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유해란(25)의 메이저 3연승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해란은 3일 새벽(한국시간) 잉글랜드 랭카셔의 로열 리덤 앤 세인트 앤스에서 끝난 올시즌 마지막 메이저 AIG위민스오픈(총상금 1천만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3오버파로 흔들리며 역전 우승에 실패했다. 합계 1언더파 283타. 3라운드까지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2위였지만 링크스 코스의 딥 포트 벙커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고 마지막 날 끝내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끝내 이루지 못한 3연승...그래도 폭염보다 더 뜨거웠던 유해란의 여름
반면 3, 4라운드 내내 유해란과 함께 경기를 치렀던 일본의 구와키 시호가 정상에 올랐다. LPGA 비멤버인 구와키는 이날 1타를 줄이며 합계 5언더파를 기록, 독일의 에스더 헨젤라이트와 동타를 이룬 뒤 가진 연장 두번째 홀에서 파를 잡아 보기에 그친 헨젤라이트를 제쳤다. 일본은 지난해 야마시타 미유에 이어 2년 연속 AIG 위민스 오픈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이로써 유해란이 노렸던 2013년 박인비 이후 첫 한 시즌 메이저 3승도, 메이저 3연승도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트로피를 놓쳤다고 해서 '아쉬운 실패'라고만 평가하는 것은 유해란의 2026시즌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오히려 이번 시즌 마지막 메이저는 유해란이 이제 LPGA를 대표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 준 대회라 할 수 있다.
#실패로 폄하할 수 없는 '경이로운 꾸준함'
유해란의 가장 큰 장점은 화려한 몰아치기보다 놀라운 꾸준함이다.
골프는 어느 순간의 폭발력으로만 지배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그간 유해란이 보여준 진짜 무기는 바로 ‘압도적 안정감’이다. 2022년 Q시리즈를 수석으로 통과한 뒤 투어 데뷔 첫해인 2023년 월마트 NW 아칸소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신인왕에 올랐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우승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상금 순위 역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2024년에는 26개 대회 가운데 23차례 컷을 통과했고, 그중 절반인 13개 대회를 톱10으로 마무리하며 투어 최다 톱10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메이저 2연승(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을 포함해 이번 대회까지 톱10을 9차례 기록하며 넬리 코다(10회)에 이어 투어 최다 톱10 2위에 올라 있다.
올시즌 메이저 대회에서도 유해란은 정상급 승부사다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는 첫날 공동 70위까지 밀렸지만 둘째 날 8언더파를 몰아치며 공동 2위로 뛰어올랐고, 3라운드에서 선두를 탈환한 뒤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초반 부진을 뒤집는 놀라운 폭발력이 돋보였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는 메이저 역사상 최저타 타이기록인 60타를 작성하며 단독 선두에 오른 뒤, 최종 라운드 내내 경기 내용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가운데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연장전에서 승리했다. 위기를 견디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우승이었다.
그리고 AIG 위민스 오픈 역시 또 다른 시험대였다. 3라운드까지 공동 2위에 랭크돼 역전 우승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링크스 코스 특유의 깊은 항아리 벙커와 까다로운 그린은 끝내 유해란의 편이 아니었다. 최종 라운드 3오버파는 분명 아쉬웠다. 그러나 마지막 메이저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우승 경쟁을 이어갔다.
#어떤 코스와 상황에서도 최정상급 공인
이번 대회 결과로 롤렉스 아니카 메이저 어워드도 마지막 날 3언더파를 몰아치며 공동 4위에 오른 넬리 코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코다의 독주로 보였던 메이저 경쟁은 유해란의 등장으로 결국 마지막 대회,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서야 주인공이 가려질 만큼 치열하게 이어졌다.
비록 아니카 메이저 어워드는 놓쳤지만, 유해란은 상금, CME 글로브 포인트, 평균타수, 올해의 선수상 등 시즌 주요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도 코다의의 치열한 경쟁을 이어갔다. 어느 부문도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사정권에 진입하며 시즌 후반 경쟁에 긴장감을 더했다.
골프는 한번의 우승보다 한 시즌을 얼마나 꾸준하게 보냈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유해란은 비록 메이저 3연승에는 실패했지만, KPMG에서는 대역전극을, 에비앙에서는 폭발력과 함께 위기관리 능력을, 그리고 AIG에서는 마지막 메이저까지 우승 경쟁을 이어가는 꾸준함을 보여줬다. 세 번의 메이저는 서로 다른 이야기였지만, 모두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유해란은 이제 어떤 코스, 어떤 상황에서도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선수라는 사실이다. 2026년 LPGA 투어는 코다가 시즌 내내 중심에 있었던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해란이 세계 여자골프 최정상급 선수로 완전히 도약한 시즌이기도 하다.
메이저 3연승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러나 유해란의 도전은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시즌은 앞으로 펼쳐질 더 큰 역사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