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부산=손연우 기자] 정부가 선박과 외딴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강제노동 피해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어업 분야에 특화된 인신매매 피해 식별 기준을 시행한다.
2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성평등가족부와 해수부가 함께 개정한 '인신매매 등 피해자 식별 및 보호 지표'가 3일부터 시행된다.
이 지표는 인신매매방지법에 따라 수사와 사업장 점검 등의 현장에서 인신매매 피해 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이다.
이번 개정은 지난해 미국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가 권고한 어업 분야 특화 지표 개발을 이행하기 위해 추진됐다.
원양어업과 양식업, 염전 등 업종별 특성과 다양한 고용 형태를 반영해 피해 식별 기준을 세분화했다.
해수부의 '2026 한국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취업 선원 6만 543명 가운데 외국인 선원은 3만 3171명으로 54.8%를 차지했다.
외국인 선원 비중은 2021년 45.7%에서 2022년 47.0%, 2023년 49.9%, 2024년 53.0%, 지난해 54.8%로 4년 사이 9.1%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인 선원 비중은 54.3%에서 45.2%로 낮아졌다.
업종별 외국인 선원은 외항선 1만 8038명, 연근해어선 9517명, 원양어선 4411명, 내항선 1125명 순이다. 연근해·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은 총 1만 3928명으로 전체 외국인 선원의 약 42%에 달한다.
선박은 육상 사업장과 달리 외부에서 근로환경을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원양어선은 장기간 바다에 머물러 피해자가 강제노동이나 인권침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쉽지 않다.
미국 국무부의 '2025년 인신매매 보고서'에 수록된 한국 정부 자료를 보면 우리 정부가 2024년 직접 선상 점검을 실시한 어선은 연근해어선 3척과 원양어선 5척 등 모두 8척이었다. 이 가운데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점검은 5척이었다.
서류 점검은 연근해어선 966척과 원양어선 188척 등 1154척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보고서는 장기간 입항하지 않는 원양어선의 특성을 고려해 선상 근로환경에 대한 불시점검을 더 자주, 일관되게 시행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이번 개정 지표에는 제3자 계좌를 통한 급여 강제송금과 고금리 대부계약, 거주지 외 장소에서 하선할 경우 귀국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 등이 경제적 속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담겼다.
가족에게 노동자의 채무 이행을 요구하거나 승선 전 노동자를 구금하는 행위, 선내 연락기기 이용을 차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 등 물리적·정서적 통제도 세부지표로 신설됐다.
국적에 따라 근로조건이나 위생·보건시설 이용에 차별을 두거나 계약 연장 거부를 이용해 부당한 처우를 강요하는 행위는 착취 판단 기준으로 명시했다.
피해자가 인신매매 과정에서 범죄를 저질렀거나 착취에 사전에 동의했더라도 피해자로서 실질적인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반영됐다.
김성철 성평등가족부 안전인권정책관은 "어업 분야는 선박이나 외딴 작업장 등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환경에서 근무해 피해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기 어렵다"며 "취약한 지위가 강제노동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정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성평등가족부와 시민사회단체, 선원노조 등과 공동으로 협의해 어업 분야 특화 지표를 마련했다"며 "이주노동자의 강제노동 예방과 인권 보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