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진주영·이예리 기자] "날씨가 이렇게 더우면 과일이고 채소고 밭에서 다 삶아지지. 사람도 쪄죽는 날씨인데 누가 시장에 오겠어. 품질은 떨어지고 채솟값은 오르고 죽을 맛이야."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전통시장 입구는 오가는 손님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체감온도 35도 안팎을 웃도는 날씨에 상인들은 가게 안에서 연신 부채질을 했다.
과일 가게 상인 이원자(73) 씨는 "가게 건물이 오래돼 에어컨 설치가 힘들어 선풍기로 버티고 있다"며 "하루에 30~40명은 와야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데 폭염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었다. 특히 올해 여름이 더욱 고역"이라고 하소연했다.
수레에 수박을 가득 싣고 옮기던 이기식(60) 씨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수박을 나르고 있다"며 "수레에 수박을 가득 실으면 200㎏이 훌쩍 넘는데 한 손으로 지탱을 못하니 손선풍기를 들 수도 없다"고 했다. 수박을 옮기느라 진땀을 빼던 이 씨의 얼굴과 목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상승도 손님들 발길을 줄게 한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배추와 열무, 고추 등을 판매하던 60대 금모 씨는 "열무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더워서 시장에 손님도 없는데 가격도 올라서 예전만큼 많이 사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님이 진열된 열무를 손에 들고 가격을 묻자 금 씨는 "1개에 2000원인데 3개 사면 5000원에 해주겠다"고 했지만, 손님은 고민하다 하나만 계산하고 자리를 떴다.
선풍기 앞에서 땀을 식히던 70대 김모 씨는 "날씨가 워낙 더우니 과일들도 다 익어버리지 않겠냐"며 "아침 6시30분부터 나와서 저녁 8시까지 장사하는데 단골들 말고는 손님들이 거의 안 온다"고 전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시스템(KAMIS)에 따르면 전날 기준 시금치 100g 평균 소매가격은 1747원으로 지난달 대비 105.5% 상승했다. 열무 1㎏ 평균 소매가격은 3990원으로 지난달 대비 68.8% 올랐다. 청상추(21.1%), 깻잎(11.4%) 등 주요 잎채소 가격도 오름세를 보였다.
같은 시간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카트를 밀며 물건을 고르는 시민은 2명뿐이었다. 상인들은 가게 안에 앉아 선풍기에 의지한 채 휴대전화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이주영(58) 씨는 "폭염에 손님이 절반은 줄었다"며 "오전엔 그나마 손님이 오지만 오후 1시를 넘으면 아무도 안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은 대형마트처럼 냉방시설이 없다 보니 오전에 팔 물건만 내놓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둔 채 장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판대에서 수박을 정리하던 류택선(80) 씨도 "원래 여름철엔 수박을 많이 사는데 올여름엔 유독 손님이 없는 것 같다"며 "팔지 못해 썩어 나가는 과일도 많다"고 토로했다.
손님이 없자 이른 점심을 먹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가판대에 쪽파와 마늘, 상추 등을 판매하던 50대 여성은 "손님이 없어 밥이라도 빨리 먹으려고 한다"며 "날이 더우니 잎도 노랗게 변하고 품질도 떨어지니 손님들도 잘 안 사간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급기야 문을 닫는 상인들도 보였다. 오전 11시께 영등포청과시장 일부 가게들은 철문을 굳게 내린 상태였다. 한 청과물 가게 앞 가판대에는 빨간색 소쿠리 3개만 덩그러니 놓인 채 '여름 휴가 8월4일~6일'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수산물 가게가 늘어선 곳에도 '여름 휴가 안내'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문을 붙여두고 문을 닫은 가게가 줄을 이었다. 가게 네 곳은 불이 꺼진 채 가판을 파란색 천으로 덮어둔 상태였다.
문을 닫은 가게들 사이에서 홀로 영업 중이던 수산물 가게 상인 정영희(67) 씨는 "휴가가 끝나서 나와야 하는데 너무 더워서 나오지 않는 것"이라며 "얼음값과 버리는 생선값을 생각하면 관리비 손해를 보더라도 문을 닫는 게 낫다고 판단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씨는 "1시간만 지나도 생선 밑에 깔아둔 얼음이 다 녹아 한 달이면 얼음값만 100만원이 나온다"며 "더운데 땀 줄줄 흘리며 장사했지만 어제도 10만원도 못 팔고 들어갔다.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천미정(49) 씨도 "안에 들어왔을 때 시원해야 손님도 올 텐데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장에 누가 장을 보러 오겠냐"며 "이 날씨에 장화를 신고 앞치마까지 입고 장사하다 보니 폭염 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시민 채선아(70) 씨는 "두 달에 한 번씩 시장에 오는데 오늘은 사람이 없는 편"이라며 "시장에 냉방시설이 없어서 그런지 오늘은 물건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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