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우리는 왜 밥과 국, 그리고 수많은 반찬을 먹을까. 이런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몰라" "예전부터 먹어와서"라는 답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 밥상은 어디서 시작했을까.
홍대선 작가의 신간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우리가 모르고 먹기만 했던 밥상 위 밥과 국, 반찬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한식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가난의 결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인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축적해 온 '생존의 발자국'이자, 오랜 시간 몸과 입맛에 새겨진 문화적 유전자로서 한식을 추적한다. 한식의 '겉멋'(밥, 국, 찬, 밥상처럼 눈에 보이는 외형적 골격)과 '속맛'(간과 감칠맛,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는 내면의 감각)으로 나누어 찾아 나선다.
산지가 많은 지형, 뚜렷하지만 혹독한 사계절,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토양과 영양분의 유실 등 한반도는 농경지로서는 'C급'에 가까운 환경이었다. 수렵채집민에서 시작해 마침내 한반도라는 환경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조상들은 가뭄과 수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끊임없이 생존법을 갱신해 왔다.
'밥'은 쌀밥인 동시에 식사 전체를 가리키며 한국인의 신념 그 자체다. 높은 인구 부양력을 위해 노동집약적인 벼농사에 사활을 걸었던 역사 속에서 '밥심'은 생존의 에너지였고, '밥그릇'은 자기 몫의 생존권이 됐다.
'밥값'을 못하면 제 몫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밥줄'이 끊기면 생존을 위협받으며, 쓸모를 잃으면 '찬밥 신세'가 된다. 한국인이 밥에 품어 온 애증과 집착은 그렇게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었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국물을 즐기는 '국물의 민족'이다.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었기에 국물의 민족이 되었다. 퍽퍽하고 지루한 곡물 주식을 쉽게 삼키기 위해 국물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서양의 수프나 중국의 탕에 비해 한식의 국은 철저하게 '밥의 조력자'로 발전했고, 왼쪽에는 밥, 오른쪽에는 국을 놓는 '좌반우갱'이라는 밥상 위의 UI로 완성됐다.
하지만 밥과 국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부족한 영양을 채우고, 춘궁기와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한국인은 먹을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넓히는 생존 실험을 거듭했다.
콩으로 단백질을 확보하고, 산과 들의 온갖 풀을 나물로 먹고, 바다에서는 해조류를 건져 올렸으며, 채소를 발효시켜 겨울을 넘길 김치를 만들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식물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온갖 방식으로 변주해 찬으로 만들었다. 살아남는 것이 실력이라면, 한국인은 '지나치게 유능한 잡식동물'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밥, 국, 찬'은 하나의 상 위에 동시에 펼쳐진다. 밥과 국, 여러 찬이 한꺼번에 놓이는 '공간전개형' 밥상은 엄격한 구조를 지니지만, 그 안에서 먹는 사람은 더없이 자유롭다. 밥과 국을 조립하면 국밥이 되고, 밥과 찬을 조립하면 비빔밥이 되며, 밥상 전체를 한입에 조립하면 쌈이 된다.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도 된장찌개와 밥을 찾고, 전골을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밥을 볶거나 죽을 쑤어야 비로소 한 끼가 끝난다. 엄격한 밥상의 구속 안에서 무한한 조합을 즐기면서도, 끝내 '밥+국+찬'이라는 구조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한식 밥상의 비밀이다.
이 밥상의 골격 안에서 한식의 독특한 '맛의 감각'이 만들어졌다. 밥과 국, 찬을 오가며 입안에서 '간'을 맞추고, 다양한 재료에서 우러난 감칠맛을 겹겹이 쌓는다. 여기에 펄펄 끓는 찌개부터 얼음 동동 띄운 냉면까지 뜨거움과 차가움의 극단을 찾는 온도 감각이 더해진다. 간을 맞추고, 감칠맛을 겹치고, 온도의 극단을 즐기는 한식의 맛에는 오래된 생존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흑백요리사 시즌 1에서 준우승한 에드워드 리는 "뜨거운 국만을 마시면서 어! 시원해라고 말하는 한식의 미스터리를 이 책을 읽으면서 풀었습니다. 속 시원합니다"라며 책을 추천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먹고 있을까? 너무 익숙해서 묻지 않았던 한식의 비밀이 '신간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에 담겼다.
저자 홍대선은 작가, 평론가. 철학과 역사를 쓰고 강연한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1미터 개인의 간격'으로 현대적 개인의 탄생을 정리했다. 한국인의 특질을 설명하기 위해 대표작 '한국인의 탄생'에서 한국사가 아닌 '한국인의 역사'를 기록했다. 번외편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의 미싱 링크를 채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책 '밥 국 찬, 한식의 탄생'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다른 지은 책으로 40년 이글스 팬으로서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복이 이글이글', 온라인 연재 2억뷰를 기록한 테무진-칭기즈 칸에 대한 이야기 '테무진 to the 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