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잘못에도 큰 책임이 요구되는 대중 스타의 '숙명'
[더팩트|강일홍 기자] 이름만 들어도 귀에 익숙한 '도둑들' '변호인' '괴물'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신과 함께'(죄와 벌) 등의 공통점은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는 점이다. 또 모두 배우 오달수가 출연한 작품들이다. 그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맛깔스런 감초 역할로 재미를 더하며 '명품조연' '충무로의 수문장' '대한민국 신스틸러(Scene stealer) 갑(甲)'이란 기분 좋은 별칭을 갖고 있다. 이 뿐이랴. '국제시장' 흥행 당시 이미 누적관객 1억을 넘기며 '1억 관객의 사나이'로도 불렸다.
주연배우가 아닌 조연배우로 그는 당당히 '천만 배우'의 위상을 지켜 더 빛이 났다. 어떤 배역이든 거부감 없는 친숙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오달수의 데뷔는 초라하고 미미했다. 그는 1990년 연극 '오구'에서 '문상객1'로 출연하며 연극무대에 발을 들여놨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오달수한테 먹구름이 덮인 건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성추행 사건이 촉발된 뒤 '미투 쓰나미'에 휘말리면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26년 전의 이 사건은 이후 예상치 못한 파장을 일으킨다.
지난해 2월 "용기를 내 미투운동에 동참한다"고 밝힌 한 여성 네티즌은 "90년대 부산의 한 소극장에서 이윤택 연출가가 데리고 있던 배우 중 한명이 은밀하고 상습적으로 여자 후배들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또 '끔찍한 짓'을 당하고 20여년간 고통받았다면서 '변태, 악마,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언급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또 여기에 결정적으로 '지금은 코믹 연기를 하는 유명 조연배우'라고 암시함으로써 누가 봐도 가해자로 지목한 상대가 오달수임을 연상케 했다.
◆ '성추행 논란' 1년6개월만의 복귀, 배우 행보엔 여전히 살얼음판
오달수가 미적미적하는 사이, 댓글과 재댓글을 통해 사실상 성 추문 배우로 지목됐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향한 논란에 대해 즉각적인 해명을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의혹을 더 키운 꼴이 됐다. 오달수는 논란 6일 만에 "(실체 없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나를 둘러싼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연극배우 엄지영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구체적 장소와 행위를 언급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2003년 서울 오디션 당시 모텔에 따라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엄지영은 "이혼해서 집도 없고 (모텔이) 숙소라고 했다. 결국 따라가서 성추행 당했다. '편하게 얘기하자, 더운데 씻자'고 하면서 옷을 벗겨주려고 제 몸에 손을 댔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오달수는 "따져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반박하고픈 마음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 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지난 기억에 대한 깊은 사죄를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사과했다. 당시 상황을 해명하고 반박하기보다 고개를 숙이는 걸로 자숙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달수를 향한 비난 여론이 확산됐고 그는 이후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드라마 도중 하차('나의 아저씨')와 영화 재촬영('신과함께-인과 연')과 기촬영 분량 전면 폐기 등의 수난과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이후론 노모가 살고있는 부산 영도의 아파트에 내려가 칩거했다. 간간이 '밥이 넘어가지 않아 막걸리로 시름을 달래고 있다'는 등의 근황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는 철저히 외부와 접촉을 피했다. '억울함'의 일단을 내비치는 관심에도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언론 인터뷰는 피했다.
◆ 경찰청 내사 '혐의없음' 종결 vs 동정론 속 '섣부른 면죄부' 경계
오달수의 컴백 가능성은 연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윤택 조재현 김기덕 등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정론이 일면서다. 오달수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3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오달수는) 그간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긴 자숙의 시간을 보내왔다. 올해 초 경찰청으로부터 내사 종결을 확인했고 '혐의 없음'에 대한 판단을 했다"고 전했다. 오달수는 독립 영화 '요시찰'(김성한 감독, 9월 크랭크 인)로 스크린 컴백에 나선다. '논란' 이후 활동을 중단한 지 1년 6개월만이다.
"지난해 초 고향으로 내려가서 저의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지냈다. (미투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여러 논란으로 번진) 지난 일은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은 채 일방적인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도 제 부덕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비록 결점이 많고 허술한 인간이긴 하지만 연기를 하고 작품을 만들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묵묵히 살아왔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거듭 죄송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추문 논란' 직전까지 오달수는 영화 러브콜 1순위였다. 하지만 믿었던 배우의 충격적인 사생활에 대중의 분노가 끓어 올랐다. 그는 관객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은 만큼 사소한 잘못에도 큰 책임이 요구되는 대중스타다. 사필귀정, 28년간의 배우 생활 이후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그의 컴백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그간 보여준 진정성은 십분 이해하면서도, 활동 재개만으로 누군가에게는 또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공감을 살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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