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성호 기자] 국내 배터리 3사가 기나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을 뚫고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이 반등했고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로 인한 전력 수요가 늘며 에너지저장장치(ESS) 주목도가 높아진 것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시장 반등은 물론, 전력 수요 급증으로 인한 실적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에 ESS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등 추가 생산능력(CAPA) 증설도 적극 검토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래 먹거리 선점에도 속도를 낸다. 고품질의 배터리를 연구 개발하고 휴머노이드 로봇과 연계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속도를 낼 방침이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은 지난 30일 상반기 실적을 일제히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상반기 매출 14조1152억원, 영업손실 94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5%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적자로 전환했다.
다만 이번 적자 전환은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활용하는 전기차 고객사의 보상금 이연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반등은 확실하다는 분석이다.
삼성SDI는 상반기 누적 매출액 7조3452억원, 영업이익 482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6% 증가했고 지난해 8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손익은 완벽히 흑자전환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상반기 누계 매출액 5조3271억원, 영업이익 472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 실적과 비교하면 매출은 43.5% 뛰었고 영업손실은 흑자 전환했다.
배터리 3사의 실적이 일제히 개선된 것은 유럽 전기차 시장과 미국 ESS 시장의 성장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유럽 전기차 시장 판매는 전년 대비 30% 가량 반등했다. 이에 폴란드, 헝가리 등에 공장을 보유한 배터리 3사의 공장 가동률도 상승했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면서 전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주요 기업이 ESS를 대체 전력 공급망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데다가, 보조금 혜택을 받는 비중국산(Non PFE) ESS를 선호하면서 국내 배터리 3사가 수혜를 입었다.
◆"중국 빈틈 노려라"…미래 먹거리 선점 속도전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은 압도적인 자국 전기차 보급률을 바탕으로 중국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CATL이 40.2%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며, BYD가 14.4%로 뒤를 이었다. 점유율 3위이자 국내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8.7%)과도 격차는 분명하다.
이에 배터리 3사는 2분기 컨퍼런스콜을 통해 하반기 전망 및 중국 기업과 경쟁에 대비한 미래 먹거리 선점 계획을 공유했다.
3사는 유럽의 전기차 캐즘이 완전히 벗어났다고 전망한다. 유럽연합(EU)은 친환경차 보급을 늘리고 중국산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 및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유럽 전기차 시장은 연간 15% 이상의 성장이 예고됐다.
배터리 3사는 현지공장을 보유한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점차 넓힌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수익 제품인 원통형 배터리 공급을 확대해 믹스 개선에 나선다. 또한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중저가 솔루션 수주 확대를 노린다.
삼성SDI 또한 유럽에서 볼륨 모델 판매 확대를 추진하며, 현지 공장을 활용한 각형 기반 프로젝트 수주를 노린다. SK온은 기존 고객사인 폭스바겐그룹의 전기차 판매량 급증으로 수혜가 전망된다.
전기차 수요가 부진한 미국에서는 ESS로 수요를 대체한다. 지난해까지 전체 매출에 10% 수준에 머물렀던 ESS 사업 비중은 올해 상반기 기준 20% 중후반까지 치솟은 상태다.
특히 북미 시장은 미국의 중국 규제로 배터리 3사의 기회 창출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주요 기업들이 고출력, 고품질의 각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통합시스템(SI)을 제공하는 기업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배터리 3사는 현지에 보유한 주요 배터리 공장을 ESS 생산 라인으로 전환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르면 하반기부터 2배 이상 출하량이 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삼성SDI는 오는 10월께 ESS용 배터리 셀 양산을 본격화한다. SK온은 포드와의 합작법인(JV)을 종료하고 테네시 공장을 단독 출범하며 ESS 사업 수주 확대 등 발판을 마련했다.
이 밖에도 3사는 신규 먹거리 창출에 속도를 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인기가 늘고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서 수주 기회를 엿보며 차세대 먹거리인 소듐 배터리 생산을 준비한다.
삼성SDI는 오는 2027년 하반기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재확인했다. 우선 휴머노이드 로봇에 배터리를 납품하며 상용화에 나서며 향후 셀 제어 등 기술력을 확보하면 전기차 시장까지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급증하는 미국 ESS 수요에 대응해 CAPA를 증설할 수 있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합작법인을 청산한 SK온은 미국 공장의 전기차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속도를 낼 계획이다.
안회수 DB투자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은 선제적인 미국 ESS CAPA 확대 등으로 하반기 ESS 수주 모멘텀이 집중될 것"이라며 "삼성SDI는 북미 ESS 생산 확대로 흑자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