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실낙원' 연상호 감독의 뚝심과 소신


'얼굴'의 성공에 힘입어 선보인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실존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엔터테이닝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이 영화 실낙원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CJ ENM

[더팩트|박지윤 기자] 익숙한 규모와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뚝심 있게 펼쳐낸다. 뚜렷한 소신으로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실낙원'을 완성한 연상호 감독의 이야기다.

그는 영화 '실낙원'의 개봉을 앞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연 감독은 어머니가 쓴 원안을 사서 이야기를 확장시킨 이유부터 연출자로서 AI(인공지능)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솔직하게 들려줬다.

지난 21일 스크린에 걸린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로,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작이다.

연상호 감독은 어머니가 쓴 세 편의 작품 중 하나를 사서 '실낙원'을 완성했다. 나쁜 짓을 일삼고 다니는 아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들을 품은 상태로 소멸하려는 어머니의 기묘한 심리가 담긴 원작을 본 그는 오랜 시간 함께 지냈지만 잘 모르는 어머니를 알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고.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을 AI와 접목시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다.

"부모님을 파봐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했는데 결론적으로 AI가 인간의 실존과도 관련이 있다고 바라봤어요.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공부했던 실존주의 문학들의 고민이 AI 시대의 중요한 질문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대중영화로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류소영의 마지막 선택을 두고 의견을 나누는 게 실존에 대한 자연스러운 토론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식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번 작업의 동력이 됐죠."

지난 21일 개봉한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CJ ENM

영화는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류소영이 가상의 자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AI 서비스를 이용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중,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9년 만에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막연한 기쁨보다 불안함과 불편함이 앞선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한 시간을 보낸 아들의 무거운 비밀을 마주하고, 훌쩍 자란 선우와 AI로 구현된 어린 선우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를 보면 결국 AI는 상실이라는 감정을 달래주는 존재인지,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는 걸 방해하는 요소인지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영화를 만든 연상호 감독이 관객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건네고자 했던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사람의 감정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밀턴의 '실낙원'을 적용시킨 이유도 사색이 있는 세상에서 살면서 행복하고 고통받기도 하는 것들이 재밌게 다가오더라고요. 선우가 뱀이라고 생각했고 안전한 AI 선우를 질투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적인 욕망이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서 AI 시대에 인간적인게 무엇이고 어떻게 인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소영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명확한 주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엔터테이닝한 요소를 제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실낙원'은 순제작비 약 5억 원을 투입해 14회차 만에 촬영을 완료한 작품으로,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다. 지난해 약 2억 원의 제작비로 완성한 '얼굴'로 108만 명을 사로잡으며 성공을 거둔 그는 수익이 나면 배분하는 방식이 아닌, 보다 더 체계를 갖추고 깨끗하게 정리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연상호 감독은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를 선보인 것에 관해 매년 하고 싶은데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CJ ENM

"2만 명이 본 '돼지의 왕'보다 장르성이 없는 '얼굴'을 100만 명이 넘게 봤어요. 상상도 못 했어요. 일종의 사건이죠. 그렇다고 '실낙원'을 100만 명이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만들어내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담론을 펼치는 게 제 목적이거든요. 제가 품고 있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목적성을 이룰 수 있는 작품이에요. 매년 하고 싶은데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웃음)."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정이' '선산'으로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던 만큼, 이유 있는 믿음을 갖고 이번 작품을 건넸단다. 그는 "김현주는 연기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류소영이라는 인물은 그 정도의 에너지와 디테일함을 갖고 있는 그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혀 걱정을 안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 '지옥2' 특별 출연으로 인연을 맺은 배현성을 류선우 역에 캐스팅한 이유도 설명했다. 연 감독은 "그때 보니까 몰입력이 좋고 진지해서 한번 또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만났는데 여유가 있더라"며 "탄광촌이 첫 촬영이었는데 눈빛과 몰입력이 좋더라.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앞서 연상호 감독은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군체'로 제79회 칸영화제를 빛냈고, 국내에서 595만 명의 관객을 사로잡으며 2026년 개봉한 한국 영화 흥행 TOP2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거뒀다. 이어 그는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가스인간'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실낙원'까지 선보이며 열일 행보를 펼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촬영을 끝낸 예토를 후반 작업 중이고 기획에 참여한 넷플릭스 일본 시리즈 기생수: 타미야가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행보를 들려줬다. /CJ ENM

이는 쉴 새 없이 빠른 속도로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는 유튜버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투영된 행보다. 연 감독은 "유튜버들은 실시간으로 댓글을 보면서 빠르게 반응을 확인하고 수정한다. 유튜버 출신 감독들이 대중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도 대중의 목소리를 빨리 듣는 것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작업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라요. 혼자 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일단 내놓고 대중의 반응을 빨리 듣고 거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시 구상하는 게 제가 선택한 방식이고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에서 가장 다작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답게 이날도 촬영을 끝낸 '예토'의 후반 작업을 진행 중이고, 기획에 참여한 넷플릭스 일본 시리즈 '기생수: 타미야'가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다작하는 감독에게 소재 고갈이나 자기복제에 대한 우려는 피하기 어려운 숙제다. 작품이 쌓일수록, 또 신작을 공개하는 기간이 짧아질수록 새로운 이야기에 대해 기대가 아닌 뻔함이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유 있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관객들의 실망감이 임계치를 넘어가는 순간 자동 은퇴해야겠죠. 이건 창작자의 숙명과도 같은 거니까요. 그리고 다작하든 적게 하든 임계치는 자동 조절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자연스러운 결과를 추구하고요. 실망의 임계치가 넘어가서 작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순간을 기다려요. 언젠가는 그 순간이 분명히 오겠지만 일단 올해는 아닌 것 같아요. 내년도 아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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