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시도민구단이 과연 수십, 수백억 원의 지자체 예산과 시민 혈세를 투입할 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축구계가 가장 자주 내세워온 답은 언제나 ‘공공재’였다.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권, 스포츠 복지, 지역 브랜드 가치 창출이라는 공익적 기능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공공재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따라오는 것은 혜택만이 아니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조직에는 그에 걸맞은 투명성, 책임성, 시민에 대한 책무가 함께 요구된다. 공공성을 주장하면서 책임과 윤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공공재가 아니라 공공성을 방패로 삼은 특권일 뿐이다.
문제는 이 '공공재' 논리가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기존 체계를 옹호하는 논리로만 소비될 때다. 지난달 말 축구협 청문회에서 "시도민구단은 필수적 공공재"라며 세금 투입의 당위성을 강조했던 김병지 강원FC 대표 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행보가 바로 그 지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의 언행을 따라가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공공재라는 가치는 과연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었는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꺼내 드는 명분이었는가. 공적 지원을 요구할 때는 공공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공적 책임과 윤리가 요구되는 순간 사적 판단과 이해관계를 앞세운다면 그 명분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 공적 기회의 사적 유용, 무너진 이해충돌 방지 윤리
공공재를 운영하는 리더에게 가장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은 바로 '공사(公私)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병지 대표의 공적 책임과 윤리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여러 논란을 낳았다. 강원FC가 양민혁 선수의 토트넘 이적을 성사시키며 확보한 지난해 5월 유소년 런던 연수 기회에 김 대표의 아들이 동행한 사건은 공적 기회 관리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묻게 하는 대표적 사례다.
구단의 성과이자 공적 자원으로 마련된 기회라면 단 한 자리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당시 명확한 공개 선발 과정 없이 대표이사 자녀가 해당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이해충돌 방지 원칙 측면에서 비판을 불러왔다. "아들도 유망주이기에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구단 측 해명 역시 공정한 절차를 중시하는 팬과 시민들의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
공적 성과를 통해 만들어진 기회가 개인적 관계로 연결되는 순간, 공공성을 강조해 온 논리 역시 설득력을 잃게 된다.
◆ 도민 화합 대신 편가르기, 감정적 행정이 초래한 공공성 파탄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민구단 대표가 지역 간 균형과 화합이라는 설립 취지와 배치되는 운영 논란을 낳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ACLE 경기 개최를 둘러싼 예산 분담 문제로 춘천시와 갈등을 빚자, 김병지 강원FC 대표가 춘천시 행정을 비판하며 "내년도 K리그 홈경기에서 춘천 배제를 검토하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키웠다. 이는 영서와 영동의 균형 발전 및 도민 화합이라는 도민구단 설립 취지를 저버리고, 가뜩이나 홈경기 배정 문제로 대립하던 춘천과 강릉 간 경쟁과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해 5월 3일 K리그 홈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에 '김병지 대표 사퇴 촉구' 현수막이 내걸렸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제공해 온 춘천시장과 관계자들의 경기장 출입 비표를 회수해 퇴장시킨 것은 공공기관 책임자로서 자질을 의심케 했다. 이러한 갈등은 2026시즌 홈경기 개최 방식에서도 이어졌다. 춘천시와 강릉시를 대상으로 한 홈경기 개최지 공모 과정에서 사실상 가격 경쟁 구도가 형성됐고, 결국 춘천시가 참여를 포기하면서 올 시즌 춘천시민과 영서 지역 팬들은 홈경기를 관람할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됐다. 도민 화합이라는 구단 설립의 근본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고, ‘최고가 입찰식’ 상업 논리로 치달은 결과다.
예산 지원이 필요할 때는 도민 전체를 내세우면서도, 갈등과 비판 상황에서 특정 지역과 시민이 불이익을 받는 결과를 초래한 운영은 공공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도민구단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지자체 간 경쟁이 아니라 지역 균형과 도민 화합이다. 그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운영은 도민구단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 편법 수령을 "봉사"라 부르는 인식, 금액 과소평가 속 드러난 공적 윤리의식의 한계
김 대표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부족은 공적 윤리의식에서부터 드러난다. 대한축구협회 정관상 비상임 임원은 원칙적으로 '무보수'직이다. 그럼에도 협회는 지난 2021년부터 2년간 '자문료'라는 명목으로 부회장단에게 매달 600만 원의 고정급을 지급해 온 사실이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정상적인 자문료라기보다 임원진을 관리하기 위한 '정체불명의 관리비용'이자 편법적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황당한 것은 김 대표의 인식이다. 그는 이렇게 지급된 돈을 자신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료와 비교하며 "축구를 위한 봉사"라고 표현했다. 편법 지급 논란이 제기된 공적자금을 '예능 출연료보다 적은 돈' 정도로 치부하는 인식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공적 책임에 대한 감수성을 의심하게 한다. 공적 자금은 액수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절차와 원칙에 따라 집행돼야 할 예산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구단의 대표가 구단의 공공성과 체질 개선보다 개인 활동에 무게를 두면서, 논란이 된 보상과 역할을 '봉사'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태도는 공공기관 책임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의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 특권의식과 엘리트주의, 공적 가치와 거리가 먼 리더십
김 대표의 그릇된 인식은 축구계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비축구인 출신 해설위원들을 향해 "그분들이 30m 인사이드 패스를 할 수 있느냐" 며 ‘축구전문가도 아니면서 아는 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폄훼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축구가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팬과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산업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낸다. "비축구인과 팬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축구의 본질"이라 강조하는 이정효 감독의 선진적 마인드와 대비되며 씁쓸한 잔상을 남긴다.
체육계에 이처럼 깊게 뿌리내린 그릇된 선민의식과 엘리트주의는 정직한 노동과 공적 책임의 가치를 무너뜨려 왔다. 김 대표는 청문회에서 시도민구단의 자생력 문제를 지적받은 데 대한 반박으로 강원FC의 홍보효과를 언급하며 공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그의 이런 행보는 '공적 지원과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는 공공성을 앞세우면서도, 책임과 윤리가 요구되는 순간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체육계의 오래된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비칠 수 있다.
제 식구 감싸기와 편법 수당 지급에 급급한 축구협회, 검증 없이 혈세를 맡기고 방임한 지자체, 그리고 스타성에 기대어 검증을 외면해 온 방송계가 만들어낸 이 총체적 도덕적 해이의 끝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오롯이 축구 팬들과 도민들이다.
부당성 논란이 제기된 사안조차 가볍게 받아들이고, 공적 책임보다 개인적 판단과 감정을 앞세우는 리더십에 공공재 운영을 맡기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공공재를 운영하는 자리에는 공적 책임과 이해충돌 윤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인물이 필요하다. 김병지 대표의 지금까지의 언행은 과연 그가 공공재를 맡은 책임자로서 적합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