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윤경 기자]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 논의가 6개월째 공회전하는 가운데 소상공인 업계 일각에서 조건부 수용론이 나오면서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다만 소상공인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데다 상생 방안과 야간노동 문제까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논의는 더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최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동네 슈퍼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국비 지원 근거를 마련해달라는 상생 제안서를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부에 제출했다.
그동안 소상공인단체들은 대형마트 새벽배송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소비자 구매 방식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뀐 상황에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만 막는 방식으로는 골목상권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규제를 유지하기보다 동네 슈퍼에도 온라인 경쟁력을 갖출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구체적으로 정부가 5년간 5000억원을 투입해 △지자체 공공배달앱 내 '동네슈퍼 1시간 쾌속장보기' 전용 카테고리 구축 △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POS)·재고관리시스템과 공공배달앱의 실시간 연동 △정부·지자체 지원을 통한 배달 수수료 0원 △반찬가게·떡집 등 동네 상인이 참여하는 공동 묶음배송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상생안이 법제화되면 그동안 반대해온 새벽배송을 조건부로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소상공인 업계 전체가 규제 완화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상생기금 조성이나 새벽시간 소액 판매 제한만으로는 대형마트의 심야 골목상권 진입을 막을 수 없고, 그 영향이 슈퍼뿐 아니라 골목상권 전 업종에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규제는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것이다. 대형마트 중심으로 재편되던 유통시장에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은 자정부터 오전 10시 사이 범위에서 지자체가 정한 시간 동안 영업할 수 없고, 월 2일의 의무휴업일을 지켜야 한다.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도 금지된다.
그러나 유통 환경이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면서 규제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회생 절차를 밟은 홈플러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다만 규제 완화가 곧바로 대형마트의 부담 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달 대형 유통사와의 간담회에서 상생협력기금 조성과 새벽시간 농·축·수산물 단일품목의 1만원 이하 판매 제한 등을 규제 완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 규모로는 1000억원 안팎이 거론된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는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물류센터와 차량, 인력에 선투자하고 상생기금까지 부담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미 쿠팡과 컬리 등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실제 배송 물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야간노동 문제도 별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야간작업을 1일 최대 10시간, 주당 최대 48시간, 월 최대 12회로 제한하고 야간작업 종료 후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며 3일을 초과한 연속 작업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업계에서는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존 배송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추가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인력난과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배송 현장에서도 반발이 나온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위탁계약을 맺은 영업점들의 협의체인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지난달 26~28일 소속 택배기사 3319명을 상대로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 월 12회 제한에 대한 반대 응답은 97.7%, 작업시간이 제한되면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은 97.1%로 집계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새벽배송 규제 완화와 배송기사 야간노동, 소상공인 지원을 하나로 묶기보다 각각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택배기사의 건강권은 의학적·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대응하고, 소상공인 역시 별도의 지원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면 된다"며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것은 이커머스와의 경쟁에 대응하고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한 문제인 만큼 다른 사안과 묶어 논의를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