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 '50년 내공' 가수 강진 "다시 태어나도 노래할 겁니다"


땡벌'로 인생 역전…‘삼각관계’ ‘막걸리 한잔’ ‘붓’까지 히트곡 부자
75년 밤무대로 데뷔, 기다림 끝에 대중 마음 사로잡은 '트롯 전설'

가수 강진이 최근 각종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한 젊은 후배 가수들과 연달아 방송 무대에서 호흡하며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고전적이고 토속적인 정서에 짙은 향수를 머금은 그의 노래는 요란하게 시대를 좇기보다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머무는 힘이 있다. /이상빈 기자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땡벌’을 빼놓고 가수 강진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강진을 ‘땡벌의 가수’라고만 부르기엔 그의 음악 인생은 너무 길고 깊다.

75년부터 밤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해 1986년 정식 데뷔하기까지, 그리고 데뷔 후에도 오랜 세월 무명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무려 30년 가까운 시간을 '이름 없는 가수'로 버틴 끝에 만난 노래가 바로 '땡벌'이었다.

나훈아가 87년 발표한 곡을 강진만의 리듬과 창법, 특유의 제스처로 다시 빚어낸 '땡벌'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후 '삼각관계', '막걸리 한잔', '붓', '화장을 지우는 여자', '공짜', '연하의 남자', '달도 밝은데', '문풍지 우는 밤'등 그의 노래들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애창곡이 됐다.

고전적이고 토속적인 정서에 짙은 향수를 머금은 그의 노래는 요란하게 시대를 좇기보다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머무는 힘이 있다.

최근에는 각종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한 젊은 후배 가수들과 KBS '가요무대', MBN '전설의 사내', TV조선 '금타는 금요일' 등 방송 무대에서 호흡하며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무명 시절을 누구보다 길게 견뎠기에 후배들의 도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각별한 온기가 있다.

'땡벌'로 인생곡을 만나고, 후배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히트곡 부자로 자리매김한 트롯 전설 강진을,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더팩트 스튜디오에 초대해, [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로 그의 음악 인생과 무대 밖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땡벌로 인생곡을 만나고, 후배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히트곡 부자로 자리매김한 트롯 전설 강진을,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더팩트 스튜디오에 초대해, [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로 그의 음악 인생과 무대 밖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이상빈 기자

<다음은 가수 강진과 주고받은 영상 인터뷰 중 주요 내용 발췌, 전체 워딩은 풀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975년부터 밤무대에서 활동하셨고 1986년 ‘이별의 신호등’으로 정식 데뷔하셨습니다. 10년 넘게 밤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가수의 꿈을 놓지 않았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저는 무명 시절에도 단 한 번도 가수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돈을 받고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가수라는 사실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꿈이 가수였고, 대중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도 늘 "우리 아들이 최고 가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셨고, 그런 믿음이 큰 힘이 됐습니다."

-당시 유명 그룹 ‘희자매’ 멤버였던 김효선 씨와의 만남이 가수로서 새로운 결심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분의 첫 만남은 어땠습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자리에서 아는 사람들과 함께 우연히 만나게 됐습니다. 제가 집에 바래다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서로 호감을 갖게 됐어요. 이후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면서 가까워졌고, 그렇게 만남이 이어지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당시 아내는 이미 유명한 가수였지만 저를 무명가수라고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앞으로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아내 김효선 씨는 당시 인기 가수였고 본인은 무명 가수였습니다. 쉽게 프로포즈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결혼에 골인하셨습니까?

"연예계에서는 인기 차이가 있으니 무명가수가 유명가수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도 저를 성실하게 봐줬고, 앞으로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거창한 프로포즈를 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졌고, 결혼할 나이가 되면서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아들 둘을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결국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당신보다 더 인기 있는 가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하셨는데, 정작 ‘땡벌’이 나오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말을 한 뒤 마음고생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처럼 금방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었죠. 긴 세월을 기다리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늘 "걱정하지 말고 노래만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제가 무명일 때도 어머니와 아내가 똑같이 "당신이 최고"라고 응원해줬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강진 씨의 인생곡은 역시 ‘땡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인에게 ‘땡벌’은 어떤 의미의 노래입니까?

"‘땡벌’은 가수 강진이라는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해준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땡벌이 없었다면 제가 오늘날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죠. 무명 시절의 설움과 긴 기다림을 한 방에 정리하고, 정말 원 없이 사랑을 받게 해준 노래입니다. 무엇보다 나훈아 선배님이 작사·작곡한 곡을 제게 주셨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땡벌’이라는 말을 들으면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땡벌’은 원래 1987년 나훈아 씨가 발표한 자작곡입니다. 원곡이 있고 다른 가수의 리메이크도 있었는데, 결국 강진 씨의 ‘땡벌’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무명 시절부터 이 노래를 좋아해서 악보를 만들어 밤무대에서 불렀습니다. 이후 방송 데뷔를 하고 신곡을 찾았는데 마음에 드는 곡이 없던 어느 날 아내가 "옛날에 당신이 부르던 땡벌이 좋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래서 나훈아 선배님께 곡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선배님이 짧았던 가사와 멜로디를 보완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제 스타일로 완성되면서 대중에게 사랑받게 된 것 같습니다."

-‘땡벌’의 독특한 제스처와 리듬감은 지금도 강진 씨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무대를 의도하셨습니까?

"특별히 처음부터 계산해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제가 생각나는 대로 제스처를 만들어갔습니다. ‘땡벌’은 순수한 정통 트로트라기보다 비트가 있고 록적인 느낌도 있어서 젊은 세대와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노래가 강렬하다 보니 관객들이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하면서 함께 호응해주시죠. 그 분위기에 맞춰 저만의 절도 있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땡벌’의 원곡자인 나훈아 씨도 강진 씨의 ‘땡벌’을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선배에게 자신의 노래를 인정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무명 시절에는 나훈아 선배님을 방송에서만 봤지 직접 뵐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곡을 받으러 사무실에 갔더니 선배님이 소파에 앉아 계셨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남진 선배님과 나훈아 선배님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기 때문에 실제로 뵈니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직접 만나 뵌 것만으로도 황홀했는데 제게 곡을 주셨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정말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땡벌’ 이후 ‘삼각관계’, ‘막걸리 한잔’, ‘붓’, ‘연하의 남자’ 등 여러 히트곡을 냈습니다. 돌이켜보면 강진 씨는 ‘히트곡 부자’라는 표현도 어울립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노래를 많이 만났습니다. 저는 노래 한 곡을 발표할 때 그냥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곡가, 작사가, 편곡자와 함께 작업하면서 제가 부족한 부분이라고 느끼는 것을 계속 찾아내고 보완합니다. 그래서 작업하는 분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완성된 뒤에는 만족해하시죠. 그렇게 공들여 만든 노래들이 대중에게 사랑받고, 후배들이 다시 불러주면서 오래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

-한국 트로트 가요계는 나훈아·남진 이후 자신만의 색깔로 무장한 개성파 남자 가수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강진 씨는 스스로 어떤 색깔의 가수라고 평가하십니까?

"제 색깔을 제가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항상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노래해왔습니다. 특히 제 노래에는 고향과 가족,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같은 우리 정서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또 무대에서는 흐트러지지 않고 항상 갖춰 입고 예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결국 노래뿐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이미지까지 포함해 ‘강진다운 모습’을 지켜가는 것이 제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진 씨의 노래에는 유독 ‘옛 정서’가 강합니다. ‘막걸리 한잔’, ‘붓’, ‘문풍지 우는 밤’처럼 제목만 들어도 풍경이 떠오르는 노래가 많은데요. 그런 노래를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습니까?

"특별히 기준을 정해놓고 고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정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깊이 자리하고 있잖아요. 그런 정서를 대중이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단순히 좋은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지금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막걸리 한잔’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붓’은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무명 기간이 길었지만 의외로 히트곡은 상당히 많습니다. 노래자랑이나 노래방에서 강진 씨 노래가 유독 많이 불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노래는 후배들이 부르기에는 조금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요즘 후배 가수들은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쉬운 노래보다는 가창력을 보여줄 수 있고 깊이가 있는 노래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제 노래가 많이 선곡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중이 노래방에서 직접 부르면서 사랑해준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방송만으로 만들어진 인기가 아니라 대중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며 만들어준 인기라고 생각합니다."

-‘땡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젊은 세대도 강진 씨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좋은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후배들이 제 노래를 방송에서 계속 커버해주고 불러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에게도 알려지는 것 같아요. 한때 히트했던 노래라도 몇 년 동안 불리지 않으면 서서히 잊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이 다시 불러주면서 리바이벌을 시켜주니까 제 노래도 계속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저 역시 대중이 원하는 정서를 생각하며 곡을 만들어왔던 것이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KBS1 '가요무대', MBN '전설의 사내', TV조선 '금타는 금요일' 음악 예능에서 젊은 후배 가수들과 자주 호흡하는 무대가 많아졌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방송 현장에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요즘 후배들은 기본적으로 노래를 참 잘합니다. 과거에는 무대에 서서 노래만 잘하면 가수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친구들은 노래뿐 아니라 말도 잘하고 예능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방송을 하면 재미있고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편하게 대해주는 편이라 금방 가까워지고, 후배들이 저를 따르는 모습도 참 예쁩니다. 다만 선배를 대하는 예의와 인사는 시대가 달라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롯 오디션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중견가수들이 설 자리가 크게 좁아졌는데요. 행사장 분위기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현실에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트로트 오디션이 오랫동안 활성화되면서 여러 가수가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 중견가수들의 무대가 좁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가수들이 많다는 점에서는 저도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트로트가 남녀노소에게 훨씬 가까워졌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가수들도 그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도 자기만의 개성과 색깔을 갖는 것이죠."

-그럼에도 좋은 노래가 많다 보니 선배 가수로서 존재감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젊은 후배 가수들이 강진 씨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특별히 눈여겨보는 후배도 있습니까?

"제 노래를 선곡해서 불러주는 후배들은 정말 자식처럼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방송에서 제 노래를 부른 후배에게 직접 전화해서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기도 하고, 용돈을 주기도 합니다. 특별히 한두 명만 꼽기 어려울 만큼 요즘 후배들이 다 노래를 잘합니다. 그중에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후배들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결국 오래 사랑받으려면 노래 실력과 함께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년 가까운 무명생활을 견뎌낸 경험이 있기에 지금 무명인 후배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가장 먼저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요즘 후배들은 노래를 정말 잘하지만 목소리와 창법이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개성이 있어야 그중에서 튀어나와 히트곡도 생기고 오래가는 가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방송에 몇 번 나왔다고 초심을 잃지 말고 선후배에게 인사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무명 시절 주변에서 "강진은 꼭 유명 가수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칭찬하고 용기를 주려고 합니다."

-30년을 기다린 끝에 정상에 올랐고, 이후 20여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다시 무명시절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같은 길을 다시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다시 돌아가도 80% 정도는 가수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성인이 되어 노래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다른 일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잠시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한 적도 없고, 노래를 중간에 쉬어본 적도 없습니다. 50년 가까이 오로지 마이크 하나 잡고 노래만 해왔습니다. 다른 직업을 생각한다면 의사나 형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수라는 길만큼 확실한 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땡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대표곡이 됐습니다. 혹시 한편으로는 ‘땡벌’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노래들이 가려진다는 아쉬움은 없습니까?

"물론 ‘땡벌’이 워낙 강한 노래이고 제 이름을 세상에 알린 인생곡이기 때문에 그 영향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땡벌’ 덕분에 제 존재가 알려졌고, 그 이후 ‘삼각관계’, ‘막걸리 한잔’, ‘붓’, ‘연하의 남자’ 같은 노래들도 대중에게 다시 들려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후배들이 제 다른 노래까지 찾아서 불러주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특정 한 곡에 가려졌다는 아쉬움보다 좋은 노래들이 계속 살아나는 것이 더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이제 강진이라는 이름도 트로트의 한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앞으로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그리고 지금 강진의 가장 큰 꿈은 무엇입니까?

"나중에 대중이 강진이라는 가수를 떠올렸을 때 "참 좋은 가수였고, 노래를 참 잘했던 가수였다"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기 가수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이미지와 사람으로서의 모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모범이 되는 가수로 남고 싶습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는 봉사도 더 많이 하고 싶고, 앞으로도 대중이 좋아하는 좋은 노래를 계속 발표하면서 오래 사랑받는 가수로 남는 것이 제 가장 큰 꿈입니다."

(마무리) 오늘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귀한 시간을 내어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30년이라는 긴 무명의 시간을 지나 ‘땡벌’이라는 인생곡을 만나기까지, 그리고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무대를 지켜온 오늘 얘기, 단순한 성공담 이상의 울림을 남긴 것같습니다.

이번 만남이 ‘땡벌’의 가수 강진을 넘어,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음악 인생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강진 가수의 노래가 세대와 세대를 잇는 따뜻한 울림으로 오래 남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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