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소영 기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비핵화 요구에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명의로 대응하며 핵보유국 지위의 불가역성을 못 박았다. 북미대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북한이 향후 대화의 전제와 협상 기준을 선제적으로 제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 부장 명의의 담화를 보도했다.
김 부장은 제70차 IAEA 총회에서 북한에 비핵화를 촉구한 것을 거론하며 "귀에 익은 잡소리들"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매해 이맘때면 자동응답기에서 밤낮 울려 나오는 소리처럼 늘 듣게 되는 전혀 놀랍지 않으며 새로운 것도 아닌 잡음"이라며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변화시켜 보려고 모여 앉아 떠들고 있는 인간들은 그것이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며 부질없는 헛고생인가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IAEA와 서방이 주기적으로 회의판을 벌려놓고 고정 각본에 따라 아무리 비핵화를 열창해도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실행능력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강력한 그 힘의 존재는 국제 불량배들의 횡포를 억제하고 평화와 안전보장에 중대한 기여하고 있다"며 "적대 세력들이 아무리 수사적으로 부정한다고 해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지위가 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영구 고착된 현실은 추호도 변경시킬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IAEA의 비핵화 요구에 반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2023년 원자력공업성 대변인을 통해 IAEA의 비핵화 요구를 비난했다.
주목할 것은 대응 주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김 부장이 IAEA를 대상으로 직접 담화를 낸 것은 이례적"이라며 "비핵화 결의 등 확산을 사전차단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내포했다"고 말했다.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은 점도 이전 대응과 다른 대목이다. 김 부장은 IAEA와 서방, 적대세력 등을 비판했지만 미국을 직접 지목하지 않았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평소에는 'IAEA가 미국의 꼭두각시다' (이러는데) 오늘은 그런 내용이 없다"며 "미국 겨냥 내용이 없는 건 미국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북미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비핵화 불가’라는 협상 기준을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상황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북미대화 분위기에서 이 문제를 걸고 문제제기 해야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전략적 지위로서의 핵보유국 위상을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은 현 국면에서 '이런 건 안돼'라며 작은 소재라도 채택해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내용이 다 북미현안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관심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위상 명확히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김 부장 명의의 담화에 주목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부장으로 격을 높여 핵보유국 지위의 불가역성을 재강조했다"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대화 추진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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