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은, 3,737일의 기다림...LPGA 우승으로 보상받았다 [박호윤의 IN&OUT]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우승보다 값진 15년, 한번도 투어 떠난 적 없어
한국 6승 견인, 미국과 공동 1위

한국의 신지은이 26일 LPGA투어 ISPS 한다 위민스스코티시오픈 우승컵을 들고 있다./노스에어셔(스코틀랜드)=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골프는 흔히 우승 횟수와 메이저 타이틀, 세계랭킹으로 선수를 평가한다. 그러나 어떤 선수들은 그런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오랜 세월 가장 치열한 무대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선수들이다. 2026년 LPGA 투어는 그런 선수들에게 특별한 시즌으로 기록될 것 같다.

지난 3월 이미향이 블루베이 LPGA에서 8년 8개월 만에 정상에 오르며 긴 무관의 터널을 끝냈고, 이번에는 신지은(34)이 LPGA투어 ISPS 한다 위민스스코티시오픈 우승으로 또 하나의 긴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6년 발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이후 3,737일, 10년 2개월 24일만에 거둔 LPGA 통산 두 번째 우승이다.

#신지은, 10년2개월24일만에 투어 2승째

신지은은 26일 밤(한국시간) 스코틀랜드 노스에어셔의 던도널드링크스(파72)에서 끝난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3타를 잃었지만 합계 9언더파 279타를 기록, 이날만 4타를 줄이며 맹렬히 추격한 김아림을 2타차로 제치고 감격의 정상에 올랐다. 특히 첫날부터 선두를 한차례도 빼앗기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또한 신지은의 우승으로 한국은 올 시즌 6승째를 합작하며 미국과 함께 국가별 최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메이저에서는 유해란이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미향과 신지은은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등 올해는 한국 여자골프의 저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시즌이 되고 있다.

2011년 투어에 데뷔해 올해로 16년째를 맞는 신지은이지만 그의 커리어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2016년 첫 우승을 하긴 했지만 이후 좀처럼 우승 경쟁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2012년과 2018년 HSBC 위민스 월드챔피언십 준우승이 가장 눈에 띄는 성적이었다. 시즌 상금랭킹에서도 단 한 번도 20위 안에 든 적이 없었고, 지난해에는 59위에 머물렀다. 올해 역시 이번 대회 전까지 13개 대회에서 톱10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그러나 신지은은 '다른 선수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신지은은 데뷔 이후 15시즌 동안 단 한 번도 LPGA 투어 카드를 잃지 않았다. Q시리즈로 내려간 적도, 투어를 떠난 적도 없었다. 매년 새 얼굴들이 등장하고, 이름 있는 선수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그는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살아남았다.

신지은이 3라운드 18번홀엣 힘찬 티샷을 날리고 있다. 신지은은 이번 대회에서 한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LPGA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사라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우승은 '부활'이라기 보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선수가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야기다. 화려한 재기의 드라마보다 더 어려운, 꾸준함에 대한 보상이다.

이번 스코티시 오픈에서 보여준 나흘간의 여정이 그러한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줬다. 사흘 동안 신지은의 골프는 거의 완벽했다. 바람이 거센 링크스 코스에서도 감정의 기복이 없었고, 스코어의 기복도 없었다. 화려하게 버디를 쏟아내기 보다 실수를 최소화하며 리더보드 맨 위를 지켰다.

그러나 마지막 18홀은 앞선 사흘과는 전혀 달랐다. 섭씨 16도 안팎의 쌀쌀한 날씨. 방향을 수시로 바꾸는 강한 바람. 그리고 10년 만의 우승을 눈앞에 둔 심리적 압박은 결국 신지은의 티샷을 흔들었다. 6번홀부터 8번홀까지 티샷 불안으로 3홀 연속 보기를 범하며 주춤했다. 한 때 8타까지 벌어졌던 리드가 순식간에 2타 차로 좁혀지기도 했다. 링크스에서는 단 한 홀만으로도 우승의 향방이 바뀐다. 추격자들의 기세가 살아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찾아온 위기의 9번홀. 1m 남짓한 내리막 파 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이날 가장 무거운 퍼트였다. 그 퍼트가 빗나갔다면 흐름은 완전히 상대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지은은 침착하게 파를 지켜냈고, 그 퍼트 하나가 흔들리던 리듬을 다시 되찾게 했다.

신지은이 2라운드 경기 중 티샷을 할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 신지은은 10년 2개월여 만에 투어 2승째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AP.뉴시스

이어 10번홀과 12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다시 여유를 찾았고 마지막까지 큰 흔들림 없이 리드를 지켜낸 끝에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안았다.

신지은은 2024년 숍라이트클래식 1, 2라운드에서 합계 10언더파를 기록하며 선두로 마지막 날을 맞았으나 1오버파로 부진하며 공동 9위로 마감했던 적이 있다. 때문에 이날도 머릿속 한켠에는 라운드 내내 2년 전의 아픈 기억이 스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과거에는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버텨냈다.

링크스 코스는 가장 화려한 선수가 아니라 가장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선수를 선택한다. 신지은은 마지막 날 최고의 샷을 과시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무너지지 않았고, 자신의 골프를 끝까지 지켜냈다.

그래서 이번 우승은 단순히 3,737일 만에 추가한 통산 두 번째 우승이 아니라 한번도 투어를 떠나지 않았던 선수가 15년 동안을 버텨낸 끝에 받은 가장 값진 보상이었다. 이번 스코티시 오픈의 우승 트로피는 그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신지은, 김아림 외에 최혜진이 이날 데일리 베스트인 5언더파 67타를 치며 합계 1오버파 289타로 양희영과 함께 공동 13위를 마크했고, 세계랭킹 1위인 넬리 코다는 합계 2오버파로 김효주와 공동 16위에 자리했다.)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