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핵심 수익원인 거래 수수료까지 포기하며 시장점유율 확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에 편입된 디지털엑스(옛 코빗)가 1년간 원화마켓 전 종목 거래 수수료를 없앤 데 이어 코인원도 사실상 무기한 전 종목 무료화로 맞불을 놨다.
업비트와 빗썸이 국내 거래량의 97%가량을 차지하는 양강 구도가 굳어진 상황에서 후발 거래소들이 당장의 매출을 포기해서라도 이용자와 거래량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수수료 무료화로 점유율이 단기간 급등하더라도 혜택 종료 이후 다시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특히 거래소에 대한 신뢰와 서비스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수료를 없애더라도 이용자를 장기간 붙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점유율 숫자에 매몰된 출혈 경쟁보다 거래 수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개선하고 거래 안정성과 보안, 이용자 보호 등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인원은 지난 26일부터 별도 공지 시까지 전 종목 거래 수수료율을 0%로 전환했다. 웹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바우처를 발급하면 30일 동안 무료 거래가 가능하고 횟수 제한 없이 재발급받을 수 있다.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무료화에 가깝다.
앞서 코인원은 지난 21일 개인용 오픈 API 거래 수수료도 무료화했다. 일반 투자자는 물론 API를 통한 거래까지 무료화하면서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거래에서 수수료를 받지 않는 구조로 전환했다.
코인원의 결정은 디지털엑스가 '1년 무료'라는 승부수를 던진 지 이틀 만에 나왔다. 디지털엑스는 지난 24일부터 1년 동안 원화마켓 전 종목의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업비트와 빗썸도 일부 거래에서 무료 정책을 펴고 있다. 업비트는 최근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 등 스테이블코인 원화마켓 일부 종목을 대상으로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진행했다. 빗썸 역시 지난 21일부터 원화마켓 전체 종목의 오픈 API 거래 수수료를 무료화하며 거래량이 많은 투자자 확보에 나섰다.
◆ 업비트·빗썸 97% 장악…후발 거래소 '점유율 승부수'
후발 거래소들이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무료 경쟁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시장점유율 격차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량 기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점유율은 업비트가 약 69%, 빗썸이 28%로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두 거래소를 합하면 전체 거래량의 약 97%에 달한다.
반면 코인원은 2%, 코빗은 0.5%, 고팍스는 0.1%에 그쳤다. 3위 코인원조차 업비트와 약 35배, 빗썸과 14배의 격차가 벌어져 있다.
거래량이 늘어나면 수수료 수익과 유동성이 증가하고 풍부한 유동성이 다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거래소 사업 특성상 후발 사업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수익보다 거래량 확보가 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처럼 가상자산 거래량 자체가 감소한 상황에서는 중소형 거래소의 일시적인 점유율 상승을 실제 이용자 기반 확대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를 무료화하면 기존 이용자의 거래가 이동하면서 유동성은 늘어날 수 있다"면서도 "현재는 시장 자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만큼 수수료를 없앤다고 새로운 투자자가 대거 유입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빗썸, 오지급으로 고객 이탈…무료화하자 35% '반짝 반등'
수수료 무료화의 한계는 빗썸의 최근 점유율 변화에서도 나타났다.
빗썸은 지난 2월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로 이용자 신뢰에 타격을 입었다. 당시 랜덤박스 리워드 이벤트 과정에서 249명에게 지급해야 할 비트코인 수량을 잘못 입력하면서 대규모 오지급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빗썸의 일일 시장점유율은 30% 초반대에서 23%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빗썸은 피해보상 방안의 하나로 2월 9일부터 일주일 동안 전 종목 거래 수수료를 무료화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벤트 마지막 날인 2월 16일 빗썸의 시장점유율은 35.2%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반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료 정책이 종료된 2월 17일부터 점유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해 2월 21일에는 21.1%까지 내려갔다. 무료화 마지막 날과 비교하면 불과 닷새 만에 14.1%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수수료 무료화가 사고 이후 빠져나간 거래량을 단기간 되돌리는 데는 효과를 냈지만 이를 장기적인 고객 확보로 연결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수수료 무료화 당시에는 점유율이 올라갈 수 있지만 정책이 끝난 이후 다시 떨어지는 사례도 있었다"며 "무료화를 계기로 거래소를 이용한 고객이 서비스에 만족하면 락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수수료만으로 점유율을 계속 끌어올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 '0원' 경쟁해도 결국 이용자는 좋은 곳으로
빗썸 사례는 거래소의 장기 경쟁력이 단순히 거래 비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수수료가 무료인 기간에는 가격에 민감한 이용자와 거래량이 몰릴 수 있지만 거래 안정성과 보안, 이용자 보호 등 거래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혜택이 끝난 이후 고객을 붙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거래소가 동시에 '0원'을 내걸 경우 수수료 무료화 자체의 차별화 효과도 떨어진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수수료 무료화는 기본적으로 일시적인 효과가 강하고 너도나도 무료화를 시작하면 특정 거래소만의 메리트도 줄어든다"며 "결국 조건이 비슷해지면 이용자는 자신에게 더 편리하고 서비스가 좋은 거래소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엑스가 1년 무료를 선언한 직후 코인원이 전 종목 무료화로 맞대응한 상황에서 향후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무료 기간을 늘리거나 추가 혜택을 내놓는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쟁사가 다시 대응하면 혜택 규모가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특히 이미 국내 거래량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업비트와 빗썸까지 전면적인 수수료 인하에 나설 경우 후발 거래소는 압도적인 유동성과 이용자 기반을 갖춘 대형 사업자와 가격 조건까지 동일한 상황에서 경쟁해야 한다.
◆ 수수료로 벌면서 수수료 없애기…수익구조부터 바꿔야
국내 거래소들이 수수료를 포기하면서도 정작 사업구조는 수수료 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파생상품과 각종 금융서비스 등으로 수익원을 다각화한 것과 달리 국내 거래소는 규제 등의 영향으로 현물 거래 수수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올 상반기 기준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전체 매출의 약 97%, 빗썸은 사실상 100%가 거래 수수료에서 발생했다. 거래소들이 경쟁적으로 없애고 있는 수수료가 부수적인 수익원이 아니라 사실상 본업의 매출인 셈이다.
한편에서는 수수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수수료를 없애는 역설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시장점유율을 단기간 끌어올리는 데 매몰되기보다 수수료 중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안정적인 주문 체결과 전산 시스템, 보안, 이상거래 감시, 자금세탁방지(AML), 고객 응대와 피해 구제 등은 거래소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무료 수수료는 고객을 일시적으로 불러올 수 있지만 이들을 남게 만드는 것은 결국 거래소에 대한 신뢰와 서비스라는 지적이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고객 유입 차원에서 이런 마케팅 정책을 펼칠 수는 있지만 고질적인 수익 다각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성장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다"며 "유동성과 거래 안정성, 이용자 보호 및 시장 감시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