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성숙하고 깊은 울림 '리:버스'(Re:Birth) "회한과 후회 심정 담았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계은숙(57)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스타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한때 계은숙의 팬클럽 회장을 맡을 만큼 그는 일본 내 최정상의 '엔카 여왕'으로 군림했다. 오랜 방황과 칩거를 마치고 최근 국내 무대에 복귀한 그에게 일본은 짙은 애증의 그림자다.
국내 복귀 쇼케이스에서 신곡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달 20일 도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계은숙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많은 빛까지 지면서 결국 약에 손을 대고 말았다"면서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실감하지 못할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고 회한의 속내를 털어놨다. 일본 언론과는 무대를 떠난 지 11년 만의 첫 인터뷰다.
계은숙은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에게 발탁돼 꿈을 키우다 1985년 '오사카 황혼'으로 엔카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참새의 눈물', '꿈 여자'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88년부터 94년까지 7년 연속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2007년 각성제 복용과 함께 추락한 뒤 일본 당국으로부터 퇴거(추방) 당하는 불명예를 겪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복귀가 늦어졌다.
계은숙이 최근 새 앨범 '리:버스'(Re:Birth)를 내고 37년 만의 한국 무대 컴백을 선언했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복귀를 타진해온 그와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천당과 지옥, 영욕(榮辱)의 세월을 보낸 뒤 재기에 고군분투해온 그의 얘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가양동에 위치한 그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국내에 머문 지 10년이 넘어서야 신곡을 내고 컴백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 복귀하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정확히 11년 만이네요. 사실 그 사이에도 몇 차례 복귀를 시도했지만 높은 벽을 실감한 채 좌절했어요. 모든 건 제 불찰이죠. 저를 둘러싸고 여러 복잡한 일들이 꼬이고 엮이면서 번번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오랜 시간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분들께는 할 말이 없어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지지해주셨어요. 덕분에 아픔이 크고 힘들었던 만큼 더 깊이있는 곡들로 채울 수 있게 됐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계은숙은 2008년 국내로 돌아왔다. 그해 5월 일본 당국은 '계은숙의 비자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하고 출입국 추가심사를 거쳐 8월 국외 퇴거 조치를 내린다. 그는 9개월 전인 2007년 11월 일본 관동지방후생국 마약단속부에 긴급 체포된 뒤 조사를 받고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도쿄 지방법원은 각성제단속법 위반 혐의로 계은숙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다. 당시 그는 이혼 후유증과 부채에 따른 재판, 갱년기 장애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번 음반에는 여러 사연이 담겨 있는 곡들이 많다. 오랜만에 복귀한 만큼 의욕이 남다를 텐데 컴백곡들을 소개해달라.
우선 제가 일본으로 건너간 정확한 시점부터 말씀드릴게요.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도 일부 잘못된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3집 '다정한 눈빛으로'(82년)를 끝으로 83년 일본에 갔고, 2년가량 준비를 해서 '오사카 황혼'(85년)으로 일본 무대에 정식 데뷔했죠. 국내 복귀를 기준으로 하면 이번 앨범은 4집인 셈인데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에 선 거죠. 새 음반에는 만남의 축복, 아픔의 눈물, 즐거운 추억 등 음악을 통해 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곡들로 채웠어요. 제 인생 스토리를 담은 자서전 같은 앨범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계은숙은 지난달 15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리버스'(Re:Birth)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가졌다. 리버스는 계은숙의 인생과 음악적 재탄생을 알리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계은숙은 타이틀 신곡 '길'을 필두로 '믿어줘'(Trust Me & You) '드림시티' '아파요' '헤이맨' '메모리즈' 등 신곡을 선보였다. 이전 히트곡인 '기다리는 여심' '나에겐 당신 밖에' '노래하며 춤추며' 등을 리메이크 형식으로 담아 총 12곡을 수록했다.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도 있더라. 3년 전 수감생활 도중 돌아가신 어머니 영전에서 통곡한 모습을 보며 많은 팬들이 가슴 아파했다.
'엄마'라는 곡이에요. 제 유일한 삶의 목표였던 어머니가 떠나고 안 계신 지금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만이 남아있어요. 불명예스럽게 귀국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와 지낸 서울 생활은 짧았지만 행복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수감생활 중 생을 마감하셨고, 곁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억장이 무너졌어요. 일본에서 성공했을 때도 저는 돈이나 성취감보다는 엄마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고통이 가장 컸거든요. 저의 수감생활을 뒤늦게 지인을 통해 듣고는 곡기를 끊으셨다고 들었어요. 이런 회한과 후회의 심정을 노래 안에 고스란히 담았다고 보시면 되요.
계은숙은 유년시절을 힘들고 불우하게 보냈다. 어머니 혼자 작은 매점 등을 운영하며 두 딸을 키웠고 계은숙은 어린 나이에도 언니와 함께 비닐 우산이나 신문팔이를 하며 생계를 도왔다. 어머니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가정불화를 겪다 아버지와 결별하고 친정에 돌아온 뒤에야 임신사실을 알았다. 애초 아버지 존재를 모르고 살았던 셈이다. 뒤늦게 아버지의 생존을 알고, 계(桂) 씨 종친회를 수소문해 찾았지만 애정없는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온 뒤 각종 불미스런 일에 연루됐다. 일부 내용은 실제와 달리 왜곡돼 알려지면서 억울한 게 많다고 들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해 세상 물정을 몰랐고, 일본에서 철저히 관리받는 생활을 하다보니 경제 관념이 희박했던 게 사실이에요. 일본에서 들어올 때 거의 빈손으로 왔고, 그나마 서울에 있던 집과 재산도 주변사람들에게 속아 지키지를 못했어요. 노래만 하고 살아온 무지함이 만든 결과죠. 특히 사기관련 부분은 지금도 정말 억울한 게 많아요. 믿고 도장을 맡긴 게 잘못이긴 하지만, 앞 뒤 해명할 새도 없이 언론에 사기혐의로 먼저 보도가 돼 해결 방법을 찾기는 커녕 수렁 속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어요.
계은숙은 2014년 7월 자신이 소유한 서울 강남 다가구 주택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맺으며 선순위 보증금 액수를 속인 혐의와 허위 서류로 외제차(포르쉐)를 리스하고 이를 담보로 불법대출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와중에 칩거 생활 도중 자택과 호텔 등을 오가며 필로폰을 소지하고 투약한 혐의까지 받았다. 계은숙은 재판과정에서 "포르쉐는 보지도 못했고,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섰을 뿐 절대 사기의도는 아니었다"며 억울해 했지만, 이후 마약 투약혐의가 겹치면서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추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마약 논란 아닌가? 일본에서 돌아와 자숙해야 할 시간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재기를 바라던 팬들의 실망이 컸다.
그 부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일본에서부터 악순환이 반복됐어요. 각종 소송에 휘말려 17억엔(약 170억원)에 달하는 재산이 날아갔고 그 여파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가수로서도 슬럼프를 겪고 있었죠. 자포자기 심정에 빠져드니 다 잊고 싶더라고요. 그 무렵 수면제 100알에 소주를 타서 들이키면 끝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으니까요.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어요. 엄마를 생각하며 두 번 다시 몹쓸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유혹이 저를 괴롭혔어요. 약물 의존은 영원히 졸업했고, 늦었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만이 팬들께 사죄하는 길임을 알고 있어요.
2015년 6월 25일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은 계은숙이 자택에서 3차례에 걸쳐 메스암페타민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힌 뒤 전격 구속했다. 이듬해인 2016년 대법원은 계은숙에게 징역 1년 2개월과 추징금 80만 원을 확정한다. 수원교도소 수감 중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모친이 세상을 떠난다. 법무부로부터 3박 4일간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어머니의 빈소를 찾은 계은숙은 "임종은 커녕 돌이킬 수 없는 불미스런 일로 어머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통곡했다.
-일본 가요계의 인기 바로미터는 매년 연말 치러지는 NHK '홍백가합전'이다. 7연속 출연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기모노를 입고 출연했다는 논란도 있다.
맹세코 저는 30년 가까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끝까지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켰어요. 개명하고 귀화하라는 요구에 응했다면 삶은 편안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홍백가합전에 기모노를 입고 나오라고 해 난감했어요. 엔카가수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때였고, 저를 오래도록 사랑해준 일본 팬들을 등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결국 딱 한 번 기모노를 입기로 했는데, 대신 엔딩 때는 한복을 입고 나가는 조건을 달았어요. 당시 방송을 보신 많은 교민들이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어요. 비록 엔카 무대에서 주목받는 가수라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어요.
일본 NHK '홍백가합전'은 웬만큼 인기가 있는 일본 가수들도 '한 번만 초청받아도 소원이 없겠다'고 말할 만큼 영예로운 무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동안 한국 가수가 일본에 많이 진출했지만 김연자 조용필 보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 극히 일부만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캔디팝'과 '웨이크미업'으로 활동하며 오리콘 1위를 기록한 트와이스가 이 무대에 오르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계은숙은 '한국 가수 7년 연속 출연'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오래 활동했다. 우선 국내 무대에서 인정을 받아야겠지만 향후 일본 무대 복귀가 가능할 것 같나?
일본은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에 지냈던 추억이 있는 곳이에요. 염치 없는 일이지만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죠. 제 청춘을 불살랐고 모든 애증의 추억이 깃든 곳이니까요. 정상과 바닥을 경험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었지만 오로지 노래 하나로 지금까지 삶의 끈을 이어왔어요. 다만 지금은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오직 국내 팬분들한테 인정을 받는 것 뿐입니다. 일본은 국내팬 분들이 저를 받아주시고 제 노래를 인정해준 뒤에나 생각해볼 일이라고 생각해요.
계은숙은 일본 무대서 추방된 2년 뒤인 2010년 3월 26일, 서울 이태원 캐피탈 호텔에서 조촐한 디너 무대를 가졌다. 소식을 들은 일본 아사히(テレビ朝日) TV는 당시 이 모습을 담아 일본 팬들이 궁금해 하는 계은숙의 근황을 발빠르게 알린다. 계은숙은 엔카곡 '스즈메노 나 미다'(すずめの?, 참새의 눈물)를 부른 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일본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다 "고 눈물을 흘렸다. 이로부터 다시 9년 만인 지난달 19일(컴백쇼케이스 나흘 후) 일본 도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일본은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지냈던 추억이 있는 곳,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그리움을 전했다.
-공백기간에도 팬클럽을 중심으로 꾸준히 비공개 음악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요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팬카페 모임 회원들이 마련해준 작은 무대는 꾸준히 했어요. 팬들의 깊은 관심과 애정어린 격려가 컸지요.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노래를 멀리할 수 없었어요. 강 기자님이 잘 아시는 것처럼 몇년 전부터 가요계 분들이 적극적으로 컴백을 위해 도움을 주셨지만 되레 일만 꼬이고 말았잖아요. 그나마 힘든 기간에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게 다시 돌아올 기회가 생긴 것 같아요. 아직은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한 체질이에요. 다만 발성과 무대체력을 키우기 위해 많이 걷고 움직이는 습관을 생활화하고 있죠.
계은숙은 음악을 가까이 하면서 꾸준히 자기관리를 해왔다. 신곡 발표 후 전성기 시절보다 한층 성숙하고 깊어졌다는 평을 받는다. 이는 언젠가는 팬들 앞에 서겠다는 다짐과 일념이 만들어낸 결과다. 계은숙의 컴백을 도우며 음악작업을 해온 프로미스 엔터프라이즈 차경석 대표는 "일본 중장년 엔카팬들 사이에 계은숙 씨는 여전히 전설의 스타가수로 남아있다"면서 "함께 곡 준비를 하면서 타고난 가창력과 음악 열정에 깊은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계은숙한테는 어머니가 유일한 '희망'이고 삶의 목표였다. 자신의 불찰로 수감생활을 하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렇게 어머니를 떠나 보냈기 때문에 지금은 노래를 잘 부르는게 목표가 아니라 노래로 가슴의 한을 풀고 싶다"고 했다.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만큼 계은숙의 마음 한구석에는 더 큰 허허로움이 남아 있다.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싶은 가수로서의 소망은 이미 절반을 이뤄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여행과 평화로움이다.
계은숙은 청산도 풍경 같은 푸른 보리밭과 파란 바다를 언급했다. 그는 "일본에 그렇게 오래 살았음에도 늘 일정에 쫒겨 제대로 여행 한 번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서 "음악적 성취와는 별개로 홀로 여행을 떠나 한국적 평화로움에 온전히 젖어들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계은숙은 성공과 추락, 누구보다 극과 극의 굴곡진 인생을 살아 온 가수다. 일본에서의 추방은 그에게 너무나 깊은 상처를 안겼다. 그의 새 앨범 '리:버스'(Re:Birth)는 사실상 다시 태어난다는 마지막 각오가 서린 노래들로 채워졌다. 가요계는 긴 좌절의 시간을 견디고 돌아온 그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e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