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국내 증시 급락에 인공지능(AI) 거품론까지 확산하면서 기업공개(IPO)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최근 코스닥에 신규 상장한 기업 9곳 중 6곳이 공모가를 밑도는 등 새내기주들의 주가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AI 기업들의 고평가 논란까지 겹치면서다. 특히 AI 인프라 기업 엘리스가 상장 첫날 30% 넘게 폭락한 뒤 이튿날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면서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20일까지 코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 9곳 가운데 전날 종가 기준 6곳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이들 9개 종목의 공모가 대비 등락률을 단순 평균하면 약 -9.31%로, 신규 상장주 전반의 부진한 흐름이 확인됐다.
개별 종목별로는 덕산넵코어스의 낙폭이 가장 컸다. 전날 덕산넵코어스는 전 거래일 대비 3.44%(300원) 오른 9030원에 거래를 마쳤지만 공모가(1만4600원)와 비교하면 여전히 38.15% 낮은 수준이다. 와이즈플래닛컴퍼니(-27.50%)와 글로벌테크놀로지(-25.70%)도 공모가보다 20% 넘게 하락했으며 네오사피엔스(-17.80%), 브릴스(-13.74%) 역시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반면 멜콘은 공모가 대비 21.79% 상승했고 빅웨이브로보틱스(15.56%)와 스카이랩스(13.50%)도 공모가를 웃돌았다. 증시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별 주가 흐름이 엇갈리면서 공모주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상장한 AI 기업에서도 불안정한 주가 흐름이 나타났다. 지난 20일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엘리스는 상장 첫날 공모가 9만500원 대비 32.04% 급락한 6만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튿날인 21일에는 전 거래일 대비 29.92%(1만8400원) 오른 7만99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공모가보다는 여전히 약 11.7% 낮은 수준이다.
엘리스는 AI 모델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이다. AI 산업 성장에 따른 수혜가 기대됐지만 공모가 확정 이후 글로벌 반도체와 AI 인프라 관련주에 매도세가 몰리면서 투자심리가 악화했다.
엘리스의 상장 첫날 폭락은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블룸버그와 배런스 등 주요 외신은 이를 AI 기업들의 높은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드러난 사례로 조명했다. 미국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 등 관련 종목들도 장중 약세를 보이면서 AI 산업 전반의 투자심리 위축 우려가 확산했다.
◆ 새내기주 부진에도 상장 행렬…공모 흥행 시험대
상장 이후 주가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신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다만 증시 변동성 확대와 투자심리 위축이 맞물리면서 공모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설명회(IR) 전문기업 IR큐더스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코스피·코스닥에 신규 상장 기업은 33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5곳)보다 40.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산한 공모 규모도 3조4028억원에서 1조6312억원으로 52.1% 줄었다.
반면 최근 상장 추진 움직임은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8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상장예비심사 청구 건수는 8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건)보다 26.2% 증가했다. 승인 건수 역시 47건에서 55건으로 17.0% 늘었다. 신규 상장 물량 회복 기대와 상장 이후 주가 부진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이번 주에도 다수 기업이 일반청약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 나서면서 위축된 투자심리를 가늠할 시험대가 마련된다.
AI 영상분석 전문기업 인텔리빅스는 이날 일반청약을 마감한다. 공모가는 희망 범위(7600~9000원) 상단인 9000원으로 확정됐으며 총 공모금액은 225억원이다. 인텔리빅스는 지난해 매출 466억원, 영업이익 49억원을 기록하는 등 13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왔으며 국방과 피지컬 AI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GPU 인프라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래블업은 이날부터 23일까지 일반청약을 진행한다. 희망 공모가 범위는 1만9000~2만2000원이며 공모 예정 금액은 약 414억원이다. 래블업은 GPU 등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산업용 정전척 제조기업 이에스티와 산업설비 전문기업 영광이 이날부터 23일까지 일반청약을 진행한다. 반도체 부품기업 동원파츠와 바이오 기업 넥스아이, 약국 플랫폼 기업 바로팜 등은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 나선다.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기업별 실적과 공모가 수준에 따라 흥행 성적이 엇갈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 글로벌 AI 몸값 재평가…공모가 하향·상장 연기 우려도
글로벌 AI 기업들의 기업가치 재평가 움직임도 국내 IPO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주요 AI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면서 성장 가능성보다 실제 매출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앤트로픽은 최근 IPO 투자자 설명회에서 기업가치 기대치가 기존 2조달러에서 1조5000억달러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매출 증가와 수익성 개선에도 불구하고 성장 속도 둔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기업가치에 대한 눈높이가 조정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AI 기업들의 상장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IPO를 준비 중인 업스테이지와 퓨리오사AI 등은 기술력과 시장 성장성을 바탕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상장 과정에서 성장 잠재력뿐 아니라 수익성 개선 가능성과 기업가치의 적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업스테이지는 지난해 매출 248억원에 영업손실 305억원을 기록했다. 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 역시 지난해 매출 57억원, 영업손실 625억원을 기록하는 등 적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두 기업 모두 AI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지만 수익성 확보가 향후 기업가치 평가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AI 산업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왔지만 최근에는 실제 이익 창출 능력과 투자금 회수 가능성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GPU와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AI 인프라 기업은 투자금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평가가 더욱 엄격해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규 상장 물량 증가와 상장 이후 주가 부진이 맞물릴 경우 공모가 하향 조정이나 상장 일정 연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최근 IPO 시장에 대해 "발행시장 측면에서 IPO 시장은 안 좋았다가 계속 살아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도 "상장 이후 주가는 최근 몇 년 내 가장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신규 상장 물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공모가가 안정화되면 IPO 종목들의 주가 수익률도 점차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