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프로야구 KIA의 에이스 헥터 노에시가 시즌 4번째 노 디시전(No decision)을 기록했다.
야구는 단체 스포츠지만 개인인 투수에게 승리와 패전의 기록을 부여한다. 선발투수가 승리나 패전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으면 노 디시전이다. 한때는 선발투수가 승패 없이 경기를 마치는 것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헥터는 18일 넥센전에서 7이닝 동안 3안타만을 내주며 2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1-2로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는 올시즌 17경기에서 한 차례의 패전도 없이 14승을 거뒀다. 14연승은 2003년 정민태와 함께 개막 후 선발 최다 연승 타이기록.
시즌 첫 패전과 함께 연승도 끊어질 위기에 놓였으나 9회초 공격에서 이범호가 2점 홈런을 터뜨리며 KIA가 역전에 성공하면서 그의 이날 투구 결과는 노 디시전이 됐다. 이에 따라 연승 기록도 이어지게 됐다. 노 디시전은 패전과 달리 연승을 중단시키지 않는다.
1930~194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칼 허벨은 1936년과 1937년에 걸쳐 24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 자체도 대단하지만 연승의 과정에서 노 디시전이 단 세 번뿐이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런데 사실 노 디시전이 투수의 역량과 꼭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뒤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갔을 수도 있고, 뒤진 상태에서 교체됐지만 이후 팀 타선이 동점을 만들거나 경기를 뒤집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투하고도 동료 타자들이 점수를 뽑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거나 노 디시전에 그칠 수도 있고,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지만 불펜이 리드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선발투수가 승리투수가 되려면 자신의 호투만으로는 부족하고 타자와 불펜투수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승패 기록은 갈수록 중요성이 떨어지고 평균자책점과 퀄리티스타트 등 다른 통계수치가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헥터는 다승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평균자책점은 3.13으로 6위다. 물론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도 훌륭한 수준이다. 게다가 그는 18번의 등판에서 15번이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할 만큼 뛰어난 투수다. 하지만 리그 최강을 자랑하는 KIA 타선이 그가 등판한 경기에서 많은 점수를 뽑아준 것이 한 번의 패전도 없이 연승을 달리는데 큰 도움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헥터에 대한 경기당 득점지원은 무려 8.95점으로 팀 동료 양현종과 함께 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가장 높다.
18일 경기는 투수가 잘 던지더라도 타자들 탓에 패전투수가 될 수 있고, 반면 타자들 덕분에 패전투수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흔히 '투수 놀음'이라고 하지만 투수의 힘만으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투수의 승패 기록과 연승마저도 투수만의 영역은 아니라는 사실이 야구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승리도 패전도 아닌 그 중간의 결과, 노 디시전은 그런 야구의 묘미를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