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넥스트 레벨③] 'K 없는 K팝'이 가져올 미래


필리핀 그룹 비니의 코첼라 무대 조회수 빅뱅보다 높아
'K 없는 K팝'과 글로벌 경쟁 가능성 커져

필리핀 그룹 비니(BINI)의 2026 코첼라 페스티벌 공연 영상은 약 3083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2026 코첼라 페스티벌에 출연한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코첼라 공식 소셜 미디어

'K팝'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넘어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국심이나 자의식이 아니라 현재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처럼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에서도 'K팝'을 주력 장르로 삼아 데뷔하는 그룹이 점점 늘고 있다. <더팩트>는 이들의 사례를 통해 K팝이 록이나 힙합처럼 온전히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살펴봤다. 더불어 향후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벌어질 'K 없는 K팝'과의 경쟁을 예측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K팝의 영향을 받은 그룹이 세계 각지에서 독립적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음악 장르로서 K팝의 정체성'과 별개로 대중화와 보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K팝이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검증된 시스템이자 산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는 "K팝은 성공이 검증된 산업 모델이자 성공 방식이다. 과거에는 뛰어난 음악과 스타의 매력이 성공의 핵심이었다면 K팝은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과정부터 음악과 퍼포먼스 제작, 팬덤 형성, 글로벌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체계화했다"며 "해외에서 제작되는 K팝은 단순한 음악적 유행을 넘어 이런 제작 시스템과 포맷이 현지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K팝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는 K팝 제작 시스템이 체계화되고 자리를 잡으면서 더 이상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앞으로 K팝은 한국에서 제작된 그룹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독자적으로 제작된 그룹과도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이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필리핀 그룹 비니(BINI)는 올해 4월 '2026 코첼라 페스티벌'에 출연했으며, 이들이 선보인 'Pantropiko(판트로피코)' 퍼포먼스 영상은 코첼라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23일까지 약 3083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비니의 조회수는 '2026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던 한국의 빅뱅(약 2317만 회)이나 태민(약 735만 회)은 물론 하이브-게펜 레코드의 미국 현지화 그룹인 캣츠아이(약 2302만 회)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를 단순히 자국에서의 지지가 높아서로 보기도 어렵다. 비니의 조회수는 태국 출신의 블랙핑크 멤버 리사(약 1167만 회)보다도 높으며, '2026 코첼라 페스티벌'에 참여한 모든 뮤지션을 따져봐도 저스틴 비버(약 1억 8000만 회)에 이은 전체 2위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K팝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비니뿐만 아니라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K팝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사례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누아엔터테인먼트 우영승 총괄 프로듀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 그룹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 음악과 콘텐츠를 선보이느냐'다"라며 "방탄소년단,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 에이티즈 등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K팝 전문가들은 K팝의 가장 큰 특징을 시스템으로 꼽았다. 사진은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여한 코스타리카 스카우트 단원들이 서울 마포구 와이지엑스(YGX) 본사에서 열린 K팝 댄스 수업을 받는 모습이다./더팩트DB

K팝 전문가들이 해외에서 제작된 그룹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은 결국 다시 '시스템'이다. K팝은 '한국인만 소화할 수 있는 특징적인 장르'가 아니라 '누구나 가져다 적용할 수 있는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발전하다 보니, 이를 현지화하고 잘 접목하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제작자는 "이미 K팝의 제작 및 프로듀싱 시스템은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했으며, 현지 기업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해 자국의 문화와 시장에 맞게 발전시키고 있다"며 "해외에서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같은 그룹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은 가장 먼저 K팝 시스템을 만들어 유행시킨 '원조'이고 그만큼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쉽게 경쟁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우영승 프로듀서는 "이미 축적된 제작 경험과 노하우,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사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상당한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한국 기획사의 경쟁력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아티스트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윤동환 위원은 "시스템을 가져다 적용할 수는 있어도 해외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마인드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라며 "시스템이라는 것은 데뷔를 준비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데뷔를 준비하는 스태프들도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 끌고 갈 수 있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외에는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재 글로벌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낙관론을 펼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경고도 나온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K팝을 비롯한 K컬처의 장점이자 단점이 '복제하기 쉽다'다. 예를 들어 비니의 경우 시작은 K팝의 영향을 받아 한국 트레이너나 프로듀서가 참여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모든 스태프를 필리핀 현지 인력으로 바꾸고 있다. 그리고 그 그룹이 코첼라 무대에 오르고 한국 K팝 그룹보다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K팝'이 아니라 각국의 대중음악을 의미하는 'P팝(Pinoy Pop)', 'T팝(Thai Pop)', 'M팝(Malaysian Pop)'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돌라(DOLLA)(위)나 태국의 포이브(4EVE) 등은 K팝이 아니라 M팝, T팝 등으로 소개된다./돌라, 포이브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임희윤 평론가는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문제가 K팝에 과연 오리지널리티가 있느냐다. K팝 역시 많은 장르가 섞여 만들어진 데다가 시스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해외에서 가져온 부분이 많다. 때문에 비니나 돌라, 포이브 같은 그룹이 자국 프로듀서를 통해 곡을 만들고 P팝, M팝, T팝이라고 해도 우리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K팝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전 세계에 'K팝은 한국이 원조'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고, 'K팝 신화'의 논리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외에서 제작되는 K팝 스타일 그룹의 등장이 반드시 한국과의 경쟁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공동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더팩트>는 K팝 전문가들이 한국과 일본 음악 시장의 교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살펴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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