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문채영 기자]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저스틴 민이 '흐르는 여정'으로 국내 관객과 만난다. 그가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대본을 읽자마자 감동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언어의 벽조차 뛰어넘는 저스틴 민이다.
저스틴 민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영화 '흐르는 여정'(감독 김진유) 개봉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어린 시절 독일로 입양된 뒤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는 지휘자 민준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김혜옥 분)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며 고요했던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저스틴 민에게 '흐르는 여정'은 첫 한국 장편영화 주연작이다. 그는 "모든 처음은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내게 '흐르는 여정'이 그런 영화"라며 "강릉에서 촬영하며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뿐만 아니라 관객과 만나는 무대 인사 등 재밌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저스틴 민이 '흐르는 여정'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내가 출연할 만한 작품을 찾아왔지만 마땅히 와닿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만난 '흐르는 여정'의 대본은 보자마자 강한 감동이 느껴졌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훌륭했다"고 말했다.
"한국이라고 해서 미국에 있을 때와 작품 고르는 기준이 특별히 다르지 않아요. 하나만 따지기보다는 그때의 생각과 상황 등에 맞춰서 선택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죠. 작품 안에 저를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스토리든 캐릭터든 제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해요."
다만 어려움은 존재했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연기를 하려다 보니 영어로 연기할 때보다 몇 배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저스틴 민은 "영어로 연기할 때는 감정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로 연기할 때는 단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점도 있다. 저스틴 민은 "한국어로 연기할 때 좋은 점은 나의 다른 모습이 표현된다는 것"이라며 "언어는 마법 같다. 민준을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 연기는 더 따뜻하고 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진다"고 짚었다.
"제 한국어 실력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특히 한국에서 작품을 촬영하며 여러 단어 및 대화를 들으니 많이 발전하는 것 같아요. 아직 한국어로 한 인물을 연기하는 건 어렵지만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흐르는 여정' 속 민준은 한국을 찾은 이방인이다. 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가 입을 떼는 순간 모든 사람은 그가 외국 출신임을 알아챈다. 목표한 바가 있어 한국에 살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다른 이들과 큰 거리감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 저스틴 민은 그런 민준을 깊이 이해했다. 저스틴 민은 "독일 출신 민준과 같이 나 역시 미국에서 온 외국인"이라며 "내가 어렸을 때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기분을 민준도 똑같이 느낄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완벽하게 동화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국에 돌아와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길에 걸어 다니는 모습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지만 언어, 문화 등을 잘 모르다 보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어요. 미국과 달리 나이로 선후배를 따지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랐죠."
때문에 저스틴 민은 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의상과 헤어 스타일, 장신구 등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또한 막걸리를 마실 때 와인잔에 빨대를 꽂는 디테일도 직접 구상했다.
"민준의 모든 모습은 제 안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습들이에요. '내 안에 여러 얼굴이 있다'는 말처럼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도 비슷해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취향도 비슷하죠. 다만 저보다 민준이 인생을 더 낙관적인 태도로 밝게 사는 것 같아요.(웃음)"
저스틴 민은 작품의 또 다른 주연 배우 김혜옥과의 호흡도 전했다. 그는 "김혜옥 선생님과 같이 촬영하다 보니 깊은 연결성이 생겼다. 나를 많이 챙겨줬다"며 "덕분에 한국의 정서 정을 더 깊게 느끼게 됐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저스틴 민은 "극 중 민준은 춘희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다. 하지만 결국 춘희를 잃게 된다. 춘희를 추억하며 공연을 지휘하는 장면에서 민준을 연기하며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민준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성찬을 연기한 배우 박대호를 향해서는 아낌없는 칭찬을 전했다. 그는 "박대호는 내가 아는 가장 스윗한 청년"이라며 "같이 일하기 굉장히 편했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좋은 케미스트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스틴 민은 앞으로도 꾸준히 한국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길 소망했다. 현재 대본을 열심히 검토 중이며 내년에도 차기작 공개를 앞뒀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천재 역할을 한국 작품에서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저스틴 민은 '흐르는 여정'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었다. 그는 "작품을 촬영하며 천천히 살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관객들도 쉬어가길 바란다. 속도를 줄이고 편하게 숨 쉬며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다 보니 일상 속 소소한 행복, 단순한 기쁨을 많이 놓치는 것 같아요. 멋진 일몰을 보는 순간, 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함께하는 시간 같은 것들이요. 이 영화를 관람하는 순간만큼은 짧은 인생에서 천천히 쉬어가는 느낌을 받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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