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설상미·이다빈 기자]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헌법상 권한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가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을 요구하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국회의 제청 관여는 위헌이라며 정면으로 맞서면서다. 양측이 물러서지 않으면서 7개월째 이어진 대법관 공석 사태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6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대법원장이 국회의 동의 절차, 대통령의 임명 절차에 전혀 관여할 수 없듯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의 제청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대해서도 "이미 제청된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기재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 대법원장이 근거로 든 조항은 헌법 제104조 2항이다. 이 조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장에게 제청권, 국회에 동의권,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각각 부여한 만큼 서로의 권한에 관여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을 사전에 협의해온 관행도 헌법상 의무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헌법의 근거는 없지만 신속하고 원활한 임명을 위해 자진해 협력해 온 것"이라며 "협의를 안 해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대통령과 국회의 제청 간섭이 '위헌'이라고 네 차례나 못 박았다.
◆청와대-조희대 '핑퐁'…노태악 후임 219일간 공백
청와대와 대법원 간 '대법관' 갈등은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21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박순영·윤성식·손봉기 후보 등 4명을 추천했다. 그러나 최종 후보 선정을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노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퇴임한 이후 후임은 장기간 공석으로 남았다.
조 대법원장은 결국 지난 8월 1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서면 제청했다. 청와대는 열흘 뒤인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번 노 전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은 그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라며 "이번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청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 25일 만인 지난달 22일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청와대 공문에 재제청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튿날에는 추가 입장문을 내고 청와대가 제기한 '제청 과정의 절차적 흠결'도 헌법과 법률에 비춰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8일 기준 대법관 공백은 219일이 된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위헌으로 볼 수 있는지를 놓고 사법부 안팎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원장의 제청 과정에 국회나 대통령이 관여하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헌법기관의 헌법상 권한은 동시에 의무"라며 "대법관 결원 상태가 발생했을 때 대법원장은 서둘러 제청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책무 이행을 촉구한다는 의미에서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빨리 서두르라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이를 두고 위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청와대가 재제청 후보자의 범위까지 제시한 것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라는 반론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청와대는 손봉기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겠으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을 하라고 요청했다"며 "이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어떤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제청할 것인지에 관여한 것으로 위헌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상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행사 방식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법원조직법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대법원장이 '존중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추천된 사람 중에서 반드시 제청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법원 안에서는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인 제청권을 사실상 침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경지법 A 부장판사는 "헌법상 대법원장에게는 제청권, 국회에는 동의권, 대통령에게는 임명권이 있고 각각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임명권의 영역이지만, 제청 자체를 거부하고 다시 제청하라고 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B 부장판사는 "대법관을 누구로 제청하라고 대통령이 요구할 수는 없다. 대법원장이 이미 특정 후보자를 제청했는데 다른 후보자를 제청하라고 할 헌법적 근거도 없다"며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하는 만큼 위헌이라는 조 대법원장의 주장은 크게 모순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손 후보자를 제청한 순간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는 완료된 만큼 이후 절차는 대통령의 임명권 영역이라는 시각도 있다.
C 부장판사는 "이미 제청이 완료된 것이므로 제청에 관여한 것이나 간섭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국회 동의 요구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므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자에 대해 국회 동의 여부 이전에 거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상미·이다빈(snow@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