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이 금리 인상을 주장하면서 매파적 신호를 보냈다. 미국의 정책금리가 연 3.50~3.75%로 유지되면서 한국과의 금리 차도 0.75~1.00%포인트로 유지됐으나 연준의 추가 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의 8월 연속 인상론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은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연준이 9월 인상에 나설 경우 한미 금리 차가 다시 확대돼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현지시간) 미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 범위를 3.50~3.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이후 같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 다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번 결정은 동결 9명, 인상 3명으로 이뤄졌다.
매파적 신호는 표결 결과에서 먼저 나타났다.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야 한다며 동결 결정에 반대했다. 지난 6월 FOMC에서는 12명의 위원 모두가 동결에 찬성했지만 한 달 만에 인상 소수의견이 3명으로 늘었다.
FOMC의 동결 결정에 3명의 위원이 같은 방향의 인상 소수의견을 낸 것은 2016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연준도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에스터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와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 등 3명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취임 후 두 번째 FOMC를 주재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초반부터 3명의 반대표에 직면한 점도 주목된다. 로이터는 새 연준 의장이 취임 두 번째 회의에서 이 정도 규모의 반대에 직면한 것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워시 의장이 내부의 다양한 의견 개진을 장려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연준 내 물가 경계감이 상당히 커졌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시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도 물가 안정에 무게가 실렸다. 워시 의장은 고용시장이 안정된 상황에서 기조적 물가상승률이 높아진다면 중앙은행은 긴축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가 전망 기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금리가 대응 수단이 될 수 있으며, 필요하고 적절할 때 정책 대응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나타냈다. 다만 구체적인 9월 정책 방향은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은 이번 동결보다 9월 회의에서 금리가 오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 인공지능 관련 기업투자 확대 등이 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앞으로 발표될 고용·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강할 경우 연준의 추가 인상론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연준 결정 직후 시장이 반영한 9월 인상 확률은 약 57%로 낮아져 연준의 향후 행보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연준의 매파적 신호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2.75%로 미국보다 0.75~1.00%포인트 낮다. 한은이 8월 금리를 동결한 상태에서 연준이 9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 한미 금리 차는 1.00~1.25%포인트로 확대된다. 반면 한은이 8월 기준금리를 연 3.00%로 올리면 연준이 9월 인상하더라도 금리 차는 현재 수준인 0.75~1.00%포인트로 유지된다. 한은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인상했다.
한미 금리 차가 환율과 외국인 자금 흐름을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성장률 차이와 위험선호, 경상수지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다만 금리 격차 확대는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불안한 상황에서 원화 가치까지 하락하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충격도 커질 수 있다.
한은이 이미 환율 변동성과 목표 수준을 웃도는 물가,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등을 추가 인상의 주요 판단 요인으로 제시한 만큼 연준의 9월 인상 가능성은 8월 선제 인상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향후 금리 인상 시기와 속도를 물가와 성장, 금융안정 상황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미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은 대외 변수의 상방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다.
국내 경기 여건도 추가 긴축의 부담을 낮추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 등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제시했다. 한은도 올해 성장률이 지난 5월 전망치인 2.6%를 상당 폭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분기보다 0.6%,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증가했다. 실질 국내총소득도 전분기보다 3.6%, 전년 동기보다 15.6% 늘어 성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 수출과 교역조건 개선이 성장뿐 아니라 국민경제의 실질 구매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심리도 개선세를 이어갔다. 한은이 발표한 7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는 106.8로 전월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4월 99.2까지 떨어졌던 지수는 5월 106.1, 6월 106.6에 이어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주택가격전망지수도 127로 전월보다 7포인트 오르며 4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심리 회복은 경기 측면에서 금리 인상 부담을 낮추는 반면, 집값 상승 기대 확대는 금융안정 측면에서 추가 긴축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기업심리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개선됐다. 한은이 30일 발표한 7월 기업경기조사에서 제조업 기업심리지수는 103.2로 전월보다 2.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비제조업 기업심리지수는 95.2로 0.2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심리를 합성한 경제심리지수는 97.9로 한 달 전보다 1.1포인트 올랐다. 경기 개선이 반도체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내수 업종으로 충분히 확산하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전반적인 경제심리가 개선 방향을 보인 점은 한은의 추가 인상 여력을 높이는 요소로 평가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전날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신 총재는 "앞으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며 "추가 인상 시기와 속도는 물가 상승 압력의 정도와 경기 개선 흐름, 금융안정 상황 등을 점검하며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손승현 퓨처워커 리서치 대표는 "동결 결정에 맞서 3명의 위원이 금리 인상을 주장한 것은 2016년 9월 이후 약 10년 만"이라며 "워시 의장이 임기 초반부터 정치적 압력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기자회견에서도 물가 안정에 단호한 태도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금리차가 상당 폭 벌어진 상황에서 연준의 매파적 기조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도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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