 경제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지는 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냐는 실낱 같은 기대 때문이다.

나라 경제의 허리를 맡고 있는 대기업들이 받아든 경영 성적표를 보면,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 272곳의 올해 1~3분기 영업이익은 모두 49조2642억 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해 감소율은 50.5%, 딱 반 토막이 났다.

물론 기업마다 경영을 못 했을 수도 있고, 나름의 사정이 실적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부진한 실적의 배경으로 미중 무역분쟁,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등 대외요인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모건스탠리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내년 2.1%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위에서 언급한 대외 리스크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기가 커지자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기업들은 앞다퉈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는 등 스스로 살길 찾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각 그룹 수장들은 민간 외교 전면에 나서며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고삐를 죄고 있다.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며 창업의 각오를 주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으로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동력의 축은 시스템반도체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옮겨졌고, "완성차 제조를 넘어 서비스 등 앞서가는 솔루션을 제시하겠다"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다짐은 미래차 기술 개발에 기폭제가 됐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를 맞을 수 있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당부가 사업 영역을 확대 및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로 이어진 것 역시 기업들의 변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지 보여준다.

경제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앞장서 기업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규제와 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팩트 DB

문제는 이 같은 변화에 역행하고 있는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경제 활성화 및 규제개혁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경제계의 목소리는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된 지 오래다. 경제단체장이 '기업들이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며 열 손가락이 모자라도록 국회 문턱을 넘어도 요지부동이다.

지난 20일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초청 경총 회장단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정부의 확실한 메시지가 기업에 전달됐으면 좋겠다"라며 경제계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 검토를 거듭 요청한 사례만 보더라도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정부와 경제계가 바라보는 온도 차가 얼마나 큰지 여실히 느껴진다.

오는 25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5대 그룹(삼성·현대차·SK·LG·롯데) 총수를 만난다고 한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문제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가진 긴급간담회 이후 4개월여 만이다.

경영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 및 구체적인 해법만 제시한다면야 대통령과 기업 총수의 만남 횟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행보를 돌이켜 보면 이 역시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경제는 더는 '희망 고문'을 당할 여유조차 없다. "시대만 바뀌었지,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최근 취재 현장에서 만난 모 대기업 고위관계자가 꺼낸 말이 아직도 맴돈다. '정부가 관리자의 역할'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정치적 이벤트를 목적으로 기업인을 호출하기에 급급한 씁쓸한 광경은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기업 총수들은 '호출의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는 진작에 지났다. 분초를 다투는 치열한 경쟁이 지속하는 이때 정부는 이제라도 '경제 살리기'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 방안, 규제와 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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