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뮤지컬 '엘리자벳'이 화려한 황실의 이면에 감춰진 한 여인의 고독과 자유를 향한 갈망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서사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시대를 넘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여러 삶의 질문을 무대 위에 꺼내며 오랜 시간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를 오롯이 증명한다.
지난 8월 개막한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역사적인 인물의 삶에 판타지적 존재인 죽음(Der Tod)을 더한 독창적인 설정을 통해 한 인간이 시대와 신분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삶과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펼쳐낸다.
공연은 엘리자벳을 암살한 희대의 살인마이자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는 안내자 루케니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씨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밝은 소녀였던 엘리자벳은 우연히 만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사랑에 빠져 혼인하고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엄격한 황실의 규율과 시어머니 소피의 숨 막히는 통제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된 것. 프란츠 요제프도 어머니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점점 고립돼 가는 엘리자벳에게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지닌 존재인 죽음이 다가오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민다.
이 가운데 엘리자벳과 마찬가지로 황실의 권위와 통제 속에서 고통받았던 아들 루돌프 황태자의 죽음은 엘리자벳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과 깊은 죄책감을 남긴다. 이후 그는 점점 황실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돌지만 끝내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실제로는 황후를 노린 암살자인 루케니가 작품 안에서는 엘리자벳이 스스로 죽음을 사랑했고 원했다고 주장하면서 황후의 화려한 삶 이면에 감춰진 고독과 내면의 갈등을 다시 한번 새겨주고,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2021년 국내 초연 이후 다섯 번의 시즌을 거친 '엘리자벳'은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입증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관객들을 찾은 공연은 기존 구성을 바탕으로 한층 더 정교해진 무대 예술과 새로운 해석을 선보이며 익숙한 서사 속에서도 이번 시즌만의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부채를 형상화한 대형 세트다. 이게 무대 전반을 아우르면서 프로덕션의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한다. 또한 프란츠 요제프의 집무실과 결혼식장에는 고딕 양식의 거대한 돌기둥 등 웅장한 세트가 더해지며 황실의 위엄을 제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점점 자유를 잃어가는 엘리자벳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부각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엘리자벳의 화려한 머리 장식을 모티브로 한 대형 액자와 드레스 등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에도 변화를 주고, 황실의 화려한 정원과 죽음이 등장하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며 무대의 스케일을 한층 확장했다. 이전 시즌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곳곳에 더해진 달라진 점과 새로운 연출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린아와 고은성은 무대 위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관객들을 제대로 사로잡는다. 우선 린아는 이국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며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황후로 기억되는 엘리자벳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어 그는 진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섬세한 보컬과 풍부한 감수성으로 큰 무대를 가득 채우고, 황후의 화려함 이면에 자리한 인간적인 고독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특히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엘리자벳의 변화를 눈빛에 담아내며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뮤지컬에서는 상징적인 인물인 죽음이 된 고은성은 백금발로 인물의 미스터리함을 배가시키며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야말로 자신만의 색깔로 죽음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해석하며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서, 이번에도 배우들의 열연과 웅장한 무대 그리고 생각할 거리들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는 '엘리자벳'은 오는 11월 15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