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이창동 감독이 24년 만에 다시 베니스의 선택을 받았다.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거머쥔 데 이어 '가능한 사랑'으로 심사위원대상까지 품에 안으며 한국 영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긴 공백에도 변함없는 작품 세계로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거장'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이 12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창동 감독은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아 온 거장이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를 통해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7년 '초록물고기'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박하사탕'에서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한 개인의 삶을 거꾸로 되짚는 방식으로 그려내 주목받았다. '오아시스'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두 남녀의 사랑을, '밀양'에서는 상실과 용서,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 '시'와 '버닝'까지 인간의 내면과 사회 현실을 끈질기게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냈다. 2002년 '오아시스'로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문소리 역시 이 작품으로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이 베니스에서 본상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활동 무대를 칸으로 넓혔다. 2007년 '밀양'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주연을 맡은 전도연은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2010년에는 '시'로 제63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거머쥐며 저력을 입증했다.
2018년 선보인 '버닝' 역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본상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이창동 감독은 1997년 데뷔 이후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세계 주요 영화제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선보인 신작이 바로 '가능한 사랑'이다. 특히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건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이다. 그리고 다시 찾은 베니스에서 심사위원대상까지 거머쥐며 긴 공백이 무색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번 수상이 더욱 의미 있는 건 베니스국제영화제가 갖는 위상 때문이다. 1932년 시작된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영화제로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영화제로 꼽힌다. 세계 각국의 작품이 경쟁하는 가운데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 남녀배우상, 각본상 등 경쟁 부문 주요 상을 수여한다.
이 가운데 이창동 감독이 받은 심사위원대상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이은 주요 상이다. 올해 경쟁 부문에는 총 21편이 이름을 올렸다. 배우 겸 감독 매기 질렌할을 심사위원장으로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 두기봉 감독 등 영화계 인사 7명이 경쟁 부문 수상작을 결정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들의 선택을 받아 심사위원대상을 품에 안았다.
한국 영화와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인연도 깊다. 한국 영화는 1987년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베니스에서 처음 주요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2002년 감독상,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2004년 감독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한국 영화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피에타' 이후 한국 영화의 베니스 경쟁 부문 수상은 오랜 시간 명맥이 끊겼다. '가능한 사랑'의 수상은 '피에타' 이후 14년 만에 나온 한국 영화의 경쟁 부문 수상이다. 동시에 한국 영화가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가능한 사랑'을 향한 호평은 공식 수상에 앞서서도 이어졌다. 작품은 폐막식에 앞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이 수여하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았다.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에 이어 세계 각국 영화평론가들의 선택까지 받으며 작품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창동 감독은 무대에 올라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등이 출연한다. 오는 23일 극장에서 개봉하며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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