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1100억 도시재생, 이제 황병직 시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황병직 영주시장(가운데)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주요 현안 사업을 설명하며 국비 확보 및 지역 발전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영주시

[더팩트ㅣ영주=김성권 기자] 한때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히며 '도시재생의 신화'로 불렸던 경북 영주시 원도심. 중앙시장 일대에 청년 공예가들이 둥지를 틀고, 옥상에서는 문화공연이 펼쳐지던 시절만 해도 영주 도시재생은 쇠락한 원도심을 되살릴 새로운 해법처럼 보였다.

하지만 약 9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습은 기대와 크게 다르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간은 적막하고, 일부 거점시설은 공실로 남아 있다. 옥상 공연장 등 일부 시설은 잡초와 먼지만 쌓인 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이 과정에 투입된 돈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주시 도시재생 사업에는 지금까지 약 11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됐다.

건물을 짓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건물에 사람을 모으고 지속가능한 콘텐츠를 채우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가운데 도시재생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영주시 도시재생센터장 자리가 15개월째 비어 있다는 사실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영주시는 2026년 업무보고 기준 모두 29곳의 도시재생 거점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23곳, 약 79%가 관리위탁이나 사용허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시설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시설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누가 책임지고 관리할 것인지, 각각의 시설이 당초 도시재생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정작 이를 총괄해야 할 수장이 없다.

센터장 공백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다. 주민과 행정, 위탁 운영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시설별 성과를 점검하며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야 할 중심축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더구나 지난해 센터장 공모에서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채용이 이뤄지지 않은 이후에도 장기간 후속 조치가 없었다는 점은 행정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영주시의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센터장 활동수당과 업무추진비 등을 삭감하면서 예산의 효율성을 따졌을 수 있다. 그러나 수천만 원의 예산을 줄이는 것이 과연 1100억 원 규모 도시재생 사업의 장기적 성과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견제는 필요하지만, 대안 없는 삭감은 또 다른 방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10대 영주시의회가 출범했음에도 집행부가 이 같은 중대한 현안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행정과 의회 사이의 소통 부재가 도마에 올랐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 게임'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취임한 지 두 달 남짓한 황병직 영주시장의 고민이 시작된다.

황 시장에게 도시재생센터는 단순히 비어 있는 센터장 자리를 채우는 인사 현안이 아니다. 이미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투입된 사업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황 시장은 취임 이후 도시재생센터 정상화를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지금 영주 도시재생에 필요한 것은 성급한 결론보다 냉정한 진단일지도 모른다.

29개 거점시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시설별 이용률과 수익, 유지관리비, 공실 여부, 위탁계약, 주민 참여도와 사업 성과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살릴 시설은 과감하게 살리고, 기능이 중복되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시설은 용도 변경이나 운영 방식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민간의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는 과감하게 민간의 힘을 빌리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재생센터가 다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력, 예산의 구조를 원점에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센터장 역시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도시재생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 경험, 주민과의 소통 능력을 갖춘 인물을 찾아야 한다. 적임자가 없다면 다시 공모하고, 그때까지는 임시 총괄체계를 마련해서라도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황 시장에게 지금 요구되는 것은 과거 사업의 성과를 방어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와 한계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수술하는 결단이다.

도시재생은 건물을 짓는 순간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준공 이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벽돌을 쌓아 공간을 만드는 것은 예산으로 가능하지만, 그 공간에 사람을 불러 모으고 지역경제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행정의 책임과 전문적인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하다.

황 시장에게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영주시 도시재생을 다시 살릴 것인가, 아니면 1100억 원의 대규모 투자가 낡은 시설과 공실만 남긴 채 끝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취임 초기인 만큼 황 시장에게는 아직 선택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도 무한정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주시와 시의회가 더 이상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지 말고, 삭감된 예산의 복원과 센터 정상화 방안, 29개 거점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운영실태 점검에 즉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또 하나의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이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고, 침체된 원도심에 다시 활기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영주 도시재생의 역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전국적인 성공 신화'로 기억될지, 아니면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도 실패한 도시재생의 반면교사'로 남을지는 이제 황 시장과 영주시의회, 그리고 행정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묻고 있다. 1100억 원을 들여 만든 도시재생의 공간을, 이제 누가 다시 살아 숨 쉬게 할 것인가. 그 답을 내놓는 것이 지금 황병직 시장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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