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28일 서울 강남구 서울옥션 강남센터에 특별한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반도체 장비 시장을 이끌고 있는 한미반도체의 곽동신 회장이 개인전을 열었다. '곽신'이라는 작가명으로 데뷔 무대를 가진 것이다. 곽 회장은 전날까지 전시 현장을 두루 챙기며 자신의 첫 개인전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현직 기업 회장이 작가명까지 만들어 별도 공간에서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례적인 행보다.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더라도 통상 유명 작품을 수집하거나, 전시관을 운영하며 예술가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만큼 예술 창작 활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의미다. 곽 회장의 개인전은 다음 달 15일까지 진행된다.
이날 오전 10시, 전시장의 문이 열렸다. 평일 오전 관람객은 그리 많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작가 활동이 곽 회장의 개인 행보인 만큼, 한미반도체 직원들은 개인전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곽 회장 자신도 이날 전시장을 방문하지 않을 예정이다.
곽 회장의 작품은 단순한 취미 생활의 결과물로만 보기 어려웠다. 곽 회장은 어릴 때부터 인간과 기계의 공존, 기계의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을 곱씹어왔고, 이를 영감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곽 회장은 이번 개인전에서 지난 29년간 금속과 정밀가공 기술을 다뤄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형 작품 60여점을 선보였다. 개인전의 주제는 '엔드리스(ENDLESS)'로, '금속 위에 영원히 이어지는 시간'을 뜻한다.
조형의 재료도 산업 소재인 알루미늄이다. 곽 회장은 경영 활동 외 시간에 컴퓨터 정밀 설계와 컴퓨터수치제어(CNC) 밀링, 산업용 로봇 절삭 공정 등을 거쳐 알루미늄을 하트, 달러 기호, 시계 등의 모양으로 만들었다. 인간의 상상력과 기계의 정밀함이 만나는 순간, 산업 기술이 새로운 조형 언어로 전환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대표작인 '엔드리스 러브'는 하트를 캔버스 위에 질서 있게 배열한 작품이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과 따뜻한 하트 형상의 대비를 통해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상상을 표현한다. 달러 기호를 반복 배치한 '슈퍼 리치'는 부와 성공, 현대인의 욕망을 시각화한다. '포에버 영'은 시침과 분침이 없는 시계의 형상을 통해 시간에서 해방된 상태를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실제로 사용된 CNC 밀링의 부속품과 공구들도 함께 진열됐다. 곽 회장은 해당 부속품·공구를 통해 '축적된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금속을 하나의 형태로 변화시키기 위해 투입된 힘과 시간, 그리고 기계의 정밀함과 작가의 감각이 축적된 '과정의 기록'이라는 설명이다.
곽 회장은 이번 개인전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여러 피규어도 공개했다. 우주소년 아톰, 철인28호, 드로리안 타임머신, 황금전사 골드라이탄, 메카고질라 등 대부분 기계와 관련된 피규어로 구성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곽 회장은 피규어 외에도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 필립 콜버트, 일본 현대미술가 야요이 쿠사마 등 예술가들의 작품 수집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장에는 한미반도체와 필립 콜버트의 협업으로 탄생한 캐릭터도 자리했다.
작가 활동을 비롯한 곽 회장의 예술 관련 행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해 1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위한 법인 '곽신아트'를 설립했다. 해당 법인의 사업 목적은 예술·미술·공예품 기획·창작·제작업, 예술·미술·공예품 판매·중개·유통업, 예술·미술·공예품 전시회 개최 및 관련 대행업, 예술·미술·공예품 감정·자문·컨설팅업 등이다. 곽 회장이 서울 도심 내 여러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추후 독립적인 갤러리 공간을 운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시 관계자는 "(일정이 빠듯한) 기업 회장이라는 특성상 후속 작품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다만 곽신 작가의 활동은 단발성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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