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오승혁 기자] 불이 꺼진 대형마트 바닥에는 진열대에서 떨어진 상품과 상자가 나뒹굴었다. 놀란 이용객들은 어두워진 매장 안에서 출구를 찾았고, 직원들은 황급히 주변을 정리했다.
건물 밖 상황은 더 긴박했다. 이온몰 구마모토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솟구쳤다. 건물을 빠져나온 시민과 직원들이 연기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구마모토성 주변을 뒤덮은 먼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28일 오후 일본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규모 7.1의 지진이 남긴 장면들이다.
SNS에 공개된 영상에는 강진 직후 구마모토 곳곳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코스트코 내부에서는 진열 상품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한 주택에서는 가구와 주방용품이 넘어져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구마모토성에서는 석축 일부가 무너지며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29일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은 전날 오후 4시27분께 구마모토현 구마모토 지방에서 발생했다. 진원 깊이는 약 10㎞, 지진 규모는 7.1로 추정됐다.
구마모토현 우키시와 히카와정에서는 일본의 지진 관측 단계 중 가장 높은 진도 7이 관측됐다. 구마모토시 미나미구와 야쓰시로시, 우토시, 미사토정, 마시키정 등에서는 진도 6강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규모는 지진 자체가 방출한 에너지를 나타내지만 진도는 지역별로 사람이 느끼는 흔들림과 피해 정도를 보여준다. 최고 단계인 진도 7에서는 서 있는 것조차 어렵다. 고정되지 않은 가구가 튀어나가고 건물 외벽이나 유리창이 떨어질 수 있다. 내진 성능이 낮은 목조 건물은 기울거나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 진도 7이 관측된 것은 2024년 1월 노토반도 지진 이후 처음이다.
구마모토현 가시마정에 있는 이온몰 구마모토에서는 지진 발생 약 1시간여 뒤 폭발음과 함께 흰 연기가 발생했다.
현장 영상에는 건물 일부를 뒤덮은 연기와 직원들이 물건을 옮기며 대피하는 모습이 담겼다. 지진 직후 한차례 밖으로 대피했던 이용객 가운데 일부는 물건을 찾으러 건물로 돌아가려 했지만 직원들이 진입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방 당국에는 오후 6시께 "폭발음이 들렸다", "흰 연기가 올라온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건물 일부가 크게 파손되면서 수색과 구조 작업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2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정확히 무엇이 폭발했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지진으로 인한 가스 누출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당국의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구마모토 지역의 한 코스트코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강진의 위력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높은 선반에 쌓여 있던 상품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매장 일부 조명은 꺼졌다. 상품과 포장재가 통로를 막은 가운데 이용객과 직원들은 주변을 살피며 이동했다. 추가 낙하 가능성이 있는 높은 진열대 아래를 빠르게 벗어나는 모습도 포착됐다.
주거 공간도 흔들림을 피하지 못했다. SNS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냉장고 주변의 가구와 주방용품이 넘어지고 싱크대 위 식기와 생활용품이 뒤엉킨 모습이 확인됐다.
구마모토성과 주변 문화재도 피해를 입었다. 성을 둘러싼 석축이 무너지면서 성 아래에서부터 흙먼지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구마모토성 측은 시설과 관람 구역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임시 휴원에 들어갔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당일과 이튿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강진 가능성을 경고했다.
기상청은 강한 흔들림이 발생한 지역에서 앞으로 일주일가량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향후 2~3일 동안 최대 진도 7 수준의 흔들림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진 발생 당일 오후 8시까지 진도 1 이상의 지진이 60여 차례 관측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진으로 건물과 지반이 약해진 상황에서 추가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붕괴나 산사태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상청이 연쇄 강진 가능성을 강조한 배경에는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의 경험이 있다. 당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한 지 약 28시간 뒤 규모 7.3의 더 강한 지진이 이어졌다. 두 차례 모두 최고 진도 7을 기록했다.
이번 진원은 히나구 단층대와 후타가와 단층대 부근으로 추정된다. 2016년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한 지점과는 약 20㎞ 떨어져 있다. 다만 일본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어느 단층의 움직임으로 발생했는지, 2016년 지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29일 이번 강진으로 1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구마모토현과 인접한 가고시마현 등에서는 약 30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통신 장애와 도로 파손 등으로 피해 집계가 늦어지고 있다. 무너진 건물과 시설에 대한 구조·수색도 계속되고 있어 인명 피해 규모는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강진이 멈춘 뒤에도 구마모토의 일상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매장 바닥에 쏟아진 상품과 연기에 휩싸인 쇼핑몰, 무너져 내린 구마모토성 석축은 불과 수십 초간 이어진 흔들림의 위력을 보여줬다.
일본 기상청은 손상된 건물과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담장, 산사태 위험 지역에는 접근하지 말고 추가 지진이 발생할 경우 즉시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