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불확실성·경제 위기 '데드라인' 공포 해소 노력 필요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우려'를 넘어 '공포'다."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대기업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쏟아내는 탄식이다. 이들의 불안한 외침을 엄살이라고 여기기엔 수출과 취업률, 경제성장률 등 연일 뒷걸음질 치고 있는 각종 경제지표와 더불어 대기업들이 직면한 대외 불확실성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빨간불이 켜졌고, 제조업의 중추를 맡은 자동차 업계는 매년 반복되는 노조의 으름장과 미국 정부의 관세 폭탄 우려 속에 움츠러든 지 오래다.
어디 그뿐인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중국의 '전기차 굴기' 앞에 수년째 노골적인 보조금 차별을 받아가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현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제시한 '수출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천과제 그리고 기업들이 처한 작금의 현실은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지난 2017년 12월 LG그룹을 시작으로 당시 나라 경제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대자동차와 SK, 삼성그룹 등 '4대 그룹'을 잇달아 방문하며 정부의 경제기조에 발걸음을 맞춰달라 주문했다. 김 전 총리와 만난 각 그룹 총수들은 그때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통 큰' 투자 플랜으로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수장과 그룹 총수의 만남을 두고 '정부가 기업 투자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경제 살리기'라는 하나의 목표로 정부와 대기업 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자체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와 대기업 사이에 벌어진 대대적인 이벤트는 일선에서 기업과 스킨십에 나섰던 경제 수장의 '중도 하차'로 그 효과를 기대할 것도 없이 끝이 났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신흥국의 경기 침체 등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불확실성은 조금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은 물론 나라 안에서는 대기업 총수와 관련한 정치적 해석이 쏟아지며 불안감을 키웠다.
경제 위기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지했기 때문일까. 출범 2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올해 들어 조금은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 등 대기업이 사활을 걸고 있는 미래 사업 분야에 정부가 앞장서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공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정 사업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기업의 목표와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구체적으로는 상이할지라도 그것이 결국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공통의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선 만큼 정부와 대기업의 스킨십이 "일자리를 늘려 달라" "도와주겠다"는 식의 정치·경제적 퍼포먼스로 그치지 않고, 상호 윈윈하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관 협력 모델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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