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투자 중단을 권고했던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가 관련 게시글을 하루 만에 자진 삭제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자사 상품의 구조적 결함을 인정한 운용사 수장의 이례적인 소신 발언이었으나, 돌연 글을 내리면서 금융당국의 압박이나 면피성 논란에 부딪혀 '뒷북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배 대표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개별종목 레버리지 인버스 2배 성과 분석'이라는 제목의 글을 돌연 삭제했다.
앞서 배 대표는 해당 글에서 "개별종목 레버리지 ETF를 운용하는 운용사 대표로서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면서도 "결론은 개별종목 레버리지와 인버스 2배 ETF는 투자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이례적인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시장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판매하는 결정권자가 상품의 직접 위험성을 고백한 것을 두고 소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시장에서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 원인으로 지난 5월 말 출시된 단일종목 레버리지와 인버스 2배 ETF 출시가 지목됐고, 정부도 이 상품의 보완책 마련을 위해 투자자 예탁금을 대폭 상향하는 등 조치에 나서고 있어서다.
그러나 정작 하루 만에 글이 내려가자 업계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있다.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을 땐 언제고, 시장 변동성이 커져 손실이 우려되자 SNS 글 한 줄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배 대표가 이처럼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배경은 이 상품군의 구조적인 취약성 때문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와 인버스 2배 ETF는 기초자산의 일일 변동 폭을 2배로 추종한다. 이에 주가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횡보장세에서는 변동성 잠식 현상이 발생한다. 기초자산인 원주 가격이 하락 후 반등해 원래 가격으로 돌아오더라도 누적 수익률이 아닌 일일 수익률의 2배를 매일 반영하는 특성상 순자산가치가 오히려 깎이게 되는 구조다.
배 대표 역시 삭제된 글을 통해 "시간이 흘러 원주가 제자리에 와도 ETF 가격은 제자리에 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원주의 변동성이 지금처럼 크면 매일 손실이 늘어나는 구조다. 누구도 변동성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예상을 못 한 탓"이라고 자사도 출시한 레버리지 ETF 상품의 한계를 자인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무책임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수익률과 점유율 극대화를 위해 앞다퉈 고위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개발·출시해 시장 변동성을 키워놓고, 막상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감지되자 운용사 수장이 SNS를 통해 투자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면피성 발언을 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경우 지난 8일 자사 상품인 'ACE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 ETF가 SK하이닉스 본주 주가와 수익률이 반비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의문을 한 차례 자아낸 경력도 있어 더 논란의 중심이 됐다.
당시 장 마감 직전 변동성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유동성공급자(LP)가 미리 설정해 둔 매도 물량이 소화됐고, 이후 들어온 시장가 매수 주문이 호가 공백을 틈타 가격 변동성을 일으킨 해프닝이었으나 투자자들은 혼선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배 대표가 별다른 설명 없이 다급히 글을 내린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투자를 하지 마라는 내용의 글이 시장에 불필요한 공포를 유발하자, 당국의 압박이나 내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글을 긴급히 내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만 정부의 보완책에 따라 새로운 레버리지 ETF의 신규 상장은 사실상 일시 중지됐으며, 이미 운용 중인 상품을 운용사 측에서 임의로 상장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향후 상품 구조에 대한 변동은 없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배 대표는) 그간 투자와 관련한 개인적인 견해들을 자주 게재하셨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당시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주변 지인들한테도 많이 연락받고 하니까 부담스러워서 내리신 것 같다"며 회사 차원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해명했다.