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선은양 기자] 한때 이발소를 운영하던 A 씨는 손님이 줄어든 뒤에도 빚을 내 가게를 버텼다. 그러나 남성 고객들이 이발소 대신 미용실을 찾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빚은 갚을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친구와 가족에게 빌린 돈까지 막히자 관계도 끊겼고, 노숙 생활을 하게 됐다.
알코올 문제로 치료와 상담을 거듭하던 B씨는 개인파산을 한 뒤 공공근로를 시작했다. 월 120만원가량의 수입 중 절반을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자녀들에게 보냈다. "아빠 고마워"라는 답장을 받은 날, 그는 술을 끊었다고 한다.
지난 25일 <더팩트>와 만난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가 소개한 사례들이다. 그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단순히 가난이 아니라, 빚 때문에 삶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인회생·파산은 빚을 떼먹는 제도가 아니라 경제활동과 가족관계, 일상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올해도 개인회생·파산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법원을 찾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사건은 16만2743건으로 직전 1년보다 20.1% 증가했다. 개인파산 사건도 3만8476건으로 8.5% 늘었다. 서울회생법원 접수 건수는 개인회생 2만9234건, 개인파산 8520건으로 각각 10.7%, 2.7% 증가했다.
박 변호사는 실물경제가 침체되고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환을 거듭하며 채무자들이 버틸 여지가 줄어들면서 개인회생·파산이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청년층은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 부담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영업자나 중장년층은 경기 침체와 사업 실패, 실직 뒤 채무 위기에 내몰린다.
채무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빚이 늘수록 가족과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고립되거나 범죄 피해와 연루 위험에 놓인다는 점은 같다고 박 변호사는 봤다.
개인회생·파산에는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의 세금으로 빚을 탕감해준다"거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인식이 제도의 구조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개인회생이나 파산은 국가가 세금으로 채무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제도가 아니다"며 "상담 현장에서 보는 채무 대부분은 은행·카드사 등 금융권 채무이고, 법원이 채무자의 변제 능력을 심사한 뒤 채권자가 더는 회수하기 어려운 부분을 조정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세금은 오히려 회생·파산으로 사라지지 않는 채무다. 국세와 지방세 등 조세채권은 비면책 채권으로, 파산 면책을 받더라도 원칙적으로 탕감되지 않는다. 개인회생에서도 은행 빚보다 우선해 변제해야 한다.
박 변호사는 "신용불량 상태에 숨어 있던 채무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내 세금을 계속 낼 수 있게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도박이나 사치로 빚을 지고도 책임을 피하는 사람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지나치다. 법원이 이를 엄격하게 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원에 소득·재산·채무와 지출 내역을 세세히 소명해야 해, 변호사나 법무사 조력 없이는 절차 진행이 쉽지 않을 만큼 심사가 촘촘하다.
박 변호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을 끝까지 채무자로 남겨두면 소비와 생산 활동에서 배제되고, 결국 복지·치안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회생·파산은 고장 난 사람을 버리는 제도가 아니라 다시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사회에 참여하게 하는 재기 제도"라고 말했다.
다만 개인회생·파산 제도가 있다고 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제때 절차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추심에 대한 공포와 신청 비용, 정보 부족 탓에 채무자가 채무조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다시 사채나 불법 브로커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회생·파산 신청서가 접수되면 우선 48시간 동안 추심을 일괄 중단하고, 그 사이 법원이 정식 금지명령 여부를 신속히 판단하는 '임시중지 제도'를 제안했다. 독촉과 압박에 떠밀려 더 위험한 빚으로 향하기 전에 채무자에게 숨을 고를 시간을 주자는 취지다.
돈이 없어 회생을 신청하지 못하는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법률상담·신청 비용을 지원하는 바우처와 국가 보증의 저리 재기자금을 도입해, 채무조정 비용을 마련하려고 다시 사채나 불법 브로커를 찾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에는 대출과 이체의 '입구'에서 더 큰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도 했다. 상환 능력 확인을 소홀히 하거나 이상거래 징후가 뚜렷한데도 대출·이체를 실행했다면, 금융회사도 손실의 일부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채무조정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빚을 너무 열심히 갚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무리하게 버티다가 건강과 일자리, 가족관계까지 잃는 것보다 회생이나 워크아웃으로 빚을 정리하고 다시 경제생활을 시작하는 편이 채무자와 가족, 채권자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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