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거나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인기 애니메이션이 장악한 여름 극장가에서 조용하지만 꾸준히 관객을 불러 모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영화가 있다. 한 가족의 20년을 조명한 '어떻게 해야 했을까?'다.
지난달 29일 스크린에 걸린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감독 후지노 토모아키)가 개봉 3일 만에 1만 명, 6일 만에 3만 명, 12일 만에 5만 명을 넘어선데 이어 16일 만에 6만 관객 고지를 밟으며 독립예술영화로서 이례적인 흥행세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어린 시절 조현병 증상을 보인 누나를 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워 둔 부모와 그 가족의 시간을 20여 년간 담아낸 남동생 후지노 토모아키의 사적인 기록을 그린다. 부모는 늙고 누나는 세상을 떠난 지금, 감독은 과거를 다시 꺼내 보며 당시 가족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됐는지 그리고 자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되짚는다.
2024년 12월 일본 현지에서 개봉한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첫 주에 단 4개 관에서 시작했으나 입소문을 타면서 8주 만에 100개 관 이상으로 상영관이 확대되며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입증했다.
영화는 20년간 이어진 한 가족의 갈등을 담은 만큼 묵직하고 불편한 분위기이지만 누구의 잘못인지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색다른 매력을 장착하며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관객들은 가족의 선택을 따라가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과 강렬한 여운을 곱씹으며 주변에 영화를 추천했고, 이러한 입소문이 곧 흥행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미니시어터(독립영화관)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에 올랐고 일본 포레포레 히가시나카노 극장에서 55회 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수입 1억 엔을 넘어서는 쾌거를 거뒀다. 또한 제18회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와 제14회 타이완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제24회 니폰 커넥션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더 많은 관객을 만났다.
그리고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 관계자의 눈에 띈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단순한 가족 다큐멘터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질문을 던지며 일본을 넘어 국내 관객들에게도 묵직한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남기고 있다.
특히 작품은 화려한 볼거리나 스케일이 아닌 한 가족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결국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혹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와 관련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현병 자체를 설명하거나 가족의 갈등 속 개개인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어느 한쪽의 입장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 분명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특정한 답을 강요하기 보다 보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할 여지를 남기며 깊은 공감과 긴 여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개봉 당일 전국 61개 관에서 출발했으나 2주 차 주말인 9일 기준 전국 78개 관까지 확대되는 저력을 과시했고 실관람객 평점인 CGV 골든에그지수 97%를 기록하며 높은 만족도를 입증했다.
무엇보다 이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감독 데스틴 크리튼)와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라는 할리우드 대작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독립예술영화가 개봉 이후 상영 기회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개봉 당시보다 상영관을 늘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개봉 초반 좌석 판매율이 50%대를 기록하고 GV(관객과의 대화)가 매진되는 등 적은 상영관이었음에도 이를 다 채우면서 상영 규모를 키워가는, 전형적인 입소문의 흥행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관객들의 꾸준한 수요와 자발적인 입소문이 실제 상영관 확대를 이끌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배급사 관계자는 <더팩트>에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이어서 놀랐는데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쁜 안도감이 든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정신 건강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2~30대 여성 관객들이 많이 관람했고 입소문이 퍼져 보다 높은 연령대의 관객들도 관람해 주고 있는 것 같다"고 흥행 요인을 꼽았다.
여기에 극장 상영 후 OTT나 VOD 등 부가서비스 형태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례적인 선택은 관객들의 발걸음을 극장가로 더욱 재촉하고 있는 요소가 됐다. 이에 관계자는 "추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GV 라인업도 관객들께 신선하게 다가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다"고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흥행은 관객 한 사람의 선택이 또 다른 관객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입소문의 힘을 보여주며 5만 명 그 이상의 값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금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과 깊은 여운에 매료된 관람평이 쏟아지면서 작은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충분히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가운데, 이 작품이 이러한 관심을 발판 삼아 어디까지 흥행을 이어갈지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