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넥스트 레벨②] 'K팝 콘셉트'는 음악 장르가 될 수 있을까


'K팝 콘셉트'를 하위 장르로 구분하는 시도 늘어
'청량'·'걸크러시' 등 콘셉트, 그 자체로 장르 될 가능성

그룹 투어스(TWS)는 청량 콘셉트를 앞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청량과 같은 콘셉트를 K팝의 하위 장르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더팩트 DB

'K팝'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넘어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국심이나 자의식이 아니라 현재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처럼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에서도 'K팝'을 주력 장르로 삼아 데뷔하는 그룹이 점점 늘고 있다. <더팩트>는 이들의 사례를 통해 K팝이 록이나 힙합처럼 온전히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살펴봤다. 더불어 향후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벌어질 'K 없는 K팝'과의 경쟁을 예측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음악 장르로서 K팝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이유는 '음악의 보편성'과 관련이 있다.

K팝은 그 용어부터 한국(Korea)이라는 지역명이 포함돼 있으며, 이 때문에 K팝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한국 가수가 부른 노래'로 인식됐다. 하지만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한국을 벗어난 K팝이 등장하고 있다. (관련기사 [K팝 넥스트 레벨①] K팝은 '메이저 음악 장르'인가)

더군다나 대중음악 신에서는 실제로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음악이 크게 유행하면서 보편적 장르로 자리 잡은 일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기원한 '아프로비츠(Afrobeats)'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가 됐으며, 미국 흑인을 중심으로 탄생한 힙합 역시 인종이나 국적과 관계없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K팝을 다른 음악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과 기준이 확립된다면, 국적이나 제작 주체와 관계없이 누구나 K팝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받아들이기가 한층 쉬워질 수 있다. K팝의 장르적 정체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허나 아쉽게도 K팝은 초창기부터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형태로 발전한 탓에, 하나의 장르로서 고유한 특징이나 기준을 내세우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물론 K팝에도 다인원 그룹이라는 형태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파트 분배나 퍼포먼스 중심의 곡 구성, 댄스 브레이크나 보컬 클라이맥스를 위한 전개 방식 등 특유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이는 'K팝 같은 바이브'를 내는 장치일 뿐이지 하나의 장르로 성립하기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재미있는 점은 K팝 자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음악적 특징은 모호하지만, K팝에서 자주 사용하는 특정 콘셉트의 경우 비교적 명확한 음악적 특징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청량 콘셉트'는 밝은 느낌의 장조 화성과 경쾌한 리듬, 맑고 시원한 악기 음색, 상승감 있는 곡 전개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걸크러시' 역시 단조 중심의 화성과 강한 리프, 묵직한 베이스와 비트, 랩과 보컬의 극적인 대비, 터프한 래핑이나 챈트 등 일정한 음악적 경향을 보인다.

걸크러시 역시 장르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K팝 콘셉트다. 사진은 그룹 에스파가 Armageddon 무대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더팩트DB

이 때문에 해외 K팝 커뮤니티에서는 '청량'이나 '걸크러시' 같은 K팝의 콘셉트를 아예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로 취급해 구분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음악 제작 소프트웨어 큐베이스(Cubase)를 개발하는 스타인버그(Steinberg)사는 '걸크러시 음악의 그루브와 베이스를 만드는 방법(How To Create Groove And Bass For Girl Crush)'이라는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강의에서 K팝 작곡가 아조디(Azodi)는 트랩과 하우스의 요소, 808 스네어, 트랩 클랩, 베이스라인, 멤버별 보컬과 랩 활용법은 물론 80~125 BPM의 템포 등 '걸크러시'의 특징과 이를 만드는 공식을 제시한다. 이는 작곡가가 봤을 때 '걸크러시'는 그 단어 자체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명확한 음악적 특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해외 K팝 커뮤니티에서는 K팝의 하위 카테고리를 콘셉트별로 분류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으며, 당장 음악방송이나 공연에서 무대를 소개할 때 '청량', '섹시', '청순', '걸크러시'라고 하면 어떤 음악과 퍼포먼스가 나올지 대부분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K팝 콘셉트가 단순히 스타일링이나 패션, 퍼포먼스를 위한 도구를 넘어 음악적 특징을 공유하는 스타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스타일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면 결국 하나의 독립된 음악 장르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사실 K팝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신에서 기존의 장르 구분이 무용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음악을 장르가 아닌 분위기나 바이브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 멜론이나 스포티파이를 보면 음악을 장르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과 같은 식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추천하고 있다"며 "이처럼 최근 리스너들의 음악 접근법과, 키워드에 따른 플랫폼의 음악 구분, 음악을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으로도 함께 즐기는 경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청량을 장르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K팝 콘셉트의 장르화'를 두고 제작자와 평론가의 의견은 나뉘는 편이다. 누아엔터테인먼트의 우영승 총괄 프로듀서는 "'청량'을 예로 들면, 이를 K팝의 독립적인 음악 장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청량'은 음악과 퍼포먼스, 비주얼, 아티스트의 이미지 등을 아우르는 콘셉트에 가깝다"며 "물론 특정한 콘셉트가 반복적으로 활용되면 사람들에게 독자적인 스타일로 인식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음악 장르로 발전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음악 제작 소프트웨어 큐베이스를 개발하는 스타인버그는 K팝 프로듀서 아조디와 함께 걸크러시 그루브와 베이스를 만드는 강의를 공개한 바 있다. 이는 K팝 콘셉트에 명확한 음악적 특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큐베이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그룹 구피 출신의 K팝 프로듀서 박성호도 "장르보다 퍼포먼스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콘셉트를 음악에 투영해 홍보의 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윤동환 위원은 "콘셉트도 장르가 될 수 있다"며 "제작자의 경우 음악이 나오면 이에 맞춰 콘셉트를 정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구분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법이 확립되고 스타일이 유지돼 사람들이 이 자체를 하나의 음악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장르가 된다. 콘셉트가 장르가 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 역시 "예를 들어 시티팝은 도시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장르다. 이처럼 '청량'도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청량'은 밝은 템포, 기타, 신스 등 일관된 사운드와 여름날, 청춘과 같은 빛나는 단어 표현이나 정서가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K팝 하위 장르로 봐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조혜림 평론가는 이런 콘셉트의 장르화가 K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혜림 평론가는 "K팝 내부에서 음악적 스타일의 분화는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을 록이나 힙합의 하위 장르 형성 과정과 동일하게 보기는 어렵다"며 "K팝의 세분화는 음악적 특징뿐 아니라 콘셉트, 퍼포먼스, 비주얼, 팬덤의 취향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청량', '걸크러시', '이지리스닝', '쇠맛' 등이 하위 장르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K팝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콘셉트를 장르화하려는 시도는 지금 당장 음악시장에 큰 변혁을 가져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대중음악으로서의 보편성'을 확보해 K팝이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량'이나 '걸크러시'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장르로 자리잡으면, 어느 나라에서 만들던 간에 반드시 '청량'과 '걸크러시'가 앞단에 놓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K팝은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K팝'과 경쟁하는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K팝의 정의와 장르화 시도는 이런 경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힘이 된다.

<더팩트>는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K 없는 K팝'과의 경쟁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될지 예측해 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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