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오너 일가 지분 증여 잇따라…'저평가·세제개편'에 승계 속도


일양·유나이티드 등 후계자 개인 최대주주로
종근당·국제약품은 사업회사 지분 이전…"선제 승계 움직임"

제약업계는 올해 오너 일가의 지분 증여와 승계 움직임이 활발하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국내 전통 제약기업 창업주들의 고령화와 맞물려 오너 일가의 지분 증여와 승계 움직임이 올해 들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장기간 부진했던 제약주 주가로 인해 증여세 부담이 낮아진 데다, 정부의 세제 개편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선제적인 지분 이전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오너가 보유 지분을 자녀 등 후계 세대에 증여했거나 계획을 공개한 제약사는 종근당, 명인제약, 일양약품, 삼일제약, 알리코제약, 경동제약, 삼진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국제약품 등이다.

특히 과거 선대 경영인의 별세로 갑작스럽게 지분이 이동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고령 창업주의 '2선 후퇴'에 맞춰 사전 계획된 지분 이전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승계 단계는 각사의 사정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미 경영을 맡아온 후계자가 부친의 지분을 넘겨받아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선 곳이 대표적이다.

일양약품은 정도언 전 회장이 아들 정유석 대표에게 보유 주식을 연이어 증여하며 정 대표가 개인 최대주주(지분율 12.84%)로 올라섰다. 정 전 회장은 추가로 보유 주식 47만4073주를 두 아들에게 증여할 계획이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역시 창업주 강덕영 회장이 장남 강원호 대표에게 주식을 두 차례 증여하면서 강 대표(지분율 18.12%)가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삼일제약에서는 허강 명예회장이 아들 허승범 회장에게 보통주 20만주를 증여하며 허 회장의 지분율은 9.15%로 높아졌다.

종근당과 국제약품 등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 지분은 선대 오너가 유지한 채, 사업회사의 직접 지분을 자녀에게 넘겨 승계 실탄과 기반을 다지는 방식을 취했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은 종근당 주식 131만8807주 전량을 세 자녀에게 증여할 계획이지만, 종근당홀딩스 지분 33.73%는 보유하고 있다. 남영우 국제약품 명예회장 역시 국제약품 지분 8.58% 전량을 아들에게 넘길 예정이지만 최대주주인 우경 지분은 유지한다.

삼진제약은 공동창업주 양가가 동시에 2·3세 자녀들에게 지분을 분산 증여하며 '한 지붕 두 가족' 연합 경영 체제를 후대에도 이어가기로 했다. 조의환 전 회장은 두 아들에게 총 27만주를, 최승주 전 회장은 세 딸에게 총 26만6400주를 각각 증여했다. 지난해 양가 장녀·장남을 각자 대표로 선임한 데 이어 소유구조에서도 세대 교체가 진행되는 셈이다.

여러 자녀에게 지분을 분산하는 방식도 나타난다.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은 두 딸과 재단에 지분을 나눠 증여했다. 장녀 이선영 씨에게 63만주, 차녀 이자영 씨에게 33만주를 증여하고 명인다문화장학재단에도 10만주를 넘겼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지분율은 43.62%로 낮아졌고 이선영 씨는 12.05%, 이자영 씨는 10.7%, 재단은 4.11%로 늘어났다.

이항구 알리코제약 대표도 가족 5명에게 지분 15만주를 3만주씩 균등하게 증여했다. 이 대표의 지분율은 33.41%로 낮아지면서 배우자 여점숙 씨는 0.57%, 이정은·이지숙·이지혜·이진복 씨는 각각 1.09%를 보유하게 됐다. 경동제약에서는 류기성 대표가 류민석 씨에게 20만주, 류애슬 씨에게 10만주 등 총 30만주를 증여했다. 류 대표 지분은 16.53%로 낮아졌으며 류민석 씨는 0.76%로, 류애슬씨는 0.52%로 높아졌다.

제약업계 창업주들이 올해 지분 이전에 박차를 가하는 배경에는 주가 상황과 세제 개편이라는 복합적인 셈법이 작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령 오너의 선제적 승계와 함께 주가 상황이 증여 시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장주식의 증여가액은 증여일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의 종가 평균액으로 산정된다. 제약바이오 업종 전반의 주가가 장기간 저평가된 현 시점이 증여재산 평가액과 증여세 부담을 낮출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계산이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세제 개편안도 승계 시기를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상속·증여세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행위를 막고자 주가순자산비율(PBR) 하위 기업 등에 30% 할증 과세를 부과하는 일명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내년 4월 시행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80대 안팎에 접어든 창업주들의 연령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가 시급한 상황"이라며 "주가가 저점에 형성되어 있는 데다 세제 개편이라는 변수까지 겹치면서,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중견·전통 제약사 오너 일가의 지분 승계 행보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pi@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