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놀이터②] "내 '최애'에게 영광을"…왜 매일 '출석'하는가


"아티스트의 노력과 성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어"
투표→광고·성과→콘텐츠 '순환 구조'
일상 추억 동반한 새로운 경험까지

팬 플랫폼은 투표를 통한 광고와 1위 선정부터 스케줄, 팬로그, 서포트, 이벤트, 커뮤니티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며 팬들의 놀이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왼쪽부터 유픽, 팬앤스타, 블립, 아이돌차트. /앱 화면 캡처

K팝 팬들에게 스마트폰은 또 하나의 '덕질' 현장이 됐다. 매일 출석하고 광고를 보고 포인트를 모아 '최애'에게 투표한다. 그렇게 모인 팬심은 순위가 되고 전광판 광고가 되고 때로는 트로피가 된다. 그런데 팬들의 놀이터는 이제 투표만 하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 소통하고 기록하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며 아티스트의 성장에까지 참여한다. 팬덤 플랫폼은 어떻게 '팬들의 놀이터'가 됐고, 팬들은 왜 그곳에서 움직이며, 앞으로 그 놀이터는 어떻게 달라질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한 표가 아티스트의 운명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십만, 수백만 표가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투표 1위에 오르고 지하철역 전광판에 등장한다. 때로는 팬 투표가 시상식 트로피로 연결된다. 팬들에게 자신의 클릭 한 번은 그래서 단순한 클릭이 아니다.

K팝 팬덤 플랫폼이 팬들의 새로운 '놀이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내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는 경험이 있다.

상당수 팬덤 플랫폼은 투표를 핵심 기능으로 활용한다. 팬은 출석이나 광고 시청, 각종 미션 또는 결제 등을 통해 투표에 필요한 재화를 얻고 이를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에게 사용한다. 팬들의 참여는 순위라는 즉각적인 결과로 돌아온다. 실시간으로 순위가 움직이고 상대 팬덤이 따라오면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는 또 다른 참여를 유도한다.

팬덤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첫 번째 감정은 '참여감'이다. 앨범을 구매하거나 콘서트를 보는 것과 투표는 다르다. 전자는 완성된 콘텐츠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행동에 가깝지만 투표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결과에 개입하는 행동이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모이는 이유다.

한 명이 수백만 표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결국 목표를 달성하려면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실제로 팬 커뮤니티에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투표하자"는 식의 독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결과가 발표된 뒤에는 아티스트의 성취뿐 아니라 "우리가 해냈다"는 팬덤 공동의 성취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많다.

여러 팬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는 20대 초반의 중국인(서울 거주) A 씨는 "시간과 돈을 들여 투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무대에 서서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며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력과 성과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온라인 활동이 오프라인의 결과로 이어질 때 '만족감'이 커진다. 팬앤스타는 투표 성과를 거둔 아티스트에게 서울 지하철 역사와 홍대 일대 등의 전광판 광고 혜택을 제공한다. 유픽 역시 팬들이 참여하는 투표 및 서포트를 통해 국내외 전광판 광고를 진행한다. 이들은 음악 시상싱과 연계해 팬들의 '최애'에 트로피까지 전달한다.

이런 광고의 목적은 일반적인 상업광고와는 결이 다르다. K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팬들이 만든 지하철 광고가 일반 대중에게 아티스트를 홍보하는 효과보다 팬들이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광고 자체가 일종의 팬덤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팬이 돈과 시간을 들여 광고를 만들고, 다시 팬들이 그 광고를 찾아가 인증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온라인 투표가 오프라인 광고가 되고 다시 온라인 콘텐츠가 되는 순환 구조다.

다만 플랫폼의 방향성과 팬들의 만족도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투표는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노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출석해야 하고 광고를 반복해서 시청해야 한다. 자신이 참여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자발적인 놀이를 의무감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그런 의무감은 때로 '현질'(아이템·재화 등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행위)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게 과도하다면 문제겠지만, 다른 '덕질'이라고 돈이 안 드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과 굿즈를 사고 팬미팅이나 콘서트에 가는 건 물리적, 경제적으로 기회비용이 더 높다. 이는 '덕질'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다.

팬들이 시간과 돈을 들이는 만큼 투표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시스템 안정성은 일반적인 앱보다 더욱 민감한 문제다. 플랫폼 운영자들도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왼쪽부터 블립, 아이돌차트, 유픽, 팬앤스타 로고.

팬들이 시간과 돈을 들이는 만큼, 팬 플랫폼들에게 투표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시스템 안정성은 일반적인 앱보다 더욱 민감한 문제다. 팬은 자신의 시간이 한 표로 정확하게 환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플랫폼을 사용한다. 광고를 보고 미션을 수행하거나 돈을 내고 재화를 구매했다면 그 신뢰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이는 플랫폼 운영자들도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아이돌차트 운영자는 "요즘은 팬들끼리 정보 공유가 잘 된다. 또 현명하고 정보력이 뛰어난 리더들이 있어 과거보다 훨씬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팬들을 기만하고 과도한 현질을 유도하는 행위는 금방 팬덤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팬앤스타 운영자는 "플랫폼 론칭 때부터 지금까지 견지해온 운영 철학은 친절함과 공정함"이라며 "팬들의 니즈를 잘 반영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 왔고 팬들이 그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거 같다. 또 투표에 있어서 공정함을 견지하고 나아간 결과 이제 대형 팬덤들과 팬앤스타를 함께 만들어가게 됐다고 생각한다"말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팬들의 피로도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팬이 매일 접속하고 오랫동안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팬에게 지나치게 많은 광고 시청과 반복 미션을 요구한다면 놀이는 노동이 된다. 지속을 위해선 '얼마나 오래 붙잡아둘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즐겁게 다시 찾아오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블립이 팬 활동을 기록하는 팬로그와 미션·퀴즈 등으로 확장하고, 유픽이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팬앤스타가 팬 투표를 시상식과 연결하고, 아이돌차트가 새로운 콘텐츠 제작에 나서는 것 역이 그러한 맥락이다. 경쟁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며 기록하고 추억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팬덤 플랫폼은 투표 앱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투표는 팬을 모으는 강력한 장치지만 팬덤 생활은 투표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팬은 정보를 찾고 사진을 저장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티스트의 기념일을 축하하며 자신이 언제부터 누구를 좋아했는지 기록한다. 여기에 기부와 광고, 공연 및 시상식과 연계까지 더해지고 있다.

블립 운영자는 "최근 팬들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한다. 자신만의 '덕질' 역사를 아카이빙하거나, 2차 창작물을 만들어 공유하고, 생일 이벤트를 직접 주최하는 등 팬 스스로가 하나의 '크리에이터'이자 '기획자'로 진화했다"며 "아티스트의 성장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유픽 운영자는 "팬들이 아티스트의 완성된 모습을 소비하는 데서 나아가 성장 과정 자체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아티스트가 성장하고 데뷔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팬덤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성장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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