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제약바이오 업계에 대한 공시 체계가 강화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부 계약 내용 공개가 글로벌 제약사와의 비밀유지 조항과 충돌해 해외 기술수출 협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방안'을 지난 30일 발표했다. 이번 개선안은 기업공개(IPO) 과정의 증권신고서부터 상장 이후 정기·수시공시, 언론보도 가이드라인까지 업계의 정보 공개 체계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제약바이오 산업 특성상 임상 성공 여부와 기술이전(L/O) 성과 등 미래 가치에 대한 정보가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투자자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정보 비대칭 문제가 발생해왔다.
업계는 공시 투명성 강화라는 정책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기업의 깜깜이 공시와 과장 홍보로 업계 전체가 불신을 받아왔다"며 "공시 기준이 명확해지면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기술이전 계약 공시의 세분화다. 기존에는 조건부 금액을 포함한 계약 총액만 강조돼 임상에 실패하면 받을 수 없는 금액까지 확정 수익처럼 왜곡되는 문제가 적지 않았다.
앞으로는 △반환 의무가 없는 확정 계약금(Upfront Fee)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매출 연동 로열티를 명확히 구분해 기재해야 한다. 계약 상대방을 비공개하더라도 해당 기업의 규모와 사업 역량 등 최소한의 정보를 함께 제공하도록 했다.
IPO 증권신고서 제출 시에도 기업가치 산정 근거를 구체화해야 한다. 예상 시장 규모는 물론, 객관적인 논문과 통계에 기반한 임상 성공 확률, 품목허가 위험, 개발 소요 비용 등을 표준화된 기준에 맞춰 명시해야 한다.
정기공시에는 '연구개발 이력관리 총괄표'가 신설돼 파이프라인의 과거와 현재 상태, 개발 지연 원인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과장성 언론 활동에 대한 규제도 엄격해진다. 주요 정보는 반드시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해야 하며, '꿈의 신약', '사실상 성공' 등 객관적 임상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은 표현은 제한된다.
금융당국이 공시 개편에 나선 배경에는 올해 상반기 불거진 삼천당제약의 공시 신뢰성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삼천당제약은 대규모 계약 기대감과 장래 영업실적 전망을 공시가 아닌 보도자료 형태로 발표하며 주가가 급등했으나, 세부 조건 미공개로 사업 실체 논란이 일었다. 결국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며 주가가 급락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계약 규모만 앞세우던 기존 관행이 사라지고, 기업 간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와 계약 구조가 명확한 기업은 제값을 받는 반면, 성과를 부풀려 주가를 부양하던 기업은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글로벌 기술수출 현장과의 격차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들은 타사와의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세부 계약 조건 공개를 극도로 꺼린다"며 "국내 공시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지면 해외 파트너사와의 계약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투자와 상장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규제 강화만 이뤄지면 초기 바이오 벤처들의 생존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투명성 확보와 함께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