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구청 맞아?”…말복 폭염 피한 시민들, 책 읽고 영화 보고 [오승혁의 현장]


14일 말복 서울 낮 33도…실내 쉼터 발길 이어져
성동구청 책마루 시원한 바람 아래 독서
중랑구청선 영화 보며 눈물 훔쳐

14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성동구청을 찾았다. 단순한 무더위쉼터가 아닌 성동 책마루에서 시민들은 더위를 피해 여가를 즐겼다. /서울 성동구청=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성동구청=오승혁 기자] "최고! 진짜 좋아요."

말복인 14일 오후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성동구청 1층 책마루를 찾았다. 절기의 마법처럼 가을이 들어산다는 '입추' 이후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말복인 이날도 서울은 낮 최고기온 33도를 기록했다.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여전히 막강한 여름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역대급 무더위는 시민들의 삶과 공간에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에서 성동구청까지 향하는 길에서는 땀이 흘렀으나 구청 안 풍경은 달랐다. 높은 책장과 테이블, 의자, 조명이 놓인 공간에는 책을 읽는 시민, 노트북을 펼친 직장인, 아이와 함께 앉은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처음 들어선 사람이라면 이곳이 구청 민원실 옆 공간인지, 도서관인지, 카페인지 잠시 헷갈릴 만했다.

예전의 무더위쉼터가 단순히 에어컨이 나오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면, 최근 구청과 공공기관의 쉼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는 동시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성동구청 책마루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구청은 보통 여권 발급이나 각종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들리는 곳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날 성동구청 1층은 폭염 속 도심의 쉼터이자 작은 문화 공간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밖의 열기를 피해 들어온 시민들은 냉방만 누린 것이 아니라, 책과 휴식이 있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동구는 이곳을 폭염특보 기간 24시간 대피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책마루 한 켠에 있는 카페와 계단을 따라 설치된 독서 공간, 라운지 등 덕분에 구청이 아닌 성업 중인 북카페로 여겨지는 공간에서 독서를 즐기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텀블러 세척기와 양산 무료 대여 등이 진행되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의 편안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 시간에 이곳을 종종 찾는다는 성동구의 한 직장인은 "너무 잘 만들었다"며 "진짜 좋다"고 연신 호평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머물렀던 평일 낮 시간에는 이곳에서 업무 차 미팅을 갖는 듯한 회사원들도 보였다.

14일 오승혁의 현장은 무더위 쉼터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서울 중랑구청을 찾았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쉼터를 찾은 시민들이 집중했다. /서울 중랑구청=오승혁 기자

중랑구청의 풍경은 또 달랐다. 이곳에서는 무더위쉼터에서 영화 상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의 상영작은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3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구청의 정책 등을 설명하는 영상이 흘러 나왔을 화면에서 죽음을 앞둔 아내가 남편과 아이에게 인사를 남기는 장면이 이어지자 시민들의 시선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일부는 손부채를 접어둔 채 스크린에 집중했고, 일부는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한 중장년 여성은 영화 속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밖에서는 말복 더위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구청 안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영화를 보며 오후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중랑구는 오는 21일까지 구청사 1층 로비 무더위쉼터에서 평일 오후 2시30분부터 하루 한 편씩 영화를 상영한다. 구는 무더위쉼터 운영시간에 맞춰 구청사 1층 로비 멀티비전 운영시간도 기존 오후 6시30분에서 오후 10시까지 연장한다.

이 장면은 무더위쉼터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단순히 더위를 피해 앉아 있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문화를 접하고 서로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영화관이나 도서관을 따로 찾지 않아도, 가까운 구청에서 더위를 피하며 문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폭염은 노년층과 취약계층에게 특히 위험하다. 하지만 무더위쉼터가 '더위를 피하는 곳'이라는 기능만 앞세울 경우 이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책과 영화, 휴식과 모임이 결합되면 시민들이 더 자연스럽게 공공시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더위를 피해 잠시 앉은 사람이 책장을 둘러보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 시원한 공간에서 머무르는 식이다.

14일 오승혁의 현장은 말복을 맞아 서울 동대문 제기동 약령시장에 갔다. 더위를 이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보양식과 한약재를 찾았다. /서울 제기동=오승혁 기자

말복 풍경을 보기 위해 찾은 동대문구 제기동 일대에서도 폭염은 여전했다. 복날을 맞아 한의원과 한약재, 보양식을 등을 찾는 발길은 이어졌지만, 거리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햇볕이 강한 시간대에는 시민들이 그늘을 찾아 걸었고, 상점 안팎의 냉방 공간은 잠시 숨을 고르는 장소가 됐다. 무더위가 길어질수록 시민들이 가까운 실내 공공공간에 기대는 시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구청의 변화는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행정기관이 단순한 민원 처리 공간에 머물지 않고, 폭염과 같은 재난성 일상에 대응하는 생활 거점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성동구청 책마루는 책과 휴식으로, 중랑구청 영화 상영은 문화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을 불러들였다. 이름은 무더위쉼터지만, 실제 모습은 도심 속 공공 문화공간에 가까웠다.

폭염은 이제 며칠 불편하고 지나가는 날씨가 아니다. 여름마다 반복되는 긴 재난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민들이 집 밖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은 더 많이 필요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편하게 들어갈 수 있으며, 얼마나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주느냐다.

이날 성동구청 책마루에는 책을 읽는 시민들이 있었고, 중랑구청에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시민들이 있었다. 제기동 거리에는 말복 더위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폭염 속 무더위쉼터는 이제 단순한 냉방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쉬고 보고 머무는 여름의 공공 거점으로 바뀌고 있었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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