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점 증여' 막힌다…제약사 오너가 승계 전략 변화 감지


'주가 누르기' 판단 땐 주가 평가액 최소 30% 상향
제도 시행 전 증여 서두르거나 분산 증여·주주환원 등 우회 전략 나올 듯

시민들이 서울 금천구의 한 창고형 약국에서 약을 고르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장기간 주가가 부진한 상장 제약사 오너 일가의 지분 승계 전략에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가 상속·증여를 앞두고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이른바 '주가 누르기'를 막기 위해 상장주식 평가 방식을 대폭 강화하면서다. 주가가 떨어진 시점을 활용해 증여세 부담을 낮추는 기존 방식의 실익이 줄어드는 만큼, 제약업계에서는 승계 시점을 앞당기거나 지분을 여러 차례 나눠 이전하는 등 전략을 다변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일 '2026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장기간 저평가된 상장기업 최대주주 보유주식에 대해 별도의 상속·증여재산 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 제도에서는 상장주식의 상속·증여재산가액을 평가기준일 전후 각 2개월, 총 4개월간 종가 평균으로 산정한다. 주가가 낮은 시점에 증여하면 세법상 평가액도 낮아질 수 있는 구조다.

이번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최근 6년6개월간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이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 하위권(코스피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하면 '주가 누르기' 의심 대상으로 본다. 실제 조세회피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되면 상속·증여재산가액이 현행 평가액 대비 최소 30% 이상 상향 조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는 창업주 중심의 장기 지배구조가 남아있는 기업이 많고 최근 2·3세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지분 승계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세제개편안이 시행되면 단순히 주가가 낮을 때 증여하는 방식보다는 승계 시점과 증여 규모, 세금 납부 재원을 함께 고려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제약업계는 창업주 및 선대 오너의 고령화에 맞춰 주가가 부진한 시기를 활용해 지분을 넘기는 '저점 사전 증여'를 적극 활용해 왔다. 주가가 낮을수록 증여재산 평가액이 줄어들어 증여세 부담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약가 인하 정책과 투자 심리 위축 등으로 제약주가 전반적인 약세를 보인 가운데 일부 제약사 오너 일가는 잇따라 대규모 지분 증여를 단행하며 승계 작업에 속도를 냈다.

일양약품에서는 정도언 전 회장이 지난 7월 장남 정유석 대표에게 170만주를 증여하면서 정 대표가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에서도 강덕영 회장이 장남 강원호 대표에게 지난해 12월 120만주를 증여한 데 이어 오는 11~14일 80만주를 추가로 증여하면서 개인 최대주주가 변경될 예정이다. 명인제약도 이행명 회장이 지난 5월 두 자녀 이선영·이자영 씨에게 각각 63만주, 33만주를 증여했다. 이밖에 동화약품, 삼진제약, 삼일제약, 알리코제약, 환인제약, 경보제약 등도 오너 자녀 쪽으로 지분이 이동했다.

이같은 증여는 그 시점과 주가 때문에 주목받았다. 일양약품은 거래정지 이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한국 유나이티드제약 주가 역시 2023년 3만원대에서 최근 1만원대 후반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증여가 이뤄졌다. 명인약품도 증여가 이뤄진 지난 5월8일 종가는 5만4400원으로, 지난해 10월 상장 당시 공모가 5만8000원을 밑돌았다.

그러나 내년 4월 개정안이 시행되면 단순히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증여 비용을 낮추기는 어려워진다. 정부안대로라면 장기 저PBR 기업이 '주가 누르기'로 확정될 경우 증여 당시 주가와 관계없이 현행 평가액의 1.3배를 최저선으로 적용받고, 과거 최대 6년6개월간의 장기 평균 주가 중 가장 높은 금액으로 과세표준이 매겨진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증여세 부담이 이전보다 최소 30% 이상 대폭 늘어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의 지분 승계 시계와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제도 시행 전 증여를 서두르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A 회계사는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해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기존 평가방식보다 세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미 승계 계획을 세워둔 기업이라면 제도 시행 전에 지분 이전을 마무리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창업주가 고령이고 후계자가 이미 대표이사 등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이런 유인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승계가 당장 급하지 않은 기업들은 한 번에 대규모 지분을 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있다. A 회계사는 "후계자의 장내 매수, 가족 간 분산 증여, 공익재단 출연, 계열사를 통한 우호지분 확보 등 세 부담을 분산하는 다각적인 승계 모델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승계 재원 마련 방식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증여세를 현금으로 납부하기 어려운 오너 일가라면 보유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일부 지분을 매각해 세금을 마련하는 방식을 검토 해야한다. A 회계사는 "주가가 낮은 상태에서 지분을 처분하면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우호 지분이 줄어들 수 있고, 주가가 오르면 증여세 부담이 커진다"며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지분을 이전할지에 대한 계산이 복잡해진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주가 누르기 제재를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A 회계사는 "오너 일가가 상속·증여세를 연부연납(분할납부)하는 기간 동안 과세 부담을 줄이고 주가 누르기 오명을 벗기 위해 자사주 매입·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 주가 부양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단순히 저PBR 기업의 세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주주가 승계를 앞두고 주주환원이나 기업가치 제고를 미루면서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을 줄이는 데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특성상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임상 차질,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주가가 장기간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고의적인 주가 누르기'로 일률 단정할 경우 정상적인 기업 경영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저점 증여를 통한 승계비용 절감 효과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며 "승계를 앞둔 제약사들은 세금 재원 마련 방안을 다각화하는 한편, 주주가치 제고를 통해 기업가치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승계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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