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㊸-심형래] "롤러코스터 삶, 아직은 희망 있어 행복"

심형래의 상징성은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뚝심형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눈이 쳐져 쌍꺼풀을 했다며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아 어색해보여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방송 컴백 연기 활동 병행…"영화 '디워2' 반드시 완성하겠다" 다짐

[더팩트|강일홍 기자] 심형래(61)는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이다. '디워' '용가리' '티라노의 발톱' 등 전설의 괴수 영화를 만들며 자신만의 독창적 영역을 이끌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CG영화(3D)의 실험적 시도와 함께 이 분야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가 한때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불린 데는 영화에 대한 집념과 이력 때문이다. 국내 연예계에는 심형래 외에도 서세원 이경규 임하룡 등 개그맨 출신 감독과 배우가 있지만, 심형래의 상징성은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뚝심형'이란 점에서 더 특별하다.

1982년 데뷔 이후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중 50여편은 직접 제작하거나 감독을 맡았다. 청룡영화상 최다관객상(2007년)을 수상하며 주목을 끈 '디워'는 가장 성공한 작품이면서 그에게 파산을 불러온 '아픈 손'이다. 후속작에 대한 열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심형래는 최근 코미디프로그램에 복귀, 케이블채널 코미디TV '스마일킹'에서 관록의 슬랩스틱 개그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성공과 실패의 부침을 거듭한 속내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정식집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영화 실패 후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는 연극배우들과 마당극을 하면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정식집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코미디 공개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지난해 마당극 '뺑파게이트' 전국 투어에서도 호평을 받았는데 연기자로 돌아온 것인가?

그동안 한번도 스스로 방송을 떠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돌이켜보니 이방인처럼 겉돌았더라고요. 영화 실패와 파산 등의 이유로 많이 위축됐어요. 쉴새없이 따라붙는 엄청난 악성 댓글을 감당하기 힘들더라고요. 연극배우들과 마당극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격려해 용기를 얻었어요. 가끔 게스트 출연 또는 특집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내민 적은 있어도 지금처럼 고정 출연하게 된 건 꽤 오래됐죠.

심형래는 지난 4월 28일 첫 방송을 시작한 코미디TV '스마일킹'에서 복고풍 콩트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선 후배 김대범 황현희 한현민 등을 상대로 역대급 슬랩스틱의 진수를 선사해 눈길을 끌었다. 심형래는 '집중력 훈련' 등에서 얼굴의 수염을 떼고, 죽도에 이어 쟁반으로 때리고 맞는 특유의 오버 액션을 자연스럽게 표출했다. 또 어설프고 황당한 마술로 멤버들을 웃기는 바보개그도 마치 전매특허처럼 맘껏 발산됐다.

-콩트 코미디 시절 '바보 개그의 원조'로 불릴 만큼 '바보 연기'가 트레이드마크였다. 바보 이미지를 특별히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

바보 이미지를 일부러 고수하는 건 아닌데, 한번 그런 설정이 만들어지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굳어지더라고요. 90년대식 콩트코미디나 요즘의 개콘식 스탠딩 개그나 유머 코드의 기본은 풍자와 반전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똑같은 내용이라도 짙은 사회풍자로 빗대 풀어내면 공감을 해요. 거기에 바보 캐릭터를 입히면 효과는 더 극대화되고요. 바보는 그냥 바보일 뿐이지만, 똑똑한 척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어설픈 바보로 설정하면 다소 과장되더라도 웃음으로 이어지는거죠.

바보 캐릭터가 코미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데는 잘난 이들에 대한 거부 반응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나보다 잘난 누군가가 TV에 나오는 것보다 좀 못난 듯한 사람이 나오는 걸 더 편하게 본다는 분석도 있다. 심형래는 70년대 인기드라마 '여로' 속의 주인공 장욱제의 바보 캐릭터를, 80년대 후반 코미디 속 '영구' 이미지로 패러디해 인기를 누렸다.

더는 이방인처럼 겉돌지 않겠다. 심형래는 지난 4월 28일 첫 방송을 시작한 코미디TV 스마일킹에서 복고풍 콩트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동률 기자

-개그는 한때 폭발적 반응을 내며 예능 시청률을 견인한 장르다. 지금은 주춤한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오래된 건 익숙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식상할 수도 있어요. 개그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조금씩 진화해왔지만 시청자들의 관심과 취향에 빠르게 적응했는지는 의문이에요. 늘 보던 것이라는 인식이 깔리면 더는 관심을 갖지 않게되는 심리도 있고요. 그래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러는 그걸 담는 그릇을 바꿀 필요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며 개그를 이끌고 있는 후배들이 참 대견하면서도 분위기가 위축돼가는 상황이 항상 걱정스럽죠.

TV 코미디 장르는 60년대 쇼 유랑극단시절부터 뿌리를 이은 이대성 심철호 서영춘 이기동 구봉서 남철 남성남(이상 작고), 송해 임희춘 남보원 등이 안방극장을 이끌었고,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심형래 임하룡 이용식 최양락 김정식 이봉원 故 김형곤 등이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웃으면 복이와요' '코미디세상만사' '코미디전망대'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누렸다. 현재의 스탠딩 개그는 99년 '개그콘서트' 이후 '웃찾사' 등이 잇달아 탄생하며 세대교체 트렌드로 등장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심형래 하면 영화 '디워'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개봉된 그해 최다 관객수를 끌어모으고도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내막을 모르는 분들은 '디워'가 흥행실패로 생각하는데 제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성공한 영화예요. 국내에서만 800만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785만)을 넘겼어요. 미국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배급이 많이 됐고요. 호사다마라고 한창 상승세를 타던 중 한 투자사가 억지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문제가 됐어요. 회사 재산이 가압류돼 자금 흐름이 막히고 보니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을 만큼 억장이 무너집니다.

2007년 개봉된 '디워'는 그해 청룡영화상 최다관객상을 수상했다. 심형래는 당시 "이 작품을 밑거름 삼아 할리우드가 부러워할 월드 SF영화를 만들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모 저축은행과 법적 다툼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됐다. 심형래는 투자 원금 50억 원을 갚고도 '대여'(이중계약)를 주장한 상대 측의 이자 30억 원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1심에선 이겼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영화 디워는 심형래에게 가장 성공한 작품이면서 그에게 파산을 불러온 아픈 손이다. 그 후속작 준비에 대한 열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은 마이클 헬프렌드, 데이비드 퍼밋 등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과 디워 후속작 마케팅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심형래 제공

-아무래도 그때가 가장 힘들었을 것같다. 전화번호를 무려 5번이나 바꿔가며 견뎌냈다고 들었다.

천당과 지옥이란 말이 있잖아요. 쓰나미처럼 휩쓸리고 내몰리는 막다른 길은 최정상을 찍어본 사람만이 아는 또다른 고통이에요. 직원들한테 줄 급여가 쌓이고 회사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았어요. 후속작품으로 준비 중이던 '유령도둑'과 '디워2' 제작일정도 줄줄이 무너졌고요.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마음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한데 죽고 싶어도 너무 억울하다 보니 언젠가는 이를 되돌려 놓아야한다는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전화번호를 바꿔가면서라도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했어요.

당시 심형래는 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 조울증에 시달렸다. 구안와사(입과 눈이 한쪽으로 틀어지는 병으로 중풍 증상)로 한동안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좋은 영화를 만들자'며 똘똘 뭉쳐 동고동락했던 영화사 직원들과 법적다툼이 생긴 일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건데 사실 급여는 모두 해결했고 2억원에 달하는 퇴직금은 끝내 주지 못했다"면서 "그로 인한 법적 책임은 모두 마무리됐지만 언젠가는 꼭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계가 개그맨 출신 감독을 비주류로 폄하해온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CG(3D) 분야 기술력은 당시에도 자부심이 있었다고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어도, 그런 자부심과 성공 가능성이 있으니 행복해요. 당연히 완전 빈털터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냥 과거의 영광만 추억하며 산다는 게 아니라, 그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국내 영화 CG 기술력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인력 중엔 '영구아트무비' 출신들이 많아요. 저와 끝까지 함께가진 못했어도 그 분들이 있기에 재기할 기회는 있으니까요.

할리우드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에 참여한 김기범 CG감독은 심형래의 '영구아트무비' 당시 '디워' 랜더링을 한 초창기 멤버다. 이후 할리우드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설립한 ILM(Industrial Light & Magic Studio)에서 근무하며 아이언맨2, 트랜스포머, 퍼시픽림, 터미네이터, 스타트랙 등을 작업했다. 가장 최근작 '알리타: 배틀 엔젤'은 '진짜보다 진짜 같은 CG'로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없었다면 할리우드에 갈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심형래 감독에게 늘 감사드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독보적 콘텐츠가 있으니 빈털터리는 아니다. 디워2를 준비중인 심형래는 전편에 비해 기술력이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과거 심형래 씨의 막강 존재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재기 여부에 관심이 많다.

세상 일이란 단번에 반전이 없어요. 환갑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저절로 깨달아지더라고요. 처음엔 조바심과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게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가 쌓이는 역효과만 났어요. 차근 차근 한계단씩, 돌다리도 두드리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디워2' 중국 투자건은 거의 성사 직전에 사드 역풍을 맞아 더이상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데요. 현재 중국을 포함한 서너군데서 물밑작업 중이고, 다시 실망시키지 않게 완전 성사되기 전까진 말을 아끼려고 합니다. 저는 그 사이 방송 출연을 하며 숨고르기를 할 생각이고요.

심형래는 한국 코미디사에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전성기 시절인 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중앙의 연말 스타 인기도 조사에서 가수 조용필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당시 심형래는 3009표로 조용필(1329표)을 두 배 이상 압도적인 차이로 독주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CF와 행사 출연료로 연간 120억 원을 벌었다. 당시 스타배우 안성기를 누르고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계로 뛰어든 뒤 제작사가 60억 원 가량의 빚을 지고, 개인 파산에 이혼까지 시련이 계속됐다.

-마지막으로, 영화 외에 꼭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또 재기하려면 체력도 중요하다. 최근 쌍꺼풀 수술도 했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어떤가?

이제와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잘 나갈 때 좀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미래를 설계했더라면 하는 건데요. 후회스럽지만 지나간 일은 잊어야죠. '심형래 테마파크'는 영화 못지 않게 반드시 일궈내야할 부분입니다. 무려 30년 전부터 꿈꿔온 프로젝트예요. 시대 흐름에 맞게 지자체와 연계한 온오프라인 병행의 첨단 테마파크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건강은 걱정없습니다. 눈이 쳐져 쌍꺼풀을 했는데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아서인지 좀 어색해보이네요.

심형래는 영화 디워로 2007년 청룡영화상 최다 관객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이듬해 제45회 대종상 시상식(2008년)에서 영상기술상을 수상하는 모습(맨 오른쪽). /더팩트 DB

심형래는 개인파산 후 공백기에도 영화 '디워2' 준비는 줄곧 멈추지 않았다. 빈털터리가 돼 주변사람들은 모두 떠났지만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가까스로 중국 펀딩을 일궈냈지만 이번에는 국가간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영화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여파로 제작이 중단됐다.

그래도 그의 뚝심은 고집스럽게 발휘되고 있다. 이미 할리우드 작가들을 영입해 시나리오 작업을 끝냈다. 영어로 번역해 미국작가협회에도 등록한 상태다. 심형래는 "미국에서 소니 사장과 만나 전 세계 배급도 논의했다"며 "결과물이 윤곽을 보일 때가 됐으니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심형래는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과거 논란들에 대해 "대중스타로 인기를 누린 만큼 더 깊이 반성하고 자숙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잘못과 실패를 거울 삼아 반드시 명예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한 표정이 그의 각오를 새롭게 대변하는 듯했다. 팬들은 비온 뒤 단단히 굳어지는 땅처럼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영화감독 심형래'를 보고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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