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경북 울릉도 본섬에서 유람선을 타고 10여 분이면 닿는 죽도.
울릉도를 대표하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이 작은 섬이지만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에게 죽도는 더 이상 '관광지'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관광객은 급감했고, 더덕 농사는 혼자 감당하기가 벅차다. 생필품과 농사에 필요한 물품을 들여오는 비용은 본섬보다 비싸고, 관광객을 상대로 팔던 더덕음료마저 팔리지 않는다.
올해 1인 가구가 된 죽도 주민 김유곤 씨가 털어놓은 말은 지금 죽도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울릉군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사줬으면 좋겠습니다. 집만 팔리면 저는 죽도를 떠나겠습니다."
섬을 떠나고 싶다는 말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평생 살아온 섬에서조차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진 한 주민의 절박한 호소다.
◇관광객 끊기자 더덕음료 수입도 '뚝'
죽도는 유람선에서 내려 381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섬의 중심부에 닿는다.
과거에는 관광객들이 이 계단을 올라 죽도를 둘러보고,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더덕을 활용해 만든 음료 등을 구입하면서 주민의 주요 소득원이 됐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울릉도 전체 관광객 감소 여파가 죽도까지 그대로 밀려오면서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더덕음료 판매도 크게 줄었다.
김 씨는 "관광객이 오지 않으니 장사를 할 기회 자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관광객 감소는 단순한 관광 통계상의 숫자가 아니다.
죽도 주민에게는 곧바로 생계소득 감소로 연결되는 현실적인 문제다.
더덕 농사 역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과거에는 가족이나 일꾼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지었지만 이제는 사실상 혼자서 수많은 더덕밭을 관리해야 한다.
김 씨는 "더덕 농사도 혼자서는 힘이 들어 더 이상 계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관광과 농업이라는 두 개의 생계수단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죽도에서 주민이 버틸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한 달 150만 원이 사실상 전부"…섬을 지키는 대가
현재 김 씨가 울릉군으로부터 받는 주요 소득 가운데 하나는 죽도 화장실 청소와 탐방로 제초작업 등 관리 업무다.
4월부터 6개월 동안 월 150만 원가량의 인건비를 받는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상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입의 대부분이라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더덕음료 판매가 끊기고 더덕 농사마저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실제 생계는 이 제한적인 소득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죽도에서 생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에어컨 하나를 설치하는 데도 선박 운송과 임대 비용 등을 포함하면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농사에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 것도 본섬보다 어렵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
김 씨는 "더덕 농사 인부를 구하려고 해도 울릉도 본섬보다 더 많은 인건비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적고 육지와 연결된 교통망이 없는 섬의 특성상 물건 하나, 장비 하나를 들여오는 데도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죽도 주민에게 '생활비 부담'은 단순히 물가가 조금 비싸다는 수준이 아니다.
섬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과정에 추가 비용이 붙는 구조다.
◇산림청 땅에 사는 주민…매년 수백만 원 부담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문제가 아니다.
죽도 주민은 산림청 소유 토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김 씨가 거주하고 있는 가옥 역시 1993년 죽도가 관광지구로 지정된 이후 민자 방식으로 조성된 시설이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부친이 발전시설 등을 포함해 약 5억 원을 들여 집을 지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채 건물 대부 또는 무단점유 형태로 생활하고 있다.
가옥 철거에 대비한 시설물 예치금과 임산물 판매시설 대부료, 더덕밭 무단점유에 따른 배상금 등으로 매년 산림청에 납부하는 비용만 500만 원가량에 이른다.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지 역시 주민 소유가 아니다.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농지 소유 문제로 인해 각종 농업 지원정책의 혜택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구조다.
김 씨는 "매년 산림청에 납부하는 비용이라도 울릉군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경섬을 지키는 주민'이라는 국가적 의미와 '산림청 소유 땅에서 각종 비용을 부담하며 살아가는 주민'이라는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 "주민이 살아야 국경섬 지킨다"…죽도 주민 "떠나고 싶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8일 '우리나라 국경섬, 정부가 직접 지원한다. 제1차 국토외곽 먼섬 종합발전계획'을 확정했다.
정부는 국토외곽 먼섬에 주민이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국토 지배권 강화와 해양 영토 확보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경섬에 사람이 살아야 국토의 실효적 지배가 강화되고, 섬의 경제·사회적 기능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죽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정부는 "주민이 살아야 국경섬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 섬에 사는 주민은 "집만 팔리면 떠나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에게 죽도는 더 이상 낭만적인 관광섬이 아니다.
혼자 농사를 짓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탐방로를 관리하면서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 생활공간이다.
김 씨는 "울릉군의 부속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본섬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며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울릉군 '부지 문제 해결'…주민 삶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울릉군도 죽도 주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산림청 소유인 죽도 부지를 울릉군 소유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놓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부지 소유권 문제가 풀리지 않고서는 주민들의 주거와 농업, 관광사업을 둘러싼 각종 제약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림청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엇갈리면서 실제 소유권 문제 해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주민의 삶은 행정절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광객 감소가 장기화하고 생계수단마저 하나둘 사라지는 상황에서 주민에게 '나중에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또 다른 기다림일 뿐이다.
◇'죽도 1박' 등 체류형 관광…주민 생계와 연결해야
죽도를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죽도 관광은 유람선을 타고 들어와 섬을 둘러본 뒤 다시 나가는 단순 방문형 관광에 가깝다.
이를 더덕 수확 체험과 섬 밥상, 트레킹, 별자리 관찰, 주민과 함께하는 농촌체험 등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죽도 1박'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이 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체험과 음식, 농산물 판매 등을 통해 소득이 주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죽도 관광의 미래가 단순히 관광객 숫자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찾아왔을 때 주민에게 실제 소득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경섬을 지키라면서 주민에게 떠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정부가 이번에 확정한 국토외곽 먼섬 종합발전계획이 죽도 주민에게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관광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민이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농업 기반을 마련하고, 물류비 부담을 낮추고, 주민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죽도처럼 주민 한 명 한 명의 거주 자체가 국토의 의미를 갖는 섬이라면 일반 지역과 동일한 잣대로 정책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주민이 섬을 떠난 뒤 관광시설만 남는다면 그것은 '국경섬을 지키는 정책'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죽도 주민이 울릉군에 집을 사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단순한 부동산 매입 요구로만 볼 일이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이제 혼자서는 이 섬에서 살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이 담겨 있다.
정부가 말한 대로 주민이 살아야 국경섬을 지킬 수 있다면, 이제 정부와 경북도, 울릉군이 답해야 한다.
◇"죽도에서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무엇을 할 것인가"
관광객 감소라는 숫자 뒤에는 한 사람이 있다.
관광객을 기다리며 더덕음료를 만들고, 홀로 농사를 짓고, 탐방로를 정비하며 섬을 지켜온 주민이다.
그 주민이 "집만 팔리면 떠나겠다"고 말하는 순간, 죽도의 문제는 한 개인의 생계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말하는 '국경섬' 정책의 실효성을 묻는 문제가 됐다.
죽도에 사람이 남아 있을 것인가. 지금은 그 질문에 정부와 울릉군이 답해야 할 때다.
tk@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