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전 태평교 아래서 전국을 품다…흙먼지가 키워낸 '야구 명문'


[지역 야구의 뿌리를 찾아서①]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의 특별한 성장기…전국대회 우승 8회·프로야구 선수 5명 배출

지난 2023년 제6회 화성시장기 전국리틀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대전시 중구 태평교 아래 작은 야구장에서는 매일 어린 선수들의 힘찬 함성이 울려 퍼진다. 화려한 전용구장도, 최고 수준의 훈련시설도 없지만 이곳에서 꿈을 키운 선수들은 전국 정상에 올랐고, 일부는 프로야구 선수라는 새로운 꿈을 이뤘다.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은 단순한 야구단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력은 환경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지역 야구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팀이다. <더팩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태평교 야구장에서 시작된 작은 기적과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편에서는 전국 최강으로 성장한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두 번째 편에서는 이곳을 거쳐 프로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을 소개하고 이민호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감독의 야구 철학에 대해 들어본다. '태평교의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집자주]

지난 23일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이 타격훈련을 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전국대회 우승 8회. 프로야구 선수 배출 5명. 전국 어느 리틀야구단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적표다.

그런데 이 기록을 만들어낸 야구장은 의외의 곳에 있다.

대전시 중구 태평동 태평교 아래 유등천변에 자리한 작은 야구장. 비가 오면 흙바닥은 금세 진흙탕으로 변하고, 낮은 펜스 너머로 타구가 굴러가는 이곳에서 전국 리틀야구를 대표하는 강팀,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이 성장했다.

지난 23일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이 수비 훈련을 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더팩트> 취재진이 지난 23일 대전시 중구 중촌동에 마련된 중촌리틀야구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야구단을 찾았다.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나 더!"

감독의 외침이 들리자 선수들은 다시 배트를 잡고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아이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보다 야구를 향한 즐거움이 먼저 묻어났다.

배트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고 한 선수가 헬멧을 벗자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훈련의 여운이 많이 남았는지 선수들은 이날 훈련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며 아쉬운 점과 좋았던 점을 서로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소속 선수가 투구 훈련을 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사실 중촌리틀야구장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태평교 아래 작은 야구장에서 훈련했고 지금도 전용 리틀야구장보다 흙먼지 가득한 작은 야구장에서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한다.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태평교 야구장은 중구 리틀야구단의 시작이자 성장의 무대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태평교 아래 위치한 야구장은 장마철이면 반복적으로 침수됐다. 흙이 떠내려가고 시설은 망가졌다. 이민호 감독과 학부모들은 삽을 들고 직접 복구 작업에 나섰고, 어렵게 훈련을 재개하면 다음 해 또다시 물이 들이쳤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야구공과 배트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 야구인들은 이들을 두고 '태평교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대전시 중구 태평동에 위치한 태평교 야구장의 본래의 모습(왼쪽)과 장마로 인한 하천 범람으로 침수가 된 모습(오른쪽).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2014년 창단한 중구 리틀야구단은 지역 야구 꿈나무들의 보금자리로 한 걸음씩 성장해 왔다.

창단 초기만 해도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팀은 아니었다. 그러나 꾸준히 실력을 쌓으며 전국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결실은 2018년 계룡기 전국리틀야구대회 우승이었고 이듬해인 2019년 계룡기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강팀으로 이름을 알렸고, 2021년 MLB CUP 전국리틀야구대회 정상에 오르며 전국 정상급 팀으로 도약했다.

2025년 제6회 MLB CUP 전국리틀야구대회(U-12)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전 중구리틀야구단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상승세는 계속됐다. 2022년 청주직지배 전국리틀야구대회 우승에 이어 2023년에는 화성시장기와 서귀포칠십리 전국리틀야구대회, 이승엽배 전국리틀야구대회를 잇달아 제패했다. 2025년에는 제6회 MLB CUP 전국리틀야구대회(U-12) 우승컵까지 들어 올리며 전국대회 통산 8번째 정상에 섰다.

특히 태평교 야구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던 이민호 감독은 2019년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을 우승으로 이끌며 월드시리즈 진출이란 성과를 일궈냈다.

충청권 지도자가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 무대를 밟은 첫 사례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유소년 야구를 경험한 그는 그 노하우를 다시 태평교 야구장으로 가져왔다. 이후 중구 리틀야구단은 전국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성장하며 '태평교의 기적'을 이어갔다.

지난 2019년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민호 감독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전 우승을 차지한 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사진은 이민호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성과는 중구 리틀야구단을 전국 리틀야구계에서 주목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이곳을 거쳐 간 선수들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도 이곳을 거쳐 간 선수들이 한밭중과 충남중 등으로 진학하며 대전 야구의 뿌리를 튼튼히 해주고 있다. 일부 선수들은 프로무대에 입성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태평교 유등천변에서 시작된 꿈이 더 큰 무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훈련이 있는 날이면 선수들은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와 몸을 풀고, 연습이 끝난 뒤에는 장비를 함께 챙기며 다음 훈련을 기약한다. 평일 저녁과 주말마다 울려 퍼지는 배트 소리와 선수들의 함성은 태평교 아래 야구장의 일상이 됐다.

대전시 중구 태평동에 위치한 태평교 야구장이 하천 범람으로 침수가 된 이후 물이 빠진 뒤 모습. 기존 시설들이 모두 파괴되고 물이 고이는 등 상당히 처참한 모습이다.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은 이런 환경에서 묵묵히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전국 우승 트로피는 진열장에 놓여 있지만, 선수들의 시선은 늘 다음 경기를 향한다.

태평교 유등천변 작은 야구장은 여전히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라운드 위에서 흘린 땀방울은 전국 무대에서 빛나는 성과로 이어졌고, 지금도 또 다른 꿈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해마다 물에 잠기던 태평교 야구장.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동네 운동장이지만 사실 이곳은 전국 우승 8회와 프로야구 선수 5명을 키워낸 요람이다.

오늘도 어린 선수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던지고, 잡고, 때려낸다.

그렇게 '태평교의 기적'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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