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시간이 있다. 정치에는 정치의 시간이 있고, 수사에는 수사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선수에게는 선수의 시간이 있다. 문제는 어느 하나의 시간이 다른 사람의 시간을 함부로 빼앗기 시작할 때 생긴다.
95일이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사무실을 둔 대한체육회 산하 9개 회원종목단체 직원들이 8일 경찰의 협조를 받아 마침내 자신의 일터에 들어갔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시작된 지 석 달이 훌쩍 지나서였다.
직원들이 가지고 나온 것은 컴퓨터와 서류, 회계자료, 유니폼과 국가대표 훈련·대회 참가에 필요한 장비였다. 너무나 평범한 업무용품이다. 그런데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신의 물건을 꺼내기 위해 대규모 경찰력이 필요했다. 시위대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까지 설치됐다.
이 비정상적인 풍경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를 둘러싼 갈등과 국가대표 선수의 펜싱 칼, 핸드볼 공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선거 과정에 의문이 있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이고, 법이 허용하는 집회와 시위 역시 민주사회가 보장해야 할 자유다.
그러나 자유에는 오래된 원칙이 하나 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경계를 만난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권리가 아무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일상을 장기간 중단시킬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스포츠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오는 19일 개막한다. 4년에 한 번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첫 아시안게임이고, 누군가에게는 선수 인생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일 수도 있다. 몇 년을 준비한 선수에게 "정치적 갈등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핸드볼경기장에 입주한 종목단체들은 석 달 넘게 정상적으로 사무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행정과 대회 운영, 국가대표 지원에 차질이 생겼고 펜싱계에서는 경기장에 보관된 장비를 꺼내지 못해 빌린 장비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치의 시간은 연장될 수 있지만 선수의 전성기는 연장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표소 봉쇄 논란’을 넘어선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크기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할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제도와 절차다. 의혹이 있다면 조사하고 수사하고, 법과 국회의 절차를 통해 밝히면 된다. 실제로 이날도 선거관리위원회와 특별검사팀 관계자들이 체육단체 직원들보다 먼저 경기장에 들어가 투표용지 등에 대한 안전조치를 취했다.
증거를 보존하는 일과 체육단체가 업무를 하는 일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평범한 해법에 도달하는 데 95일이나 걸렸다.
스포츠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국가대표가 존재하고 정부 예산이 투입되며 국제대회를 국가가 유치하는 순간 둘은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포츠가 정치와 관계를 맺는 것과 정치적 갈등의 인질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추구한 올림피즘 역시 스포츠를 단순한 승패의 경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연대, 평화를 구현하는 장으로 바라봤다. 스포츠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95일의 풍경은 씁쓸하다. 지난 6월에는 한 집회 참가자가 출입문을 막아서면서 체육단체의 진입이 무산됐고, 국회 국정조사특위 역시 뚜렷한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사이 행정 공백의 부담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종목단체와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아시안게임까지 이제 열흘 남짓이다. 종목단체 직원들은 지난 95일 동안 밀린 업무를 서둘러 메울 것이고, 선수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훈련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8일 직원들이 되찾은 것은 컴퓨터와 서류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해서 권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상의 권리’였다.
정치적 신념은 다를 수 있다. 선거를 바라보는 생각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을 권리까지 주지는 않는다.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도 진영의 논리도 아니다. 제대로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평범한 환경이다.
뒤늦게나마 최소한의 업무 물품을 확보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공공시설의 장기 봉쇄로 체육행정이 석 달 넘게 마비되는 동안 왜 더 일찍 해법을 찾지 못했는지, 공권력과 관계 기관은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아무 관계없는 체육인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 역시 어떤 명분으로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정치는 때로 사람을 갈라놓지만 스포츠는 그 경계를 넘어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정치가 스포츠의 시간을 빼앗지는 말아야 한다. 정치가 아무리 혼탁해도 땀 흘리는 선수들의 시간까지 그 소용돌이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선수의 전성기는 다시 돌려줄 수도, 보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95일 만에 열린 핸드볼경기장의 문. 그 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자신의 ‘한 번뿐인 시간’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왜 정치적 갈등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핸드볼경기장 95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