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넘어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국심이나 자의식이 아니라 현재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처럼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에서도 'K팝'을 주력 장르로 삼아 데뷔하는 그룹이 점점 늘고 있다. <더팩트>는 이들의 사례를 통해 K팝이 록이나 힙합처럼 온전히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살펴봤다. 더불어 향후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벌어질 'K 없는 K팝'과의 경쟁을 예측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일본의 하나(HANA), 필리핀의 비니(BINI), 말레이시아의 돌라(DOLLA), 태국의 포이브(4EVE), 미국의 JYT 등등…'
국적과 활동 무대가 서로 다른 이들 그룹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모두 K팝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 기획사가 직접 기획하거나 공동 제작한 그룹이 아니라는 점이다.
K팝의 인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해외 각국의 음악 기업이 직접 K팝의 영향을 받은 그룹을 제작해 데뷔시키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해외 현지에서 'K팝 간판'을 걸고 활동한 그룹은 캣츠아이나 앤팀, 니쥬처럼 한국 K팝 기획사와 연계한 '현지화 그룹'이 대표적이었다.
반면 앞서 언급한 그룹들은 트레이닝과 제작과정에서 일부 한국 스태프의 참여는 있었지만, 한국 기획사와 별개로 현지 음악 기업이 주도해 탄생했다.
대표적으로 비니는 데뷔 준비 과정에서 한국의 트레이닝 기관과 프로듀서, 안무가 등이 참여했으나 제작과 활동은 필리핀 방송사 ABS-CBN이 직접 맡았다. 이들은 2024년 빌보드 필리핀에서 올해의 1위 아티스트로 선정되고, 올해 4월에는 코첼라 무대에도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태국의 포이브 역시 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워크포인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한 걸그룹이며, 말레이시아의 돌라는 유니버설뮤직 말레이시아가 제작한 그룹이다.
일본의 하나는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BMSG가 오디션 프로그램 'No No Girls(노 노 걸즈)'를 통해 결성했고, 미국 보이그룹 JYT는 현지 프로듀서 프레디 웩슬러가 제작해 리퍼블릭 레코드와 계약해 활동 중이다.
이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대중음악 장르로서 K팝'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K팝 문법을 따라 자체적으로 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K팝이 록이나 힙합처럼 보편적인 음악 장르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몇 가지 사례만 가지고 섣불리 'K팝이 록이나 힙합과 같은 지위에 올라섰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러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K팝의 영향을 받은 그룹들이 실제 상업적 성과를 거두고,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K팝의 영향을 받은 그룹이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K팝은 이미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하나의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을까. 현직 K팝 프로듀서와 평론가은 이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다.
과거 판타지오 뮤직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누아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우영승 프로듀서는 "K팝은 이미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영승 프로듀서는 "방탄소년단의 등장으로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이 한 단계 더 높아졌고, 방탄소년단 한 팀의 성공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후로도 글로벌 스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K팝은 이미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계속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장르다. 이는 K팝이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유를 밝혔다.
반면 그룹 구피의 멤버이자 K팝 프로듀서로 활약 중인 박성호는 "아직은 글로벌 시장에서 더 입지를 만들어야 하는 단계"라며 "K팝이 온전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굳이 비교하자면 라틴팝이 9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 단계쯤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처럼 세계 음악시장에서 K팝이 차지하는 위상을 두고도 시각이 엇갈리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K팝을 과연 독립적인 음악 장르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K팝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과거에는 장르마다 음악적, 사운드적 특징이 비교적 명확했다. 하지만 K팝은 기존의 장르 구분법으로 분류하기 굉장히 모호한 음악이다. 단적인 예로 A2O LITE와 A2O SOUL은 같은 회사에서 동시에 나온 K팝 그룹이지만 둘의 음악과 사운드 특징은 완전히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K팝을 설명할 때 팬덤 문화나 비주얼, 시스템 등 음악 외적인 특징이 많이 사용된다. K팝을 사운드나 음악적으로 명확한 특징을 정하고 음악 장르로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K팝은 힙합 R&B 록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 요소를 결합해 완성되는 음악인 데다가, 퍼포먼스와 패션, 뷰티 등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그 덕에 K팝의 정의와 정체성은 지금도 많은 음악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는 주제다.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는 "K팝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음악적 다양성에 있다. K팝에는 힙합, R&B, 록, 디스코, 하우스, 하이퍼팝 등 거의 모든 대중음악 장르가 존재한다"며 "K팝의 특징은 특정한 사운드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다양한 음악적 경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재구성하는 유연성에 있다. 따라서 K팝은 독립적인 음악 장르라기보다 여러 장르를 생산하고 재해석하는 음악적 플랫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다만 여기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K팝을 사운드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음악이라고 하지만 막상 음악을 들으면 'K팝 스타일'을 그리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비니나 돌라, 포이브 등의 음악은 K팝에 익숙한 청취자라면 곧바로 K팝을 연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음악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지만 듣는 순간 K팝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임희윤 평론가는 음악의 구조와 그로 인해 형성되는 '바이브'라고 설명했다.
임 평론가는 "K팝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다인조 그룹이고, 댄스·보컬·랩 등 멤버별로 맡고 있는 파트가 있다. 이 파트에 맞춰 곡을 구성하고 화음을 조성하거나 퍼포먼스를 구성한다. 또 보컬 클라이맥스가 포함되는 경우도 많고, 최근에는 숏폼에 맞춘 파트가 들어가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런 곡 구성과 전개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 사운드적인 특징이라기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K팝 스타일'이라고 구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해외에서 자체 제작한 K팝 스타일 그룹들 역시 다인조 그룹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멤버별로 파트를 분배하고 잘 짜인 동선에 따라 군무를 선보이는 등 K팝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특징을 공유한다. 곡에 따라 댄스 브레이크나 보컬 클라이맥스를 배치하는 구성 역시 유사하다.
이처럼 K팝을 구분하는 특징적인 요소는 존재하지만, 이를 독립적인 음악 장르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곡의 구성과 전개는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고유한 음악적 형식이 성립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윤동환 위원은 "K팝을 장르로 구분하기 위해선 음악적인 기준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K팝은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있는 상태"라며 "예를 들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하이퍼팝의 경우 음악을 들으면 확실히 구분되는 사운드적 특징과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기준이 있다. 그런 기준점이 K팝에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혜림 평론가는 "영향력과 산업 규모로 보면 K팝은 이미 세계 대중음악의 주류다. 하지만 이를 록이나 힙합 등과 같은 의미의 음악 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K팝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음악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록이나 힙합이 특정한 소리와 음악적 문법, 문화적 뿌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K팝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수용하면서 아티스트 육성, 음악 제작, 퍼포먼스, 비주얼, 유통, 팬덤과의 소통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되어 있는 포맷에 가깝다"며 "이제 K팝의 정체성은 어떤 음악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어떻게 생산하고 세계에 전달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비니나 돌라, 포이브 등의 사례는 K팝이 장르를 넘어 하나의 제작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K팝의 글로벌 대중화와 독립적인 음악 장르로서의 정착은 구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K팝은 '메이저 음악으로 대중화는 이루어졌지만, 이것을 록이나 힙합, 발라드처럼 보편적 음악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가 적절하다.
그리고 장르화가 어려운 이유는 '명확한 사운드적 특징과 기준을 잡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크게 꼽힌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명확한 사운드적 특징과 기준'이 있다면 장르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해외 K팝 커뮤니티에서는 '청량', '청순', '걸크러시' 등 기존 K팝의 콘셉트를 음악적 특징이나 스타일과 연결해 구분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K팝 콘셉트'가 음악 장르로 발전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살펴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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