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서울 역삼동=오승혁 기자] "아악! 조심하세요!"
21일 낮 '오승혁의 현장'은 전날 피의자 A씨의 방화로 인해 불에 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두 건물을 찾았다. 전날의 참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듯 불에 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건물 외벽에서 유리 파편이 떨어지자 지나가던 행인이 급히 몸을 피했다.
이곳을 지나던 취재진도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또 유리나 다른 파편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깨진 건물 외벽을 올려다보게 됐다. 불이 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건물 아래를 지나는 일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건물 앞 자전거 바구니 안에도 유리 조각이 남아 있었다. 낙엽과 종이 위에 놓인 날카로운 조각은 보행로 가까이까지 파편이 떨어졌음을 보여줬다. 화재가 끝난 현장이라고 마음 놓고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건물 앞으로는 크게 통제선이 설치되었고 관계자들이 건물 내외부 청소에 여념이 없었지만 여러 파편과 그을음이 곳곳에 보였다.
"여기 어제 불 났잖아. 완전 난리였어."
점심 무렵 주변 직장인들이 지나가며 나누는 말에서도 전날의 소동이 전해졌다. 이들의 전날의 난리를 상대에게 전하며 본인들이 일하는 건물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논하고 걱정했다.
"데이터 보존 때문에 왔습니다."
현장을 찾은 한 업체 관계자는 방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허 문제 등을 다루는 변리사들의 사무실인 만큼 이들이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를 빠르게 보존하는 것이 업무 복귀에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건물 안에서는 화재의 흔적이 더 짙었다. 계단 벽과 천장에 검은 그을음이 넓게 번져 있었다. 창문을 열어 놓았지만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취재를 이어가는 동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울 정도였다. 외부에서 보이는 깨진 창뿐 아니라, 내부에 남은 냄새와 그을음도 복구해야 할 피해였다.
건물 입주 관계자들이 보험 처리와 화재 이후 복구 문제를 문의하는 대화도 들려왔다. 현장에서는 수사와 감식뿐 아니라,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한 확인과 문의가 함께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화재는 전날인 20일 오전 역삼동 신명빌딩과 한양빌딩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중상 5명과 경상 14명 등 19명이 피해를 입었다. 두 건물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긴급체포된 피의자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소방은 21일 추가 현장검증을 통해 발화지점 등을 조사하고 있다.
화재 다음 날의 현장에는 유리를 피해 움직이는 행인, 데이터를 지키기 위해 돌아온 업체 관계자, 복구를 문의하는 입주자들이 함께 있었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머리 위의 파편과 실내에 남은 그을음은 그대로였다. 이들이 다시 안심하고 건물과 거리를 오가기까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