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정채영·서다빈 기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생·협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김민석표 민주당'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내란 종식'과 대야 투쟁 등 개혁 선명성을 강조했던 정청래 전 대표와 달리 민생과 실용에 방점을 찍고 중도·보수까지 외연을 넓히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집권여당의 무게중심을 '투쟁'에서 '성과'로 옮겨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생을 최우선하며, 모든 지역의 성장을 추진하겠다"며 "민생 실용 확장으로 큰 책임정당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민주당은 집권당의 책임을 다하겠다"며 "진보세력과 연대하고 중도 보수세력과 대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 9월 '내란 청산'에 무게를 뒀던 정청래 전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대비된다. 당시 약 50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정 전 대표는 '내란'을 26차례 언급한 반면 '협치'라는 표현은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정 전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까지 내란당의 오명을 끌어안고 살 것이냐"며 "이번에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석에서는 고성과 항의가 이어졌고, 일부 의원들은 연설 도중 본회의장을 떠나기도 했다.
반면 김 대표의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야당을 향한 공세보다 민생과 협치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두드러졌다. 김 대표는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영역을 하나씩 만들고 두 개씩 넓혀가자"고 제안했다. 청년·주거정책 등 여야 간 이견이 비교적 적은 분야부터 협력의 폭을 넓히고 여야 민생경제협의회도 더욱 활성화하자고 했다. 청년 문제와 관련한 정부 회의에는 여야 청년위원장의 공동 참석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대표도 당시 여야가 민생을 두고 '잘하기 경쟁'을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다만 여야가 서로 경쟁하며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김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여야가 함께할 수 있는 영역 자체를 넓히는 데 무게를 둔 셈이다.
상징적인 제안도 내놨다. 김 대표는 "거창한 정치개혁 말고, 소박하게 본회의 자리부터 섞어 앉자"며 당별로 나뉜 본회의장 좌석을 가나다순으로 배치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지도부라고 봐주시면 장동혁 대표님과 뒤에 같이 앉아도 좋다"고도 했다. 실제 연설을 마친 뒤에는 직접 야당 의석으로 이동해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민생·경제 분야에서는 집권여당으로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겠다는데 무게를 뒀다. AI 경쟁력 강화와 반도체 산업의 지방 확산을 위한 '8자 협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 뉴딜' 공론화 등을 제안했다. 경찰개혁과 정치개혁, 개헌 등 기존 개혁 과제도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민생·경제 분야의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제시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 같은 기조는 김 대표가 취임 이후 강조해 온 '민생·실용·확장' 노선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김 대표는 앞서 민주당 워크숍에서도 전통적 지지층을 넘어 중도·보수층까지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내에서는 최근 국정 지지율 하락과 인사청문회 정국 등이 김 대표의 '협치' 메시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더팩트>에 "김 대표는 직전까지 국무총리를 지냈고 이재명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최근 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야당을 자극하기보다는 국민의힘은 물론 비교섭단체까지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용혜인·김승원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굳이 야당을 강하게 자극해 전선을 넓힐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지난해 정청래 전 대표의 연설과 달리 상당히 절제되고 온화한 메시지를 낸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대표와 차별화된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깔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른바 '적통 경쟁'이 계속 거론됐던 만큼 김 대표로서는 자신이 정 전 대표와는 다른 방식으로 당을 이끌겠다는 점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