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없는 이강인의 역설’...시메오네는 왜 계속 그를 선택하나 [박순규의 창]


11경기 연속 출전,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침묵…그러나 더 커진 존재감
'보이지 않는 도움'의 가치와 골잡이의 숙제…아틀레티코 7번의 진화는 계속된다

아틀레티코의 이강인(노란 조끼)이 17일 에스파뇰과 2026~27 라리가 9라운드 원정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둔 뒤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아틀레티코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축구에서 골은 가장 확실한 언어다. 골을 넣으면 영웅이 되고, 넣지 못하면 활약마저 쉽게 잊힌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공격수는 골로 말하고, 플레이메이커는 도움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축구의 모든 진실이 전광판과 기록지에 담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골을 넣지 못한 선수가 공격을 지배하고, 도움을 기록하지 못한 패스 하나가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7번 이강인(25)이 지금 그런 역설의 중심에 서 있다.

이강인은 17일 에스파뇰과의 2026~2027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9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62분을 뛰었다. 팀은 후반 44분 알렉스 바에나의 극적인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공식전 6연승을 질주했다. 이강인은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메오네 감독은 이번에도 그를 선발로 선택했다. 이강인은 올 시즌 아틀레티코가 치른 공식전 11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했다.

여기에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골도 도움도 기록하지 못하는 이강인을 시메오네는 왜 계속 기용하는 것일까.

그 답은 에스파뇰전의 한 장면에 숨어 있다.

후반 17분. 이강인이 페널티지역 밖에서 마르코스 요렌테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요렌테가 강력한 오른발 슛을 날렸다.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던 공은 크로스바를 강하게 때리고 튀어나갔다. 몇 센티미터의 차이로 이강인의 시즌 두 번째 도움이 사라졌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두터운 신임 속에 11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이강인./더팩트 DB

만약 그 슛이 골이 됐다면 이강인의 경기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언론은 '이강인 시즌 2호 도움'을 제목으로 뽑았을 것이고, 팬들은 그의 창의적인 패스에 환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로스바에 맞았다는 이유로 그의 기록지에는 도움 대신 기회 창출 하나만 남았다.

패스의 질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축구 통계의 맹점이자 이강인의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물론 공격포인트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또한 세계 정상급 선수가 갖춰야 할 자질이다. 다만 공격포인트가 없다는 사실과 경기력이 나빴다는 판단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존재한다.

이강인의 에스파뇰전 기록은 이를 뒷받침한다. 62분 동안 볼 터치 59회, 패스 성공률 93%(41회 성공·44회 시도), 슈팅 2회, 기회 창출 3회. 축구 통계매체 풋몹은 평점 7.2점, 소파스코어는 7.1점을 부여했다. 직접 골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공격의 방향을 잡고 기회를 생산하는 역할은 충실하게 수행했다.

상대의 밀집수비 속에서 이강인은 왼쪽과 중앙을 오가며 공격을 풀어갔다. 전반 2분에는 직접 왼발 슛을 날렸고, 19분에도 중거리 슛으로 골문을 노렸다. 전반에만 7개의 코너킥을 처리하며 동료들의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이강인의 진가는 화려한 개인기보다 그다음 장면을 내다보는 능력에 있다. 동료가 움직일 공간을 먼저 읽고, 상대 수비가 정렬되기 전에 패스의 방향을 결정한다. 수비수의 발이 아니라 수비수 사이의 빈틈을 공략한다. 이러한 능력은 단순한 볼 터치 횟수나 득점 기록만으로 온전히 평가하기 어렵다.

아틀레티코의 올 시즌 전 경기인 11경기에 출전하고 있는 이강인(7번)./아틀레티코

그렇다면 시메오네가 이강인을 꾸준히 기용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시메오네는 오랫동안 강한 압박과 수비 조직력, 빠른 전환을 중시해 온 지도자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선수의 화려한 개인기가 아니라 팀 전체의 균형과 승리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전술적 요구를 수행하지 못하면 출전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감독이 이강인을 11경기 연속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강인이 단순히 왼발 기술이 뛰어난 선수를 넘어 다양한 전술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최근 세 경기에서 이강인의 역할은 계속 달라졌다. 알라베스전에서는 교체 투입돼 33분 동안 키패스 3회를 기록하며 공격에 변화를 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투톱으로 나서 경기 시작 51초 만에 상대 수비라인을 허무는 전진 패스로 선제골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에스파뇰전에서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을 조율했다.

측면과 중앙,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넘나드는 활용도는 이강인이 얻은 새로운 경쟁력이다. 시메오네가 직접 그를 선택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기용과 역할 변화만으로도 감독이 그의 기술적 장점을 전술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있다. 에스파뇰전에서 이강인이 교체된 뒤 들어간 바에나가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뜨렸다는 사실이다. 바에나는 이강인이 끝내 해내지 못한 마지막 한 방을 해결했다. 축구가 아무리 과정의 스포츠라고 해도 승부는 결국 골이라는 결과로 결정된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강인에게도 분명한 숙제가 남아 있다. 라리가 2골 1도움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록이지만, 아틀레티코의 주전 공격 자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더 많은 득점과 도움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패스를 만드는 능력에 직접 해결하는 능력까지 더해야 한다. 집중 견제가 심해질수록 슈팅 타이밍을 앞당기고,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2026~2027 UCL 리그 페이즈 2라운드 선발로 나선 이강인(앞줄 가운데 7번)./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특히 새로운 7번의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7번은 단순한 등번호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돌파와 창의성, 결정적인 순간의 해결 능력을 상징해 왔다. 이강인이 그 번호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려면 과정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결과의 냉정함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강인을 공격포인트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골이 없는 세 경기만큼이나 11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결과의 부족을 보여주지만, 다른 하나는 팀 안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공자는 논어에서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라고 했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축구에도 통하는 말이다. 득점자는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득점을 가능하게 만드는 선수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에는 조금 더 깊은 안목이 필요하다. 시메오네의 선택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감독의 신뢰가 영원한 출전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경쟁자는 언제든 등장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프로축구의 생리다. 이강인 역시 그 경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지금 이강인은 새로운 성장의 문턱에 서 있다. 과거에는 재능을 증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 재능으로 팀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혼자 빛나는 선수에서 동료들을 빛나게 만드는 선수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골은 기록지에 남는다. 그러나 골을 향해 가는 길을 연 패스와 판단, 동료를 움직이게 만든 축구 지능은 때로 숫자 밖에 남는다. 이강인은 지금 그 숫자 밖의 가치를 쌓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숫자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위대한 플레이메이커는 과정과 결과를 함께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강인에게 필요한 것은 골 없는 시간을 변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마침내 골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완성하는 일이다. 시메오네가 그를 계속 선택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이강인은 언제, 그 신뢰를 결정적인 한 방으로 증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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