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현정 기자] 가수 제이비(JAY B)의 지난 행보를 살펴보면 제법 독특한 면이 있다.
'K팝 3대 기획사'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약 9년간 그룹 갓세븐(GOT7), 제이제이 프로젝트(JJ Project), 저스투(Jus2)의 멤버로 활동을 펼쳤다.
화려했던 JYP엔터테인먼트 시절을 마치고 제이비가 다음 행선지로 선택한 곳이 힙합 전문 레이블 하이어뮤직이다. K팝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사와 결별하고 둥지를 튼 곳이 특정 장르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이라는 점은 제이비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음악 목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행보였다.
다만 제이비가 이곳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21년 5월 11일 하이어뮤직과 전속계약을 알린 지 1년이 조금 지난 2022년 7월에 계약 해지를 밝혔고, 이후 카덴차레코즈, 모브컴퍼니 등에 몸담았으나 이 역시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 않았다.
갈 지(之)자 행보 끝에 제이비가 안착한 곳이 현재 소속된 528Hz다. 올해 4월 528Hz 소속 프로듀서 겸 솔로가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알린 제이비는 그로부터 약 두 달 후인 6월 10일 세 번째 EP 'TREE(트리)'를 발표하고 건재함을 알렸다.
그리고 이 'TREE'에서 제이비는 R&B 장르 특유의 딥한 분위기와 사운드 질감 등을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그가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정확하게 알렸다. 그래서 그런지 'TREE'는 유독 제이비가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 앨범이었다.
또 그래서 제이비가 지난달 27일 발매한 싱글 'Chptr.1(챕터.1)'은 더 흥미롭다. 불과 4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 싱글에는 느닷없이 신스웨이브와 팝 성향이 가득한 사운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제이비는 "싱글 'Chptr' 시리즈는 R&B 베이스에서 많이 벗어난 음악을 별도로 간추려 선보이는 '에필로그'나 '외전(外傳)' 성격의 곡들"이라고 설명했다.
<더팩트>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제이비와 만나 그가 구상하고 있는 음악 청사진을 들어봤다.
제이비는 우선 'Chptr'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 시리즈인지부터 설명했다. 그는 "내가 내고 싶은 앨범도 많고 쌓여 있는 곡도 많다. 하지만 곡을 만들었다고 무조건 다 앨범에 수록할 수는 없다 보니, 생각했던 결과와 다르지만 좋은 곡을 따로 분류했다"며 "앞으로 싱글 사이즈는 이 'Chptr'라는 제목으로 따로 나오게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나하나 풀어가야 또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나온 'Chptr.1'에 수록된 'Honeydew(허니듀)'와 'Sweetie(스위티)'는 확실히 'TREE'에서 들려준 음악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타이틀곡 'Honeydew'는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와 리드미컬한 베이스라인에 특징적인 휘파람 소리를 가미한 신스팝이고, 'Sweetie'는 팝 성향이 강한 팬 송이다.
'Honeydew'를 두고 제이비는 "최근 위켄드가 내한 공연도 오고 신스웨이브를 앞세운 그룹도 등장했는데, 우연히 타이밍이 겹쳤을 뿐 예전부터 내려고 준비한 곡"이라고 설명하며 웃었다. 이어 그는 "물론 위켄드는 이 장르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라 영향이 없지는 않으나,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라서 한 번 경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Honeydew'는 춤을 더 출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전작 'Layback(레이백)'도 충분히 잘 나온 작품이지만, 퍼포먼스적인 면에서는 장르가 지닌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나는 많이 쌓아가려고 하는데, 집에서 혼자 쌓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세상에 더 내보내려 한다"고 'Honeydew'를 선보인 이유를 덧붙였다.
제이비가 이 곡에 자신감을 가질 만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발매 전 제이비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진영에게 'Honeydew'를 들려줬고, 그에게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제이비는 "신곡을 들려주면 박진영 프로듀서가 늘 '좋다'고는 하는데, '안무가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안무까지 보자고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또 같은 '좋다'라도 온도 차가 있지 않나. 이번에는 반응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고 전해 'Honeydew'에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렇게 타이틀곡으로 정해진 'Honeydew'와 함께 수록된 'Sweetie'는 이미 그가 공연에서 라이브로 선공개한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팬을 위한 노래를 만들겠다'는 명확한 의도에서 시작됐다.
제이비는 "'내가 팬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노래를 불러 주겠다'는 내용에서 시작한 곡이다. 내가 팬에게 애정 표현을 잘 못한다. 그래서 노래로 풀어내려고 했다"며 "팬을 생각하며 이들을 향한 고마움을 담은 곡"이라고 밝혔다.
제이비는 직접적으로 애정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팬을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애틋하다. 그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비는 "갓세븐 활동은 사실 장점밖에 없다. K팝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게 너무 많다"며 "갓세븐으로 활동한 덕에 내 노래를 더 알릴 수 있었고, 처음 R&B 음악을 했을 때 팬들이 믿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팬이 있다는 든든함이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심을 드러냈다.
물론 K팝 그룹 출신으로 장르 음악을 하다 보면 편견이나 선입견과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은 자신이 풀어내야 할 숙제라고 선을 그었다.
제이비는 "K팝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높고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더라도 그걸 넘어가는 건 내 숙제"라며 "솔직히 아직 나와 내 음악이 리스너에게 뚜렷한 이미지로 각인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음악이 R&B 장르 리스너에게 닿았나 하면 냉정하게 닿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새로 쌓아야 할 게 너무 많다. 나를 알리고 내 음악을 알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끔 하는 게 목표다. 힘든 숙제지만 잘 풀어나가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사실 갓세븐은 K팝 신에 큰 족적을 남긴 인기 그룹으로, 제이비에게는 비슷한 음악을 이어가며 팬덤을 유지하는 쉬운 길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좋아하니까 그렇다.
제이비는 "한국 R&B가 도전하기 어렵다. 넘어야 할 산이 조금 높아 보이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냥 좋아하니까 하는 거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JYP엔터테인먼트를 나와 하이어뮤직에 갔을 때 생각에 조금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하이어뮤직이 힙합 레이블로 이름을 알린 것을 보고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R&B를 하다 보니 R&B를 많이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것은 어떤 증명일 수도 있지만, 가장 첫 번째는 역시 제이비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Chptr' 시리즈 역시 조금의 결이 다를 뿐 큰 틀에서는 '그가 하고 싶은 음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이비는 "내 음악 인생을 구분해 보면 JJ프로젝트가 챕터 1, 갓세븐이 챕터 2, 하이어뮤직부터 다른 회사들이 챕터 3, 지금이 챕터 4라고 생각한다"며 "챕터1때는 너무 아기라 아무것도 몰라서 아쉽고, 챕터2는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챕터3는 새롭게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지금 챕터4는 열심히 달려야겠다 생각뿐이다"라고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또 그는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논란을 불렀던 자신의 과오를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다. 제이비는 "과거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마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마주 보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되려 답답했을 거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또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 제이비지만, 막상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딱히 거창한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제이비는 "거창하게 어떤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 한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그걸 쭉 하면 좋겠다"고 말해 앞으로도 '제이비다운 음악'을 들려줄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