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최근 은행권을 강타한 인공지능(AI) 기반 연쇄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금융권 전반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증권사들도 매년 수억원대 보안 의무 위반 과태료를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증권업계의 허술한 보안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전산망 강화 요구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형연 의원실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올해 증권사 전자금융보안 제재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매년 수억원에 달하는 과태료 처분을 받으며 보안 체계에 허점을 드러냈다.
가장 빈번하게 이름을 올린 곳은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4월 기관주의와 함께 18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안전성 확보 의무 위반·약관 개시 의무 위반 등으로 58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보안 불감증은 올해도 이어져 올해 5월 전산 프로그램 변경 과정에서 검증·보안 절차를 소홀히 한 혐의로 1억원의 과태료가 추가 부과됐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10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보안 관련 사고를 은폐한 사실 등이 적발돼 기관주의 조치와 함께 1억2160만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KB증권 역시 올해 하반기 진행된 금융감독원 정기검사에서 정보기술(IT) 정보보호 부실 사안이 대거 적발되면서 기관 과태료 2억1560만원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최근 3년간 신한투자증권이 8000만원, NH투자증권이 4000만원의 보안 관련 과태료 처분을 받았으며 키움증권과 유안타증권 또한 각각 1800만원씩 과태료를 부과받으며 업계 전반의 허술한 보안 실태를 노출했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보안 제재를 연이어 받은 와중에 외부 보안 침해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인지하고 대응하는 속도도 뒤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실은 일부 증권사는 외부 침해사고가 발생한 후 이를 최종으로 파악하는 데 최장 15일이나 걸렸다고 설명했다. 실시간으로 수조원의 자산이 오고 가는 증권사 시스템 특성을 고려할 때 보름 동안 해킹 사실조차 모른 채 시스템을 방치하면 투자자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형연 의원은 "투자자의 자산과 주문·거래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증권사에서 침해사고를 제때 탐지하지 못하면 투자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며 "은행권 침해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증권사도 사고 탐지와 대응을 포함한 보안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구조적인 비용 편익 계산이 깔린 안일한 인식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많게는 수백억원이 소요되는 고성능 보안 인프라를 전면 확충하고 전문 인력을 대거 고용해 유지하는 비용보다 간혹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적발돼 내는 수억원 수준의 과태료가 기업으로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계산이다.
실제로 자본시장법상 대형 증권사들이 매년 거둬들이는 1조원대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상 과태료 기준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보안 투자는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비용으로 취급되지만 적발 시 리스크는 미미하다 보니 보안 체계 고도화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시장에서도 증권사들은 고객 자본을 은행권보다 더 유동적으로 다루는 금융사이기 때문에 비용 편익보다 금융소비자들과 신뢰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안일한 태도가 지속된다면 투자자들의 차가운 시선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금융권 해킹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증권업권도 보안 허점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순식간에 대규모 고객 이탈과 자금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며 "단순히 규제당국의 제재금 몇 푼을 내고 때우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진화하는 사이버 테러에 맞설 수 있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IT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