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헉~ 헉~' 패스트트랙 지정 날 쫓고 쫓긴 숨 막혔던 순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예정됐던 지난달 29일 오후 회의를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본청 행안위 회의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누워서 항의했다. /국회=이새롬 기자

점거 농성부터 날선 추격전…'신의 목소리' 장제원(?)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정의당이! 정개특위 위원도 아닌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와서 저희를 기만하는 동안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당 2중대, 3중대 정개특위 위원들이 정무위 회의실에 가고 있다고 합니다! 도둑처럼 뒷구멍으로 정개특위 회의를 준비하고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30분께 자유한국당 소속 정개특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국회본청 4층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를 가득 메운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당직자들 사이에서 절규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행안위에는 특위 위원이 아닌 사람을 보내 정무위원회에서 정개특위를 개의하는 '트릭'을 시도했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이날 국회는 선거제 개혁·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으로 지정하는 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를 놓고 벌인 갈등 사태를 5일 만에 '가결'로 마무리했다.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야심한 시각 두 특위는 관련된 법안 5개를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해 가결시켰다.

지난달 25일부터 여야 4당은 합의에 따라 특위 회의를 개의하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한국당의 극렬한 육탄 저지로 번번이 가로막혔다. 다음 날 새벽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 각 당 당직자 사이에선 폭력 사태를 방불케하는 충돌도 있었다.

긴장과 감시 상황은 주를 넘긴 29일까지 계속됐고, 이날도 역시 행안위 회의실과 본청 2층 특위 회의실 앞엔 한국당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오후 정개특위가 열릴 예정인 국회 본관 4층 행안위 회의실 앞에 선 김재원 한국당 의원은 취재진에 양해를 구해 복도와 공간을 비우고 보좌진을 정렬시켰다. /문혜현 기자

◆ 의원님의 '언론 정렬'(?)

한국당의 투쟁 의지는 확고했다. 보좌진과 당직자를 동원해 스크럼을 짜고, 줄을 맞춰 행안위 회의실 앞을 점거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 30분부터 정개특위 앞 대열 정렬은 김재원 한국당 의원이 맡았다. 김 의원은 회의장 앞 상황을 취재하는 취재진까지도 이리저리 옮겨 달라고 요청하며 열성을 보였다.

김 의원은 연신 "언론인 여러분 여긴 취재가 안 된다. 저 뒤로 빠져 달라"며 "보좌진 여러분 이리 오시라, 여기 줄 맞춰서 앉아 달라"고 자리를 정리했다.

좁은 행안위 앞 복도, 엘리베이터 앞은 어느새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 취재진들로 가득 찼다. 통로 가장자리에도 보좌진과 당직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10시로 예정된 정개특위 시간이 다가오자 대열 맞춰 앉은 의원들은 눕는 연습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덩달아 취재진도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갑자기 한 의원이 "저기 저 기자 누구야. 가서 어디 매체 누구 기자인지 좀 알아와"라고 매섭게 말했다. 이를 들은 보좌진 일부는 방금 카메라로 의원들의 모습을 찍어간 사람을 뒤쫓아 뛰어갔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국회 상황이 생중계되는 등 다양한 매체들이 국회를 드나들어 예민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한때 회의장 점거 농성에서 한국당의 구호가 '공정 보도', '진실 보도'였던 것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지난달 29일 정개특위 회의는 결국 행안위 회의실이 아닌 국회본청 6층 정무위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 민주·정의당의 '트릭 작전'

당초 오후 10시로 예정된 정개특위가 30분가량 늦춰지자 장제원 의원은 "이렇게 된거 보니까. 또 공수처법이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이렇게 일방적인 의사 일정을 정하는 것이 민주당과 민주당 좌파 연대의 행동이다. 이것은 간사 합의도 없는 원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잠시 후 정의당 윤소하·이정미·추혜선 의원이 '정치개혁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한국당 쪽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정개특위 위원이 아니었다. 한국당 사람들은 '2중대! 꺼져라!'는 구호를 외치며 길을 막았다. 구호 소리와 함성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장 의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장 의원은 "잠시만요! 정의당이, 정개특위 위원도 아닌 사람들이 와서 저희를 기만하는 동안 민주당과 2중대, 3중대 정개특위 위원들이 정무위원회 회의실에 가고 있다. 도둑처럼 뒷구멍으로 정개특위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만약 정무위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면 이것은 원천 무효임을 여러분께 알려드린다!"고 외쳤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은 일제히 6층 정무위원회실로 향했다. 급히 달려간 정무위회의실엔 이미 심상정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3당(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위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국회 직원들과 속기사들도 와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심상정 위원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회의가 방해받지 않도록 출입구를 단단히 통제했다. 취재진조차 신분증을 목에 걸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했다. 뒤늦게 장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소속 정개특위 위원들이 입장하자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회의를 속개했다.

한국당 소속 국회 정개특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29일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을 향해 강하게 항의했다. 회의 내내 이어진 장 의원의 고성에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신의 목소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새롬 기자

◆ 이철희 "신의 목소리" 발언에 발끈한 장제원 "조롱합니까!"

장 의원 정개특위 회의 내내 목소리를 높이며 심 위원장에 항의했다. 그는 "이게 뭡니까! 찌질하게!"라며 "한국당 빼놓고 패스트트랙? 어떻게 선거를 이렇게 합니까. 저는 심상정 위원장님 믿었다. 소수자를 보호한다고?"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날 오후 10시 50분께부터 열린 정개특위 회의장에선 단연 장 간사의 목소리가 돋보였다. 연신 "발언권을 달라"며 고성을 지르던 장 간사는 의사진행발언에서 "패스트트랙을 중단해달라. 의회민주주의의 파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 위원장의 결정에 따라 패스트트랙 안건 상정 여부에 대한 표결이 진행됐다. 기표소를 향하는 위원들을 향해 장 간사는 "여야가 바뀌었다고 정말 이렇게 하나. 공수처는 패스트트랙 대상이라고 본다. 이건(선거제도)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 이철희 의원은 "진짜 신의 목소리다. 안 지칩니까?"라고 감탄(?) 섞인 말을 했다. 장 간사는 이에 발끈했는지 "조롱합니까?"라고 쏘아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표결이 이뤄진 후 심 위원장이 표결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장 의원은 자리를 벗어나려 통제 중인 폐문을 열었다. 이때 방호과 직원과 한 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 장 간사는 직원을 향해 "뭐야 이거! 나 밀었어요? 국회의원을 밀어?"라며 따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방호과 직원은 난감한 듯 "나가시면 안됩니다"를 반복했다.

결국 이날 정개특위는 재적위원 18명 중 한국당을 제외한 12명의 찬성으로 '선거제 개혁'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했다. 첨예한 갈등과 반목, 충돌과 고성 끝에 국회는 앞으로 최장 330일간 해당 안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할 예정이다.

여론은 이번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몸싸움'을 재현한 국회에 큰 실망과 비판을 보내고 있다. 이 가운데 패스트트랙의 순기능으로 꼽히는 '대화와 타협', '일하는 국회'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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