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시민사회가 의료사고로 환자가 죽거나 중상해를 입어도 배상하면 의사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법을 재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인 기본권을 침해하고 피해자 보호에 역행한다는 이유다. 의사 기소 건수가 과도하다는 의료계 보고서가 거짓으로 판명됐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법을 통과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법 처리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가 국민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문제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반대 의견을 내온 시민단체와 대화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시민사회와 일부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반발했지만 해당 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의료사고 시 합의 등이 이뤄지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특례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후 4개월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은 내년 5월 27일이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일부 법조인, 이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4월 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의료사고분쟁조정법)' 재검토와 재개정을 촉구했다.
개정된 의료사고분쟁조정법은 필수의료 행위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사나 병원이 피해자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특례를 담았다. 피해자의 형사 고소, 경찰 수사, 검사 기소, 법원 재판이 제한된다. 필수의료 행위 범위는 '중증, 소아, 응급, 분만, 외상 등' 국민 생명과 신체에 중대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필수의료 행위와 중과실 여부를 판단해 의료사고를 낸 의사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폐지도 담았다.
시민사회와 일부 환자들은 이 같은 내용의 의료사고분쟁조정법이 피해자와 유족의 재판받을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보험가입이나 손해배상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사망·중상해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절차까지 제한하는 것은 피해자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한양대 교수)은 "민사상 손해배상과 형사책임은 목적과 기능이 다르다. 보험이나 손해배상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사망·중상해 의료사고까지 공소제기를 제한한다면 피해자와 유족의 형사절차상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의료인이라는 특정 직역에 형사상 특례를 부여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 사건까지 대상으로 한다면 더욱 엄격한 헌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최소한 사망·중상해 사건은 공소제기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고 손해배상은 양형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교통사고 중상해 사건에서 종합보험 가입 등을 이유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부분에 대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한 바 있다.
해당 법이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가 의사 책임을 입증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도 거론됐다. 현재는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가 의사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진료기록과 의료정보 대부분을 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어 수술실에서 마취된 채 수술 받는 환자가 의사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 환자와 가족은 수사와 재판을 통하지 않으면 진료 기록 등을 볼 수 없어 의사 과실을 증명할 수 없다. 송 위원장은 "환자의 입증부담은 그대로 둔 채 의사의 형사책임만 완화한다면 제도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형사특례에 앞서 환자의 증거 접근권과 입증 부담을 개선하고, 독립적인 의료사고 조사체계와 실효적인 공적 배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법조계에서는 형사특례의 핵심을 시행령과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 맡기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와 포괄위임금지원칙를 위배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은 어떠한 경우 처벌받고 어떠한 경우 형사책임에서 벗어 나는지 법률에서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하지만 해당 법은 형 감면과 공소제기 제한의 핵심 기준이 되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와 ‘중대한 과실’의 구체적인 적용범위 상당 부분을 대통령령과 의료사고심의위원회 판단에 맡기는 구조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는 "국민의 형사책임과 피해자의 형사절차상 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사항을 국회가 법률에서 정하지 않고 하위법령에 폭넓게 위임한다면 행정부가 사실상 형사특례 범위를 결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헌법상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고 수사기관이 아닌 복지부 산하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수사와 재판을 사실상 대체하거나 지연시킬 문제도 제기된다. 의료사고는 사고 직후 진료기록, 전산로그, CCTV, 의료기기 기록, 관계자 진술 등을 신속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의절차가 초동수사를 늦추거나 심의위원회의 판단이 수사기관·법원의 과실 및 인과관계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병원이 파산한 경우 국가가 피해자에게 대신 지불해 주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폐지한 것도 논란이다. 숙의를 요청한 법조계나 시민단체 요청이 반영되지 않았고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이다.
◆ 기소 과도 거짓 판명, 시민사회 반발에도 대통령 주문 후 4달만 법 통과
시민사회는 해당 법이 거짓 연구에 근거해 추진됐고 그 연구가 왜곡됐다는 것을 정부가 확인했음에도 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대한의사협회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는 2013∼2018년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가 연평균 754건이라며 다른 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간한 연구보고서 결과 2019~2023년 의료사고로 의사가 기소돼 1심 판결이 나온 사건은 연평균 34건이었다. 정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소된 진료 과목은 필수과목보다 비필수 과목 비중이 컸다. 피고인 190명 중 정형외과 30명, 성형외과가 29명으로 각각 15%였다. 반면 필수과인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등은 각각 3∼6%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의사에 대한 형사특례 법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의료사고 시 합의 등이 이뤄지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특례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후 4달 만인 지난 4월 국회에서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는 환자단체와 잡은 공청회 일정도 취소했다. 지난 3월 5일 복지부는 필수의료 사고 기소제한 법안에 반대가 이어지자 환자단체연합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의료계 대상으로 3월 16일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주최한 공청회가 열리기 전인 3월 11일 복지위 의원들이 소위를 열고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복지부는 법안이 통과된 직후 환자단체연합회와 경실련, 의료계에 공청회 취소를 통보했다. 이에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소비자연맹, 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가 복지부 공청회, 국무총리 산하 의료혁신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의견 수렴을 거치기로 했지만 파기하고 소위에서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의 개입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이 의원은 기소 건수가 왜곡된 대한의사협회 보고서의 공동저자가 이진국 전 청와대 사법제도비서관이라고 밝혔다. 이 전 비서관은 2025년 이재명 정부의 초대 청와대 사법제도비서관으로 근무하다 올해 2월 퇴임했다. 해당 의료사고분쟁조정법 개정 이후인 6월 감사원 감사위원에 임명됐다. 이 의원은 이진국 비서관 재직 중 형사특례 검토·추진에 관여했는지 질문에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이 직접 참여한 ‘가짜뉴스’로 시작해, 이재명 대통령 한마디에 서두르고, 의료계와 환자단체 의견수렴 절차까지 건너뛴 채 속도에만 집중한 입법이었다. 청와대의 관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에 "2024년 2월부터 계속 검토돼 온 것으로, 사법제도비서관 개인이 영향을 미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그때만 해도 사망 경우는 형사특례에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이번에 사망까지 특례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의료계가) 피의자 수 잘못 말한 것은 정부에서 팩트 확인했고 이것을 근거로 국회가 심의한 것"이라며 "의료사고분쟁조정법은 실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필수의료 살리기 위해 의료사고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검토한 것이다. 형사 특례할 때는 전제 조건으로 설명 의무, 보험 가입과 충분한 보상 등 환자 안전 장치도 담았다. 하위법령 만들면서 환자 안전과 권리 부분 충분히 담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함께 의료인 형사 처벌 부담을 낮춰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추진했었다. 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인 과실로 환자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의료진이 보상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종합보험에 가입하 경우 형을 감면하는 특례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또 응급·중증질환·분만 등 필수의료 행위 시 환자에게 중상해가 발생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송기민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협의체를 만들어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제정하려했다. 당시 사망 의료사고는 공소 불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당시 협의체에 참여한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특례법에 반대하며 탈퇴해 특례법이 중단됐다. 그러다 갑자기 올해 이재명 정부에서 사망 사고까지 기소를 제한하는 법을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가 주장한 과도하다는 의사 기소 건수가 거짓 수치라는 것이 확인됐고, 의료사고로 인한 형사처벌이 과도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번 정부가 돌발 입법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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