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의 무게'를 견딘 이강인, '마드리드의 왕관'에 답하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그리즈만의 유산'을 향한 의구심, 한 경기 만에 찬사로 바꾸다
박지성·손흥민 거친 '7번 계보'… 한국 축구 에이스의 위대한 이양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격수 이강인이 20일 말라가와 2026~27 라리가 1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결승골로 장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아클레티코 마드리드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유럽 축구에서 등번호 '7번'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 마드리드)의 7번이라면 더욱 그렇다. 클럽의 역사를 대표하는 공격수이자 비센테 칼데론에서 메트로폴리타노까지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붉은 줄무늬의 영혼' 앙투안 그리즈만의 번호. 그 상징성이 이제 한국인 미드필더 이강인의 등에 새겨졌다.

스페인 현지와 주변국의 시선에는 여전히 기대와 의구심, 그리고 미묘한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과 AT 마드리드 구단은 이강인에게 단순한 로테이션 자원이 아닌, 클럽의 다음 시대를 이끌 '에이스의 왕관'을 맡겼다는 점이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 이강인(왼쪽)은 18일(한국시간) 라리가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스페인 마드리드의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공개 입단식에서 엔리케 세레소 회장으로부터 등번호 7번의 유니폼을 받고 있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그리즈만의 유산, 그리고 7번의 진짜 의미

4000만 유로의 이적료와 5년의 장기 계약, 그리고 등번호 7번. 구단이 이강인에게 내민 숫자는 단순한 상업적 마케팅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시메오네 감독이 수년간 열망했던 공격의 창의성을 이강인의 왼발과 전술적 유연성으로 완성하겠다는 강력한 전술적 선언이었다.

그리즈만이 지닌 7번의 본질은 단순히 골을 넣는 공격수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최전방과 중원을 넘나들며 경기를 읽고, 수비 시에는 헌신적인 압박을 마다하지 않으며, 승부처에서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내는 '전술적 지배자'였다. AT 마드리드가 이강인에게 7번을 부여했다는 것은, 그가 가진 독보적인 탈압박과 킬러패스, 그리고 경기의 템포를 바꾸고 공격의 방향을 설계하는 왼발의 기량이 그리즈만이 남긴 유산의 궤적과 정확히 맞물려 있음을 구단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이강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뷔전 데뷔골 소식을 전하는 구단 SNS,/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라리가와 PSG가 다져낸 야성, 개막전 데뷔골로 터지다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이강인은 20일 홈구장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치른 2026-2027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뷔전, 단 한 경기로 자신을 둘러싼 적지 않은 의구심을 단숨에 기대와 찬사로 돌려놓았다.

승격팀 말라가와의 홈 개막전, 0-0으로 답답하게 맞서던 후반 12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은 그라운드를 밟자마자 특유의 탈압박과 날카로운 중거리 슛으로 경기 흐름을 완전히 가져왔다. 그리고 후반 25분, 상체를 흔드는 바디 페인팅으로 상대 수비진을 무력화한 뒤 페널티 아크 오른쪽에서 터뜨린 전매특허 왼발 감아차기는 메트로폴리타노의 골망과 팬들의 마음을 동시에 흔들었다. 팀의 2-0 완승을 이끈 선제 결승골이자, 데뷔전 매치 MVP 선정. 이보다 완벽한 에이스의 신고식은 없었다.

이 화려한 폭발의 밑바탕에는 마요르카 시절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 체제에서 익힌 라리가 특유의 강한 경합과 수비 가담 능력,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 함께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키운 전술적 유연성이 녹아 있었다. 라리가의 야성과 빅클럽의 품격을 모두 갖춘 이강인은 시메오네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자신만의 창의성을 마음껏 펼쳐 보일 준비가 끝났음을 실전으로 증명해냈다.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이강인이 패스하고 있다./더팩트DB

◆ 박지성·손흥민을 넘어: 한국 축구 에이스의 위대한 이양

이강인의 AT 마드리드 7번 입성과 개막전 강렬한 데뷔는 개인의 경사를 넘어, 한국 축구 현대사가 써 내려온 '에이스 계보'의 완성을 의미한다.

헌신과 희생으로 유럽 빅클럽의 문을 부수었던 박지성의 7번(맨유 시절은 13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세계적인 골잡이로 우뚝 선 손흥민의 7번. 그리고 이제 이강인에게 이어진 7번은 한국 축구 에이스의 또 다른 진화를 상징한다. 득점과 돌파를 넘어 유럽 빅클럽에서 경기의 흐름을 설계하고 공격의 방향을 결정하는 전술적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손흥민이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거대한 버팀목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경기장 내부에서 전술적 해답을 제시하는 경기력의 중심축은 이미 이강인에게 자연스럽게 이양되고 있다. 빅클럽 7번으로서의 압도적인 데뷔전 퍼포먼스는 한국 축구의 에이스 계보가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신호탄이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7번 이강인이 20일 말라가와의 2026-2027 프리메라리그 홈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홈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있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SNS 캡처

◆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시작된 이강인의 시간

의구심은 언제나 위대한 에이스의 등장 앞에 놓이는 첫 번째 서막이었다. 그리즈만이 그러했듯, 손흥민이 그러했듯, 이강인 역시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들을 오직 그라운드 위 완벽한 경기력으로 증명해내기 시작했다.

답답한 흐름을 깨뜨리는 한 발 앞선 패스, 상대의 템포를 빼앗는 감각적인 드리블, 그리고 메트로폴리타노를 열광시킨 통쾌한 왼발 결승골. 그리즈만이 남긴 7번의 의미를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한 이강인. 데뷔전은 그가 왕관을 물려받았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왕관에 자신만의 무게를 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장면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경기의 강렬함을 한 시즌의 지속성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이강인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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